카라바조의 1597년 작 <메두사의 머리>(Head of the Medusa, 1597, 60cm×55cm, Uffizi, Florence)는 개념 예술(conceptual art)의 선구적인 작품이라고 여겨질 만큼, 카라바조의 다른 작품들이나 여타 예술가들의 작품들에 비해 방식 면에서나 내용 면에서 훨씬 더 파격적이다. 카라바조의 <메두사의 머리>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개념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개념 예술은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예술과 문화적인 흐름이었던 미니멀리즘(minimalism) 이후에 등장한 현대미술의 한 경향으로 작품에 포함된 개념 또는 관념이 전통적인 미학적, 기술적, 물질적인 것보다 우선하는 예술의 형태를 말하는 용어이다. 설치 예술 또한 개념 예술의 한 부분이다. 미국의 예술가인 솔 르윗(Sol LeWitt)은 개념 예술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개념 예술에서 관념이나 개념은 작품의 중요한 측면이다. 예술가가 예술의 개념적인 형태를 사용할 때, 이는 계획과 결정의 모든 것이 사전에 미리 이뤄져 있으며, 실행하는 것은 형식적인 작업에 불과하다. 개념 예술에 있어 관념은 예술을 만드는 기계가 된다.”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카라바조의 <메두사의 머리>는 먼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손으로 움켜잡을 수 있는 끈이 뒷면에 고정되어 있는 나무판을 방패 모양으로 만든 후에, 그 위에 그림을 부착시킨, 전통적인 회화 예술의 제작 방식과는 다르게 만들어진 작품이다. 메두사는 카라바조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예술가들에게도 인기 있는 주제이기에 다양한 형태의 그림과 조각상으로 제작되어 왔다. 예술 작품에서 메두사에 대한 인기는, 메두사라는 비현실적인 존재가 고대 신화 속의 영웅 페르세우스(Perseus)의 영웅담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에서 발원되고 있다.
카라바조의 <메두사의 머리>가 비슷한 주제의 다른 예술 작품들과 크게 다른 점은, '예술 작품 제작의 일반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는 ‘벽에 걸어 두거나 한 곳에 설치해 두고 두 눈으로 관람하기 위한 것’이라는 전통적인 영역을 넘어, 실제로 사용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카라바조가 <메두사의 머리>를 제작한 목적과 의미는, 그것을 헌정 받은 피렌체의 통치자 메디치 대공의 팔에 작품이 쥐어졌을 때 더욱 분명해졌다. 카라바조가 만든 이 방패를 한 팔에 거머쥔 메디치 대공은 더 이상 한 사람의 인간일 수 없었다. 카라바조는 그를, 뱀의 머리카락을 가진 천하무적의 괴물 메두사(Medusa)를 처치하고, 잘린 목에서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메두사의 머리를 한 손으로 힘껏 움켜잡은 영웅 페르세우스(Perseus)의 현신으로 변신시켰다.
카라바조가 <메두사의 머리>를 제작한 이유를 알게 된다면 카라바조가 예술가로서만이 아니라 묘책을 궁리해 내는 것에 있어서도 그림을 그리는 것만큼이나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었다는 것을 또한 알 수 있게 된다. 당시 카라바조는 메디치 대공이, 자신이 누구보다 탁월한 능력을 가진 예술가라는 사실을 알게 하고 싶었다.
자신보다 약 이 백여 년 전에 살았었던 르네상스 시대의 정치 철학자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1469-1527)가 자신의 글을 통해 메디치 가문의 통치자에게 자신의 능력을 알리고 싶어 했던 것처럼, 카라바조는 다른 예술가들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작품을 만들어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이려고 했고 그 시도는 성공을 거두었다.
누구보다 탁월했던 카라바조의 묘책들은 카라바조가 읽고 또 읽었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으로부터 온 것일 수 있으며, 또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다.”는 마키아벨리즘이 카라바조의 예술 철학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술에 있어서 카라바조는, 자신이 목적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최고의 묘책을 궁리해내고, 그것을 예술 작품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스스로를 위한 스스로의 책사였던 것이다.
묘책이란 철저하고 세밀한 사전 조사를 기반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메디치 가문이 영웅 페르세우스를 그들과 동일시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카라바조는, “어떻게 해야만 메디치 가문의 찬사를 받을만한 탁월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고심하였다. 카라바조는 작품을 만드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빈틈없이 섬세하고 완벽하고자 노력하였다.
카라바조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메디치 가문의 사람들은 델 몬테 추기경 이상으로 예술적 조예가 깊은 사람들이며, 그들은 그동안 셀 수 없을 만큼이나 많은 위대한 예술 작품들을 후원해 왔기에, 그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그들이 후원했던 기존의 예술가들이 탄생시킨 작품들과는 차별화를 이룬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메디치 가문의 사람들이 그들을 영웅 페르세우스에 비유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무작정 그들을 페르세우스로 묘사한다면 기존의 다른 예술가들이 그들에게 헌정한 작품들과 차별화가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였다. 따라서 카라바조는 ‘그들이 바로 페르세우스’라는 사실을 암시적이지만 강렬한 방법으로 표현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카라바조가 선택한 주제가 ‘메두사’와 ‘방패’였다.
이는 현대에 와서 정착된 “계획과 결정의 모든 것이 사전에 미리 이뤄져 있으며, 실행하는 것은 형식적인 작업에 불과하다.”는 개념 예술의 특징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래서 카라바조의 <메두사의 머리>를 개념 예술에 있어 선구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카라바조는 방패에, 그것을 착용한 사람은 페르세우스가 되어 감추어진 거울에 반사된 괴물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됨으로서 고르곤의 치명적인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신화적인 의미 이외에도 정치적인 의미를 담을 수 있었다.
• 고르곤: 머리가 뱀이어서 보는 사람은 무서워 돌이 되어버렸다는 페르세우스가 죽인 메두사와 같이 세 자매 중의 하나이다.
메두사의 잘려진 머리와 그것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검붉은 피가 표면을 장식하고 있는 방패 즉 카라바조의 <메두사의 머리>는, 그것을 한 팔로 움켜잡은 메디치 대공을 보면서, 신화의 영웅 페르세우스를 떠올리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효과를 통해 카라바조는 메디치 대공이 바로 현실세상에서의 영웅임을 세상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카라바조의 1597년 작 <메두사의 머리>는 암시의 효과가, 직접적인 표현이 갖는 효과보다 훨씬 더 전달력이 강하다는 것을 십분 활용한, 철저하게 계산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카라바조는 역시 카라바조라는 사실을 <메두사의 머리>는 다시 한 번 알게 해준다. 카라바조의 천제성은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용의주도한 계산을 통해 묘책을 만들어 내고, 이를 반영한 강렬한 암시를 화면에 담아낼 수 있는 카라바조만의 능력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생각보다 많은 천재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들 중에는 자신의 때를 만나 명성을 얻은 이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다. 아무리 천재라 해도, 자신의 때를 만나지 못한다면, 한낱 범부의 삶을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 다행이도 카라바조는 그 때를 만났다. 그리고 그의 천재성을 알아봐주는 또 다른 천재들을 만나 자신에게 주어진 때를, 비록 길지는 않았지만, 한껏 누릴 수 있었다. 카라바조가 예술에 있어 천재인 것처럼, 델 몬테 추기경을 통해 <메두사의 머리>를 받아든 페르디난도 1세 데 메디치 대공 역시 천재임이 분명하다. 그는 카라바조가 그림에 심어 놓은 의도를 충분히 알아차렸고 크게 기뻐하며 이 작품을 가문의 소장품으로 삼아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