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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인간, 첫 번째, 그들의 관계에 대한 소고

신과 인간, 첫 번째, 그들의 관계에 대한 소고


우리는 신이라는 ‘절대적인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인간에게 있어 신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실체는 어떻게, 무엇을 통해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신은, 증명과 같은 논리적인 수단을 배제했을 때에만 인지할 수 있게 되는, 초자연적이며 비이성적인 존재란 말인가. 

그렇다면 신은,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 어쩌면 신은, 받아들인다는 능동적인 행위로부터 완전히 초월한 불가해한 존재일 수 있겠다.  


신이 존재한다는 ‘강력한 가정’을 앞세운다면, 신과 인간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형성되어 있으며 대체 무엇을 통해서, 신과 인간은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또한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고, 또는 신에 의해 인간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종교적인 교리를 인정하게 된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오직 창조주인 신의 계율을 지키고 그분의 말씀만을 쫓는 것뿐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인간에게 심겨져 있는 자유 의지는 무엇이란 말인가. 신의 피조물인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자유 의지는 창조주인 신을 거역하기 위한 것이었단 말인가. 

아니면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인 신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인간이 가진 자유 의지의 태초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만약 인간에, 인간에 의해, 오직 인간을 위해, 인간 스스로가 신을 존재시킨 것이라면, 만약 인간의 자의에 의해 신이 그곳에 있도록 만든 것이라는 불경스러운 생각에 마음을 기울이게 된다면, 만약 이러한 신성 모독적인 생각을 세상의 진리라고 받아들이게 된다면, 현실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은 아무런 것에도 구애를 받지 않은 채로 지극히 자유로우면서도 더없이 이기적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될까. 


이 지구상에서 오직 인간만이 신을 인지하고 경배하는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은, 인간이 없는 신은 존재할 수 없고, 이와 마찬가지로 신이 없는 인간 또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언어적 증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만을 두고 본다면 신과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하면서도 충분한 조건’이라는 논리적인 상호관계를 갖고 있다고 봐도 좋다. 


물론 이것은 해석하기에 따라서 신이 존재한다고도 할 수 있게 되고 또는 인간의 정신적인 작용이 신을 존재시킨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게 되어, ‘존재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또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게 되는, 또 다른 오해의 여지를 발생시키게 되기에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접근해야만 하는 신성에 관계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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