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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인간, 두 번째, 나를 찾아 나서는 길

신과 인간, 두 번째, 나를 찾아 나서는 길


생각의 방향을 조금 틀어본다. 

신이 인간을 창조하였고, 그 창조주가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에게 초자연계(정신계)를 탐구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여, 자신이 신이란 것을, 자신의 권능을, 자신이 만물을 설계하고 만들어낸 창조주임을 인지하도록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신에게서 받은 ‘정신계에 대한 탐구 능력’으로 신을 인지하게 되었고, 그 능력으로 인해 물질계에 존재하고 있는 생명체 중에 최상위의 계층을 차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서 인간은 창조주로부터 특별하고도 엄청난 혜택을 부여 받은 것이다.  

이렇듯 인간은 자신의 창주주로부터 크나큰 특혜를 받은 유일한 물질계의 존재이지만, 그것을 누리며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그것을, 더 이상 특혜로서가 아니라 권한이라고 여기게 된 것일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은 바뀌지 않는 법이다. 

분명 인간은 태초부터 그런 이기적인 존재이었던 것 같다. 

무언가 배려를 받게 되면 결국에는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이라고 여기게 되는. 

    



인간의 인지와 의지는 정신계의 활동인 사유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사유는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뿌리이자 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유라는 나무의 가지 끝에는 대체 무엇이, 어떤 것이 매달려 있는 것일까. 

사유에 사유를 거듭하다가 보면 만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거기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존재라는 용어를 붙일 수 있는 것이 거기에 있을까. 

삶이란 게 어디가 종착점인지를 결코 알지 못하듯이 사유의 끝 또한 전혀 가늠할 수 없는 것일까. 

그래서 인간의 사유는 신이라고 불리는 절대자의 존재 여부와 그 존재에 대한 근거를 찾으려는 신학적인 것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일까.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라는 인간의 삶은 오직 물질계의 영역으로만 국한될 것이기에 정신계에서의 위치를 잃어버리게 될 수 있다. 

그것을 완전하게 잃어버리지는 않는다고 해도 심하게 흔들리게 될 것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사유하고 또 사유하는 인간에게 정신계에서의 위치를 상실한다는 것은, 인간이라는 신비롭기 짝이 없는 생명체의 존재 자체를 근본적인 질문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 것이다. 




인간은 원래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자신이 목적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이랬다저랬다 번복하는 것을 합리화하고,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이기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이 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 또한 오직 자신의 안위를 얻기 위해 행하는 가장 인간적인 행위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이 행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에 있어 ‘인간적’이라는 것은, ‘주관적이며 이기적’이라는 것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아무튼 인간의 존재가 단지 물질계에서만 해당하는 것이라면 사유하고 글을 쓰고 있는 인간은, 그는, 그녀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사유란 것이 물질계를 헤집고 다니는 한낱 정처 없는 방랑기에 지나지 않는단 말인가. 

사유가 던지는 숱한 질문들이 정신계의 활동이 아니라면 대체 그것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행여나 여기에서 길을 잃게 된다면, 아무런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면, 인간이라는 신비로운 생명체의 존재는 무에서 와서 무로 되돌아가는 바람과도 같을 뿐이다. 

인간의 존재가 한낱 바람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 물론 그 바람조차 인드라의 망을 구성하고 있는 반짝이는 구슬일 수도 있지만, 인간의 행위와 사유는 단지 허무한 몸짓과 헛된 망령 쫓기일 수밖에 없게 된다. 


허무주의는 불안함과 두려움을 잉태하기 마련이고, 불안함과 두려움은 절대자를 찾고 인식하게 만드는 정신적인 장치이기도 하다. 

인간에게 있어 정신의 작용이란, 태초부터 삽입되어 내려온 암시들이 재귀적으로 돌고 돌아가며 칠흑의 밤길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하는 구원의 행위이기도 하다. 

결국 인간의 정신작용은 절대자를 찾아 귀의하는 것에서 태초의 동산에 발을 디딘 것과 같은 평온함을 맞이하게 된다.            




날이 깊어 간다. 어둠이 더욱 짙어진다. 밤은 자연의 시간이며 신의 시간이다. 

어둠은 혼돈을 막아서는 장막이다. 

밤은 인간이 자신의 정신계와 소통하는 시간이다. 

어둠은 물질계와 정신계를 연결하는 질료이다. 


새벽이 오기 전에 정신계를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길을 나서는 것은 빠를수록 좋을 수 있다. 

신이, 진리가, 지혜가 저곳에 있기에, 비록 잔걸음질일뿐이라 해도, 비록 뫼비우스의 띠에 빠질 수 있다고 해도,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다. 

이것이 인간의 운명이며,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은 운명이 예비한 길을 걸어가는 존재이며, 인간의 본성은 결코 바뀌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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