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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서성이기

경계에서 서성이기                             


초점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는 눈빛으로, 하늘 아래에 울퉁불퉁 머리 끝자락을 길게 긋고 있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응시하게 되는, 아주 힘든 하루를 견디어낸 지친 오후의 끝 무렵이면,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저기 하늘 아래 어디인가에는, 걸음을 멈춰 서야만 하는 그곳이 분명 있을 거야.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거기까지가 나의 한계인 게고 또한 그곳이 바로 세상이라 불리는 이곳의 경계일 거야.”


누군가는 나의 이런 생각을 이기적인 것이라고 손가락질하며 비난할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이기적인 것은 마찬가지이기에, 어쩌면 그가 나 보다 더 이기적이기에, 굳이 그런 얘기를 귀담아 들어야 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다. 

분명한 것은 나는 나일뿐이며 내가 곧 세상이라는 생각은, 분명 이기적으로 들리기는 하겠지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생명수라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본들 상황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 


“내가 없는 세상이란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 α ――――――


까마득하기만 했던 그곳이, 어떻게든 걸어가다가 보면, 몇 걸음 바로 앞에 성큼 다가와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그래서 어색하기만 한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더 이상 걸음을 딛지 못한 채 가슴을 웅크리게 된다. 


“지금 이 자리가 경계의 언저리 어디쯤인 걸까.” 


경계가 가까운 것 같다는 것은, 곧 하나의 끝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막연하긴 하지만 선명한, 그리고 지나온 어딘 가에서 부딪힌 적이 있는 것만 같은, 그렇지만 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는, 그래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예감이다. 

뒤돌아가거나, 어떻게든 앞으로 계속 걸음을 디디려고 애를 쓰거나, 아니면 멈추어 서거나, 무엇인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바로 이 순간이다.     


경계의 가까이에 다다르면, 그렇다고 느끼게 되면, 뒤돌아서 가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훨씬 쉽다는 것을 알게는 되지만, 우물쭈물 망설이면서 아무런 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냥 그렇게 지내야만 한다. 

인간은 원래부터 그런 존재이기에.


비록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되더라도, 그러한 상황에서는, 유난히 느려진 걸음을 인지하였을 땐 길어진 그림자가 발끝에 걸려 바닥을 구르면서 질질 끌려오고 있는 모습을 만나게 된다. 

그러니 경계가 가까울 땐, 어떡하든지 경계에게로 걸어가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라곤 없는 것이다.

 

―――――― α ――――――


어쩌면 경계는 어느 촌부의 남루한 집 허름한 벽면에 끼워져 있는 세월의 때가 희뿌옇게 더덕더덕 눌어붙은 네모난 좁다란 유리창과도 같이, 적당히 투명하면서도 적당히 흐린 모습을 가졌을 지도 모른다. 

‘적당하다’는 것은 ‘적당한 만족’을 주는 ‘적당하게도 적당한’ 아주 신기한 주술을 부리는 표현이다. 

하지만 적당하게 맑고 적당하게 흐리다는 것이, 안과 밖을, 그리고 그것의 경계를 분간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일 수 있다. 

인간은, 적당한 이성으로 인해 혼돈의 늪에 빠지게 되고, 적당한 감성으로 인해 혼동의 숲을 헤매게 된다.    

  

일순 인 가는 바람 한줄기에도 허둥거리게 되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삶에서, 제대로 갖출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적당하게 갖추어진 적당한 삶에서 적당한 위안을 찾게 되는 것이 인생일 수 있다. 


가끔은 그것이 저기 경계면 가까운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아서, 거기에서는 그것을 더듬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적당한 날을 찾아, 등가방을 적당하게 꾸려 적당히 메고 길에 나서게 된다. 

그 길에선, 아주 더 가끔은, 사납고 거친 바람줄기를 만나기도 한다. 

그 바람 속에서 눈을 찡그려가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람줄기와 나의 사이에 난 미세한 틈을 발견할 수 있다. 


어느 날인가부터 알게 되었다. 

그 작은 간극의 정체는 ‘케이아스(chaos)’라는, 블랙홀과도 같은 기묘한 것이라는 걸.


뉴욕에서, Dr. Franz Ko(고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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