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글쟁이의 카타르시스

글쟁이의 카타르시스

- 카타르시스, 세 번째 이야기


카타르시스에 대한 글쟁이의 반응은 심리학자나 사회학자와는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대게의 경우 그 다름은 ‘받아들이는 방식’에서 기인하고 있다.

글쟁이에게 있어 ‘무엇인가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란 ‘그것을 글을 대하듯 읽어 내리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방식이 다르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견해와, 그것을 표방하는 것도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애써 찾아본다면 글쟁이와 심리학자, 사회학자 그들 모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괜한 것에 대해서 쓸데없이 많은 생각을 한다."는, 공통적이면서도 보편타당한 특성을 찾아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심리학자와 사회학자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생각과 말빨’을 기반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치려는 사람인 반면에 글쟁이는 ‘감성적이고 감상적인 생각과 글빨’을 기반으로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하려는 사람이라서, 글쟁이는 카타르시스에 대해서조차 좀 더 감상적이고 감성적인 가치를 부여하려는 경향이 있다.

글쟁이는 그들이 부여하는 이러한 가치에 대해 ‘인간적인 것’이라는 채색을 입히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니 글쟁이라는 옷을 몸에 걸치고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현실에서의 이성적인 현상이나 합리적인 상황에서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비현실적이거나 초현실적인 세계에서의 실체라는, 자신조차도 납득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리곤 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글쟁이의 카타르시스


인간 영혼의 밑바닥에는

짙은 흑색의 비극이

달빛 없는 깊은 밤에 내려앉은 안개처럼

무겁고 차갑게 깔려 있지      

  

영혼의 바깥으로 그 물기를 밀어 내기 위해서는

[아침의 하얀 호수]를 찾아가야만 한다는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  

   

이 이야기가 비극적이라는 건

오직 비극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만이

그 호숫가로 이어진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구분해낼 수 있다고 하기 때문일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 이야기를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야만 해

추방자가 비극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삶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니까  


그것은 원죄를 짓고 낙원에서 쫓겨난 자와

그의 후손들에게 유전되고 있는

지독한 형벌에서 기인하고 있는 것이니깐     

[아침의 하얀 호수]의 물은 아주 깊고

뼛속까지 얼려버릴 만큼 차갑다고 해


그래서 설령 그곳에 다다르게 된다고 해도

오직 무모한 자만이 그곳에 뛰어들 수 있어     

그 차가움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머릿속을 뚫고 심장 가운데까지 파고든 그때에야 비로소,

내면에 깔려있는 검고 눅눅한 비극을

수면을 덮고 있던 하얀 안개가 몰아내버리고

머뭇머뭇 멈추어 섰던 동녘 빛이

미소 지은 얼굴로 상승하게 된다고 해

그게 바로 네가 찾아 헤매던 그것일 거야


뉴욕에서, Dr. Franz Ko(고일석)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09025158


매거진의 이전글 이기심의 쓰레기통, 카타르시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