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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심의 쓰레기통, 카타르시스

이기심의 쓰레기통, 카타르시스

그것이 원죄로 인한 것이든 또는 다른 이유로 인한 것이든 간에, 인간은 [비극]적인 상황을 내면에 품고서 살아가야만 하는 [비극적인 존재]일 수 있다. 따라서 스스로의 의도에 의해서건 또는 의도에 의하지 않은 것이건 간에, 인간 개개인은 자신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비극 작품]의 주연으로써 삶의 무대에 올라야만 하며, 때에 따라서는 주연은 아닐 지라고 해도 최소한 주도적인 역할을 맡은 등장인물로서 삶의 무대에 올라야만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신을 둘러싼 주변인들은 자신이 공연 중인 무대를 진지하게 또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관객이거나,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무대에 함께 오르는 조연이 된다. 

그들은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비극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을 갖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오른 무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공연의 ‘적극적인 방관자’이거나 ‘소극적인 방관자’일 뿐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기에, 스스로는 그들로부터 떨어져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더욱 비극적이게 된다. 


―――――― α ――――――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건 어느 개인의 삶의 공연에서건, 비극을 인지한 관객은 주연 또는 다른 등장인물이 빠져 버린 비극적 상황을 통해, 그들의 허우적거림을 통해 ‘부정적인 상황이 주는 긴장감과 이에 따른 두려움과 연민의 감정’이 과다하다고 할 만큼이나 일어나게 된다. 

그 감정은 그들이 허우적거리면 거릴수록 더욱 강해지게 된다. 


허우적거리고 있는 그들 또한 ‘나’라는 방관자가 필요한 존재이다. 

나는, 비극적인 상황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그들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향해 질주하게 된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내가 오른 무대를 바라보면서 그들만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작품 속의 비극이 유발시킨 ‘두려움’은 점차 자기 자신의 두려움으로 전이되어 비극적인 상황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무대 위의 인물들을 향해 ‘연민’의 감정을 끌어내게 되고, 이를 통해 작품 속 인물들의 무기력함과 자포자기와 같은 행위적이고 정신적인 반응을, 마치 자신의 상황인 것처럼 인식하게 되면서 마치 최면에 걸려 든 것과도 같은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란 지극히 감정적인 동물이라서, 이 상황에 이른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감정의 통제 아래에 놓이게 된다.


이와 같이 비극적인 상황이 어느 한계점에 도달하게 되면 관객은 자신을 가두고 있던 이성의 울타리를 훌쩍 뛰어 넘게 되고, 그로 인한 해방감은 쾌감이나 희열, 전율로 이어지게 되어 결국에는 ‘영혼조차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처럼 느끼게 된다. 

앞에서도 얘기한 것과 같이, 인간은 어떤 특별한 것에 대해서는 ‘느끼는 것’을 ‘분명 그것’이라고 단정적으로 인지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이성의 통제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이 순간이 바로 ‘스스로가 카타르시스의 중심에 꼿꼿하게 서서 대자유를 만끽하는 때’인 것이다.


―――――― α ――――――


이제 우리는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이기적인 존재’란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카타르시스는 관객의 입장에서, 오롯이 방관자의 입장에서, 타인을 옭아 멘 비극을 기반으로 솟구치는 감정이다. 

이 감정은 나의 내면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숨어 지내고 있다. 

따라서 카타르시스는 철저하게 자신의 이기심을 바탕으로 하는 감정이다. 


카타르시스는 일종의 ‘감정의 쓰레기통’이자 ‘이기심의 쓰레기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카타르시스를 통해 자신의 이기심을 마음껏 표출함으로서 ‘나는 이기적이 아닌 이해심이 많고 이타적인 존재’라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문제는 “이기적인 성향이 강한 인간일수록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횟수가 잦으며, 그 정도가 강한 것이 아닐까.”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스스로가 스스로의 내면을 바라보면서 더듬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기적인 존재인가.”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은 누구나가 이기적인 존재라서, 궤변과 변명을 쏟아내는 존재이며, 인간이 비극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자신의 카타르시스를 위한 것이기에.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는 그 어떤 것이든 합리화의 틀 안에 몰아넣을 수 있는 존재이기에. 


뉴욕에서, Dr. Franz Ko(고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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