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_2023_10_16)
주머니에 두 손 쿡 찔러 넣고
투덜투덜
발걸음 끌며 돌아다니는 사이
산능선 한 뼘 위까지 내려 선 저녁 해가
골목 깊은 초가집 처마 늘어진 틈새로
뉘엿뉘엿
이른 밤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흰 종잇장 같은 기억의 캔버스 앞에 서서
뿌연 눈빛을 우두커니 껌뻑일 때면
검은 그림자 드리운 숲 속에서
정체 모를 까마귀 한 마리가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
푸드덕
저녁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다
그는 누구일까
까만 중절모에 까만 슈트를 차려입고
밤 내리는 하늘 어둑해진 모서리를
휘적휘적
지팡이 빳빳하게 또각이고 있을 그는
검은 표지 위 진회색 음각
쿡 쿡
바늘 땀처럼 이어 새긴
책 한 권 옆구리에 끼고
밤의 가장자리를 향해 가고 있을 것 같다
- 고일석(Dr. Franz 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