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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까마귀, 카프카 혹은 고흐

검은 까마귀, 카프카 혹은 고흐

                                                                     (Rev_2023_10_16)

주머니에 두 손 쿡 찔러 넣고 

투덜투덜 

발걸음 끌며 돌아다니는 사이 

산능선 한 뼘 위까지 내려 선 저녁 해가 

골목 깊은 초가집 처마 늘어진 틈새로 

뉘엿뉘엿  

이른 밤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흰 종잇장 같은 기억의 캔버스 앞에 서서

뿌연 눈빛을 우두커니 껌뻑일 때면 

검은 그림자 드리운 숲 속에서 

정체 모를 까마귀 한 마리가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 

푸드덕 

저녁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다


그는 누구일까 

까만 중절모에 까만 슈트를 차려입고 

밤 내리는 하늘 어둑해진 모서리를 

휘적휘적 

지팡이 빳빳하게 또각이고 있을 그는


검은 표지 위 진회색 음각 

쿡 쿡 

바늘 땀처럼 이어 새긴 

책 한 권 옆구리에 끼고

밤의 가장자리를 향해 가고 있을 것 같다


                                                                      - 고일석(Dr. Franz Ko)

Franz Kafka


Vincent Van Gogh, Wheatfield with Crow, July 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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