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라면 고흐의 마지막 붓질을, 살짝만이라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숙소를 나선 지 한 시간 남짓 지난 것 같다. 낯선 길을 달린 자동차는 네모난 엽서 안에나 담겨 있을 것 같은 일드프랑스(ile de France)의 아름다운 전원마을에 도착한다. 사실 이곳을 '파리의 근교'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먼 감이 있긴 하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라도 들렀다가 돌아갈 수 있을 만큼 파리와는 지척지간이기도 하다.
<프랑스 지도>: 프랑스는 지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여러 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지역은, 파리가 속해 있는 중북부의 일드 프랑스(ile de France) 지역과, 영국과 바다를 맞대고 있는 동북부의 노르망디(Normandy) 지역, 그리고 이탈리아와 경계에 있으면서 아름다운 휴양지로도 유명한 프로방스(Provence) 지역이다. 파리가 그 중심인 일드 프랑스(ile de France)는 영어로 island of France, 즉 '프랑스의 섬'이라는 뜻을 가진 지명이다.
이
마을에 들어서자 곳곳에 걸려 있는 표지판들이 말하고 있다. 이곳이 고흐의 마을, 고흐가 잠들어 있는 전원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라는 것을.
구불구불한 골목길에 옹기종기 떼 지어 붙어있는 시골집들과
언덕 중턱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낯설지 않은 교회와
낯 빛을 맞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누런 밀밭과
하얀 구름 조각을 듬성듬성 박아 놓은 투명한 하늘과
티끌 하나 없어 눈 흘길 일 없는 탱글탱글 물기 오른 나무들과
느릿느릿 걸음으로 들판을 돌아다니는 게으른 바람과
후드득 잔바람 일으키며 날아오르는 까마귀 무리와
쭈뼛쭈뼛 둥근 미소 살포시 띠는 샛노란 해바라기들과
자글자글 잔주름 가득한 노부의 늘어진 삶이,
바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는 듯
재촉하는 이라곤 아무도 없다는 듯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선
여태껏 고흐의 시간이 고이 잘 간직되어 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 마을의 중심지역 전경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파리의 중심부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27.2km(16.9mi) 떨어진 곳에 있는 인구 약 7천 명의 작은 전원타운이다. 공식적으로는 Auvers-sur-Oise, Île-de-France region (Department of Val-d'Oise), France, Europe으로 표기되고 있다. 이곳에서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낸 빈센트는 마을 뒷동산의 공동묘지 한 편에 가만히 잠들어 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선, 몇몇 안내판에 박재되어 있는 고흐의 그림들과 그의 서른일곱 해의 삶, 그리고 생의 마지막 70여 일 간의 곤궁한 생활이 남겨 놓은 흔적들을 더듬다가 보면, 돌담과 돌담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밀밭과 밀밭 사이로 난 좁다란 들판길에서, 돌아가야 할 때를 잊어버리는 아주 행복한 순간이 찾아올 수도 있다.
돌담 사리오 난 마을 골목길에서 만난 고흐의 1890년 작 <오베르의 계단>
<Stairway at Auvers>(L'Escalier d'Auvers), July 1890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마을 어귀며 타운 청사, 시골집과 교회, 골목길과 밀밭 곳곳이 고흐 작품의 모델이면서 또한 전시관이기도 하다. 이곳에선 고흐의 작품들이 원래부터 그 자리에 설치되기 위해 그려진 것인 양, 제 자리를 잘 찾아 전시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고흐의 작품은, 비록 그것이 진품은 아니라도 해도, 화가가 붓질을 하던 그 자리에 서서 감상할 때에, 붓의 터치며 물감의 향기, 화가의 손놀림을, 비로소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게 만든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고흐의 작품을 전문으로 전시하고 있는 커다란 야외 미술관인 셈이다.
―――――― α ――――――
“빈센트는 그 곤궁함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던 걸까.”
안경알을 깎으며 근근이 생계를 해결해야만 했던 철학자 스피노자(바뤼흐 스피노자, Baruch Spinoza, 1632–1677)와, 경제력이 없어 결혼을 할 수 없었던 철학자 칸트(엠마누엘 칸트, mmanuel Kant, 1724–1804)를 두고 “곤궁함을 벗 삼은 자유로운 사유 덕분에 그들은 자신의 철학을 완성하였노라.”라고 말한다면 “철학은 배가 고파야만 제대로 깨침을 얻을 수 있는 학문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스스로의 벌거벗은 인문학적 허영을 드러내는 부끄러운 짓이 될 것 같다.
여기에 대해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정신적인 허영일뿐이다.”라는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 – 1960)의 말을 인용할 필요까지는 굳이 없을 거라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서는 혼잣말로 중얼거려 본다.
하지만 '인간이란 허영을 즐기는 존재'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어쩌면 허영은 태초부터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본능 중에 하나일 수 있다. 그래서 '정신적인 허영'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이라는 가장 고귀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형이상학적인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적 허영'으로 승화되지 못한 정신적인 허영은 자칫 '망상'이나 '물질적인 허영'으로 흐를 수 있어 늘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만 한다.
이제 빈센트가 어떻게 그 곤궁함을 견딜 수 있었는지에 대해 작은 실마리나마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빈센트는 정신적인 허영을 밥 친구 술친구 삼아 물질적인 곤궁함을 견뎌낼 수 있었던 거야.”
고흐의 1890년 작 <오베르 교회> <The Church at Auvers>
June 1890, 74cm × 94cm, Musée d’Orsay, Paris
오베르의 마을길을 따라 언덕길을 오르다가 보면 눈에 익은 고딕양식의 교회를 만나게 된다. 고흐를 찾아 오베르를 찾아온 이라면 이곳이 그의 작품 <오베르 교회> 배경이라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교회의 벽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고흐의 골 깊은 붓질이 꿈틀꿈틀 지기개를 켜고 금세라도 몸을 일으켜 세울 것만 같다. 이럴 때면 교회 앞마당 잔디정원에서 잠시 여유를 부려봐도 좋다. 이곳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조금만 더 디디면 이윽고, 까마귀 떼가 후드득 날아오르는 오베르의 누런 밀밭이 눈앞에 펼쳐진다.
―――――― α ――――――
예술에서 말하는 인상(Impression)이란 어떤 개체에 대한 '표면적인 인상'(일반적인 관점에서의 인상)이 아니라 '예술가의 눈과 마음에 새겨지는 느낌'이며 일종의 '내적 인상'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인상은 또한 하나의 개체가 지닌 다양한 속성들(attributes) 중에서, 오직 그 개체만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것이기에, 그 개체를 ‘바로 그것’이라고 특정 지을 수 있게 하는 것이면서, 또한 다른 무엇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그 개체만의 핵심속성(core attribute, master attribute, prime attribute)인 것이다.
인상은 모든 개체들에게서 찾아지는 보편적인 것이지만 형이상학적인 영역에 결부되어 있는 것이라서, 어떤 개체가 지닌 인상을 찾아내고 해석하는 것은 오직 [인상주의 철학자](Impressionism Philosopher)의 몫인 것이다. 인상을 찾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에 대한 해석은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을 따르게 되기에 예술가들은 같은 인상에 대해서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표현하게 된다.
밀밭 사이로 난 소로를 바쁠 것 하나 없이 느릿느릿 걸어 다니다가 문득 바람의 속삭임을 듣는다.
“빈센트는 자연과 사물과 사람의 [인상]을 그림이라는 상형문자로 찍어낸 [인상주의 철학자]였음이 틀림없어."
그리고 언젠가의 후일에 이곳을 찾아올 누군가가, [빈센트의 인상주의 철학]의 문을 밀고 들어와서 그의 들판과 그의 밀밭 사이로 난 좁은 들길을,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영혼으로 돌아다니게 될 거라고, 어느 날엔가, 혹시라도 누가 들을 새라, 혼자서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는 것을.
빈센트가 여태껏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들판과 골목길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가 올 것이기에, 그가 올 것임을 믿기에, 그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일 수 있다.
“기다리고 있어요. 아직은 기다려야 한다니까요.”
고흐의 무덤, Vincent Van Gogh's grave, Auvers-sur-Oise Cemetery
빈센트 반 고흐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양지바른 언덕 위에 있는 마을 뒷동산 공동묘지의 끄트머리, 돌로 만든 담장 아래에 잠들어 있다. 밀밭과 밀밭 사이에 자리 잡은 이곳에서 빈센트는, 친동생이자 생전에 자신의 유일한 후원자였던 테오도르 반 고흐와 함께 누워 있다.
햇살에 반짝이는 초록 잎사귀 위에 던져 놓은 노란 해바라기 몇 송이가 무언가를 은밀하게 속삭이려는 것 같다. 빈센트의 비석에 새겨져 있는 1853-1890이라는 숫자보다는, 테오의 비석에 새겨져 있는 1857-1891이라는 숫자가 찾는 이의 가슴을 더 먹먹하게 만든다. 빈센트보다 4년 늦게 태어난 동생 테오가 겨우 1년 뒤에 형을 따라가다니, 다음 세상에서도 형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 것인지,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전에 눈시울부터 붉어진다. 행여 누군가 볼 새라 고개를 돌린다.
돌담길과 밀밭과, 하늘에 흩뿌려 놓은 고흐의 상형문자들을 쫓아다니는 사이, 진청색 그림자 하나가 다가오더니 키 작은 해바라기 두어 송이를 그의 잠자리 위에 살포시 내려놓는다. 얼핏 본듯한 모습에 기억을 더듬으려 하지만 종종걸음으로 저만치 멀어져 간다.
모서리 뭉개어진 낯선 상상이, 햇살에 엉켜 붙은 유화 물감을 찐득하게 이겨 바른다. 그인지 그녀인지, 알 수 없는 그이의 뒷그림자를 쫓아 발걸음을 재촉하다가 일순 멈춰 선다.
“지금은 기다려야만 할 때이지.”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언가를 깨닫는 것은 늘 때가 늦어지기 일쑤이다. 그의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여 앉는다. 머릿속에서 머물고 있던 고흐가 가슴에 안겨드는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햇살이 뉘엿뉘엿 늘어진다. 밥 짓는 저녁 굴뚝 안으로 노을이 몰래 숨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