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살펴보는 빈센트 반 고흐

키워드로 살펴보는 빈센트 반 고흐

네덜란드 태생이면서도 프랑스가 주된 활동 무대였던 [빈센트 빌럼 반 고흐](1853년 3월 30일 - 1890년 7월 29일, Vincent Willem van Gogh, 핀선트 빌럼 판 호흐(네덜란드식 발음))는 일반적으로 ‘서양 미술사에 있어 가장 인기 있는 화가’ 중에 한 명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19세기 이후의 서양 회화예술사에 있어 반 고흐의 몇몇 작품들은 인종이나 성별, 나이와는 관계없이 가장 대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반 고흐 효과'라는 표현을 사용해도 괜찮을 것 같다. 아무튼 반 고흐라가 인기 있고 잘 알려진 화가라는 것은 그의 영향력 또한 명성에 걸맞게 지대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는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언젠가부터 ‘위대한 탈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를 일컫는 공식적인 명칭이 된 것이다.


반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서 네덜란드에서 성장하였고, 자신의 조국인 네덜란드에서부터 화가의 길에 발을 디딘 회화예술가이다. 하지만 반 고흐란 이름에서 프랑스가 먼저 떠오르게 되는 것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대부분의 일화들과 작품들이 파리와 아를르, 오베르 쉬르 우아즈 같은 프랑스의 몇몇 지역들과 밀접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뒷 그림자를 더듬어가다 보면, 어쩌면 반 고흐는 네덜란드와 프랑스 모두를 자신의 조국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네덜란드가 반 고흐의 태생적 조국이라면 프랑스는 반 고흐의 예술과 영혼의 조국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태어날 곳과 때를 스스로에 의해 결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마지막 잠을 청할 곳과 때는, 경우에 따라서는, 스스로의 의지를 반영할 수 있다. 반 고흐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것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지만 프랑스 땅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영원한 잠을 청한 것은 반 고흐 자신의 의지를 따른 것이었다. 파리의 근교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들판을 영원한 거처로 삼음으로서 반 고흐는, 스스로가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화가로서 남겨지기를 바란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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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그는 대체 누구였는지, 작품을 들여다볼수록 커져가는 이 불가해한 느낌은 대체 무엇인지, 작품이 품고 있는 이글거리는 붓질은 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반 고흐에 의한 반 고흐만의 색채는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지, 화구를 펼쳤던 자리마다에서 반 고흐의 눈에 보였던 것은 대체 무엇이었는지, 그를 좇고 있는 다른 연구자들처럼 나 또한 무척이나 궁금하다.


반 고흐가 살아간 삶에는, 일상에서의 반 고흐와, 화가로서의 반 고흐, 그리고 정신세계에서의 반 고흐가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따라서 반 고흐의 정체성을 따지려는 일은 종종 형이상학적으로 흐르곤 한다. 또한 반 고흐가 누구였는지를 알려하는 것은 자칫 불가해한 것을 좇으려는 ‘상당히 어리석은 행위’가 되기도 한다. 그런 사정을 익히 알고 있기에 여기에서는, 세상에 던져져 있는 그에 관한 몇 가지 표면적인 현상들을 키워드 삼아 반 고흐를 조금 더 들여다보려고 한다.

반 고흐가 세상에 표출시킨 대표적인 키워드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다작 화가 반 고흐

반 고흐는 다른 어느 화가보다 많은 작품을 그린 회화예술가이다. 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후에 불과 약 10년 동안 무려 900여 점의 그림들과 1,100여 점의 습작들을 그렸다. 연도별로 차이는 있지만 간단한 계산으로는 연간 90여 점의 그림들과 110여 점의 습작들을 그린 것이다. 반 고흐는 정확한 작품 수를 확인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할 정도로 ‘다작 화가’였다.

반 고흐는 왜 그렇게 많은 그림을 그렸던 것일까. 어쩌면 반 고흐에게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거 하는 행위’였을 수 있지 않을까. 살기 위해 밥을 먹어야만 하는 것처럼, 반 고흐는 살기 위해 그림을 그려야만 했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반 고흐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들판에서 하늘과 구름과, 바람과 까마귀와, 별빛과 달빛과, 누렇게 익어 가는 밀밭과 그 사이로 난 좁은 들길을 캔버스에 담아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참고: 최고의 다작 예술가 파블로 피카소

피카소(25 October 1881 – 8 April 1973)는 예술가로 활동한 약 78년 동안 147,800여 점이라는 엄청난 작품을 남긴 ‘인류 역사상 최고의 다작 예술가’이다. 그가 남긴 작품의 수는 너무나도 어마어마해서 '인류 역사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피카소의 작품들에는 13,500여 점의 회화작품들(paintings)과, 100,000여 점의 판화인쇄본들과 판화작품들(prints and engravings), 300여 점의 조각작품들과 세라믹작품들(sculptures and ceramics), 34,000여 점의 삽화작품들(illustrations)이 있다.



불행한 삶을 살았던 화가 반 고흐

생활인으로서 반 고흐의 삶은 안타까우리만큼 곤궁하고 불행하였다. 생의 마지막 10년 동안 반 고흐는 오직 그림 그리는 일만을 전업으로 삼았지만 당대의 예술품 컬렉터들은 그의 그림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아를의 포도원을 그린 작품인 <붉은 포도원>(The Red Vineyard, 1888) 한 점만이 판매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마저도 벨기에의 화가이자 예술품 컬렉터인 아나 보흐(Anna Boch)에게 ‘친구로서의 가격’(friend's price)에 팔렸을 뿐이다.

생계를 위한 비용과, 900여 점의 그림을 그리기 위한 물감과 화구를 구입하는 비용은, 오로지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마련할 수 있었다. 생활인으로서 고흐는 철저한 무능력자였다. 측두엽 기능장애로 추측되는 정신질환을 앓으면서, 생계조차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던 곤궁함 속에서 오직 그림만을 그리며 살아가다가, 자신의 손으로 자신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물론 반 고흐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지만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은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들판에서 권총으로 자기 자신을 쏘았다는 것이다. 반 고흐의 삶이 불행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대중의 편견'에서 발생한 것일 수 있다. 사실 화가로서 그의 영혼은 그 누구보다 더 자유로웠을 수 있다.



완전한 무명 화가 반 고흐

반 고흐는 무명 화가였다. 생전에는 이무런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고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컬렉터들과 예술 평론가들,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특히 그가 사망한 후 약 11년이 지난 1901년 3월 17일 파리에서, 생전에 그가 그렸던 71점의 작품을 전시한 후에야 화가로서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사실을 통해 생전에는 가난한 무명화가로 살아간 반 고흐의 삶이 어떠했을지는 짐작해 볼 수 있다.

반 고흐의 생전에 팔린 유일한 작품은 1888년에 아를르의 어느 포도원 풍경을 그린 <붉은 포도원>(Red Vineyard at Arles)이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유여곡절 끝에 현재 모스크바에 있는 푸쉬킨 국립 미술관(Pushkin State Museum of Fine Arts, Moscow)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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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의 <붉은 포도원>, 1888

반 고흐의 생전에 팔린 단 한 점의 작품은 아를르의 어느 포도원 풍경을 캔버스에 담은 <붉은 포도원>이다. 영문으로는 <Red Vineyards near Arles> 또는 <The Red Vineyards> 또는 <Red Vineyards at Arles>으로 표기하고 있다. 1888, 75 cm × 93 cm, Pushkin State Museum of Fine Arts, Moscow



영향력이 큰 탈인상주의 화가 반 고흐

화풍에 있어 반 고흐는 탈인상주의 화가로 분류된다. 반 고흐의 예술은 인상파, 야수파, 초기 추상주의, 표현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20세기를 넘어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여러 분야에 영감을 주고 있다. ‘후기 인상주의’라고 번역되고 있는 '탈인상주의'(Post-Impressionism 또는 Postimpressionism)는 인상주의에서 시작했지만, 그 영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작품 세계를 확립하려고 한 예술 사조이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주로 1880년대에 활약한 탈인상파는 화가마다 화풍이 크게 달라서 양식적인 공통성을 찾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 폴 세잔 등이 탈인상주의 화가(탈인상파화가)로 분류되고 있다.



비싼 그림의 화가 반 고흐

반 고흐가 그린 그림들은 현존하는 가장 비싼 그림들의 리스트 상단에 오르고 있다. 1987년 3월 30일에 반 고흐의 1889년 작 <아이리스>(Irises, May 1889, 71 cm × 93 cm)가 뉴욕의 소더비즈 경매를 통해 5,390만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금액으로 판매되었다. 현재 <아일리스>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제이폴게티 미술관(J. Paul Getty Museum, Los Angeles, California)에서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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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의 1889년 작 <아이리스>

<Irises>, May 1889, 71 cm × 93 cm, J. Paul Getty Museum, Los Angeles, California


1990년 5월 15일에는 반 고흐의 1890년 작 <가셰 박사의 초상화, 첫 번째 버전>(Portrait of Dr. Gachet 1st Version, 67 cm × 56 cm, Private collection)이 크리스티즈 경매를 통해 8,250만 달러(오늘날의 가치로는 (약 1억 8,480만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으로 일본의 다이쇼와제지 명예회장인 사이토 료에이(당시 74세)에게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 당시 낙찰가인 8,250만 달러에는 작품의 순수 낙찰가인 7,500만 달러에 경매 수수료 10%가 가산된 금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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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의 1890년 작 <가셰 박사의 초상화 첫 번째 버전>

<Portrait of Dr. Gachet 1st Version>, 1890, 67 cm × 56 cm, Private collection


2022년에는 반 고흐의 1888년 작 <사이프러스가 있는 과수원>(Orchard with Cypresses, 1888, Private collection)이 1억 1,700만 달러($117 million)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판매됨으로 다시 한번 최고가를 기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반 고흐의 작품을 구매하는 것이 최고의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투자라는 견해가 생겨나는 현상이 생겨났다. 하지만 근래에 와서는 반 고흐의 작품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예술작품들 또한 수백만 달러 이상의 가치를 가진 경우가 많아졌기에, <사이프러스가 있는 과수원>이 최고가를 기록한 것을 두고 '반 고흐의 작품이 얼마나 수익성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말하는 것은, 예술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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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의 1888년 작 <사이프러스가 있는 과수원>

<Orchard with Cypresses>, 1888, 650 mm × 810 mm,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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