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에 대한 화단과 대중의 기억법

반 고흐에 대한 화단과 대중의 기억법


예술사에서의 반 고흐

10여 년에 불과했던 화가로서의 시간과, 당대의 화단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무명화가의 삶과, 그를 괴롭혔던 정신질환과 같은, 여러 환경적인 여건들을 모두 생각하게 되면, 화가 반 고흐가 이룩한 업적은 오직 천재들만이 이룰 수 있는 실로 놀라운 ‘예술적 결실’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반 고흐의 정신질환을 단지 ‘그를 괴롭힌 것’이라고만 표현한다면, 반 고흐의 예술을 자칫 ‘광기’에 연결시키게 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될 것 같다. 반 고흐의 정신질환은 분명 ‘세상으로부터 그를 가두었던 높은 담벼락’이었지만 ‘반 고흐의 예술을 싹 틔운 들판’이었으며 ‘반 고흐의 예술을 보호해 준 키 낮은 울타리’였다고도 볼 수 있다.


반 고흐가 이룩한 작품세계는 미술사에 선명한 획을 그어 넣었다. 그가 떠난 후 수많은 예술가들이 ‘반 고흐의 예술’이라는 들판에 기꺼이 뛰어들었다. 그의 회화기법은 앙리 마티스와 같은 야수파 화가들과, 구스타프 클림트 같은 분리파 화가들 및 샤임 수틴과 같은 표현주의 화가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으며 지금도 그 영향은 현대예술 전반에서 계속되고 있다.



반 고흐와 표현주의

예술에 있어 표현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표현주의’라는 용어와 20세기 예술의 한 사조로서의 ‘표현주의’라는 용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 의미에서의 표현주의는 역사가 아주 길고 그 범위 또한 아주 넓다. 여기에는 16세기말에서부터 17세기 초까지 활동했던 마니에리즘 화가 엘 그레코(El Greco, 1541 - 1614)와 낭만주의 시기와 바로크 시기의 화가들을 포함할 수 있다. 하지만 20세기를 넘어 현대에 와서의 표현주의는 고흐와 고갱에서부터 그 경향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고흐는 고갱과 더불어 [20세기 표현주의]의 문을 연 화가인 것이다.


표현주의(Expressionism, 1905 - 1930)는 1905년에서 1930년 사이에 독일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일어났던 20세기 미술사조 중에 하나이다. 표현주의 화가들이 중점을 둔 것은 화가의 ‘감정과 감각(emotions and sensations)’이다. 그들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그것에 대한 감각을 캔버스에 직접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노력하였다.


표현주의 화가들은 선과 색채, 형태와 같은 사물의 구성 요소를 감정과 감각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여겼으며, 균형 잡힌 구도나 아름다운 구성과 같은 전통적인 회화예술에서의 기법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왜곡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반 고흐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과 그때 그것에 대한 감각 및 정신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생생한 색상과 눈에 띄는 붓놀림을 사용했다. 반 고흐의 작품을 표현주의 측면에서 본다면, 캔버스에서 발견하게 되는 그의 이글거리는 붓놀림과 강렬한 색상을 감정과 감각의 '표현'을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한 수단이었다고 해야 한다.


인상주의(Impressionism, 1863 - 1890) 화가들이 빛이나 일상생활에 중점을 둔 것이나, 야수파(Fauve, 1904 - 1909) 화가들이 색채를 변형시키는데 중점을 둔 것이나, 입체주의(Cubism, 1907 - 1914) 화가들이 형태를 파괴하는데 중점을 둔 것과는 달리 표현주의 화가들은 ‘감정과 감각을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표현주의는 다양한 미술사조에 영향을 미쳤다.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은 화파로는 다음과 같은 화파들을 꼽을 수 있다.


•분리파: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에곤 쉴레(Egon Schiele) 등과 같은 분리파(Secession, 1892 - 1910) 화가들에게서 표현주의적인 경향을 볼 수 있다.

•야수파: 앙리 마티스(Henri Émile-Benoit Matisse)와 앙드레 드랭(André Derain, 1880 - 1954)과 같은 야수파(Fauve, 1904 - 1909) 화가들도 ‘표현주의적인 색채’를 사용함으로써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고 있다.

•초현실주의 화파: 프랑스에서는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 - 1985)과 같은 초현실주의파가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고 있다.

•표현주의 화파: 프랑스의 샤임 수틴(Chaim Soutine, 1894 - 1943)은 풍경화와 초상화, 정물화에 있어 강렬하고 대담한 색을 사용한 표현주의 화가이다. 특히 초상화에 있어서는 심리적으로 강렬하지만 예민한 감수성이 드러나는 거칠고 리드미컬한 붓질을 통해 대표적인 표현주의 화가로 꼽히고 있다.

•다리파: 독일의 화가이자 판화가인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가 참여한 다리파(Die Brücke, 1905 - 1913) 화가들 또한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청기사파: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Wassilyevich Kandinsky)가 참여한 청기사파(Der Blaue Reiter, 1911) 역시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대중이 기억하는 반 고흐

한 사람의 천재가 이 세상에 나타난다는 것은, 대중에게는 커다란 선물이 될 수 있겠지만 천재 자신에게는, 결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중은 천재를 향해 환호성을 보내면서도 막상은 그를 대상으로 온갖 편견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를 헐뜯고 비난하는 짓을, 마치 어린아이가 저지르는 속 보이는 거짓말처럼 무책임하게 즐기는 이상한 곳이다.


대중이란 천재에게조차 자신의 편협한 잣대를 들이대고서는 ‘그렇게 하면 되네 안되네’와 같은 개인적인 훈수를 아무렇지 않게 두려는 어리석은 짓을, 마치 그들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당당하게 누리려고 하는 얄궂기 짝이 없는 집단을 통칭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대중이란 혁신이나 진보, 진화와 같은 '듣기 그럴싸한' 단어를 쉽게 내뱉으면서도 그 단어들이 품고 있는 진정한 의미에는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기적인 집단에게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반 고흐가 살아간 당대의 화단 또한 ‘예술에서의 대중’에 불과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19세기 후반을 살다 간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눈길을 끌어당기는 생생한 색과,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는 강렬한 붓놀림, 구불구불한 형태의 윤곽과, 심리마저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격렬한 생동감이라는 반 고흐 예술의 특징들과, 그것에 혼재된 불행하고 혼란했던 개인적인 삶을 통해 '불행한 삶을 살다가 스스로 요절한 화가'로 대중의 기억 속에 새겨져 있다. 또한 대중은 부분적이지만 광범위하게 출판된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글들을 통해 반 고흐의 삶과 예술을, 마치 소설이나 영화의 자막에서 나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a story based on a true story) 또는 '실화에서 영감을 받은 이야기'(a story inspired by a true strory) 정도로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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