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인상주의에 대한 이해와 오해(첫 번째)

포스트인상주의(탈인상주의), 신인상주의에 대한 예술사적 관점에서의 해설

후기인상주의에 대한 이해와 오해(첫 번째) - 후기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

: 포스트인상주의(탈인상주의), 신인상주의에 대한 예술사적 관점에서의 해설


흔히 [후기인상주의]라고 번역되고 있는 [Post-Impressionism](포스트인상주의)는 대략 1886년에서 1905년 사이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미술사조의 하나이다.

이 시기를 예술사의 특정 사건들과 연관시킨다면, 1886년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마지막 단체 전시회가 열렸던 해였고, 1905년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 – 1954)와 앙드레 드랭(André Derain, 1880 - 1954)과 같은 일단의 화가들이 야수파(Fauve, 1904 - 1909)로서의 특징을 드러내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초기였다고 얘기할 수 있다. 즉, 예술사에서 후기인상주의는 인상주의의 끝 무렵에서부터 야수파의 초기까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상주의의 끝무렵이란 게 ‘인상주의의 쇠락이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통한 고전 인상주의의 전이와 확장’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장면 자체가 주는 느낌을 전달하기를 원했지만, 후기인상주의 화가들은 ‘장면에서, 그들이 느끼는 것, 느끼는 방식을 전달’하기를 원했으며, 빛과 색의 자발적이고 자연주의적인 렌더링에 대한 인상주의의 관심을 거부하였다. 후기인상주의 화가들 또한 기존의 인상주의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적인 것에 변화가 가해진 인위적인 것’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후기인상주의 화가들은 ‘인상주의적인 인위적인 것’에 더해 상징적인 내용과 색상, 형식적인 질서와 구조를 강조하는 것을 선호하였다.



신인상주의

순수하고 밝은 색채의 사용과 풍부한 빛을 캔버스에 담아낸 인상주의 미술은 1886년에 인상파 화가들의 마지막 전시회가 된 [제8회 인상파 전시회]를 끝으로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되었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큰 것은 ‘과학적인 색채이론’을 회화기법에 적용한 신인상주의로의 변화이다. 이 새로운 형태의 인상주의는 기존의 있었던 인상주의(고전 인상주의하고도 한다.)와는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신인상주의( Neo-Impressionism)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즉 이 시기에 신인상주의적인 특징으로 그림을 그린 화가들이 신인상주의자(Neo-Impressionist)인 것이다.


[신인상주의]라는 용어는 19세기말에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1859 - 1891)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었던 미술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프랑스의 미술 평론가인 펠릭스 페네온(Félix Fénéon)이 1886년에 처음으로 붙인 용어이다.

그래서 조르주 쇠라를 ‘신인상주의의 창시자’라고 부르고 있다. 신인상주의는 조르주 쇠라와 같은 시기에 활동하고 있었던 폴 시냐크(Paul Signac, 1863 - 1935), 카미유 피사로(Jacob Abraham Camille Pissarro, 1830 – 1903) 등의 화가들에 의해 더욱 발전해 갔다.


조르주 쇠라의 1884년(실제로는 1884년부터 1886년에 걸쳐 그렸다.) 작품인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A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La Grande Jatte)는 신인상주의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점묘법을 사용한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현대 예술이 흘러가는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음으로써 19세기 회화예술에 있어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A_Sunday_on_La_Grande_Jatte,_Georges_Seurat,_1884.jpg

조르주 쇠라의 대표작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A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 Georges Seurat, 1884(1884-1886), 207.6 х308cm, 시카고 미술관(Art Institute of Chicago)



신인상주의 vs. 후기인상주의

신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 모두가 기존 인상주의(고전 인상주의)에 대한 반동의 성격을 가진 미술운동이다. 신인상주의 화가들은 기존 인상주의의 충동적이고 직관적인 예술적 매너리즘을 개선하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후기인상주의 화가들과의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신인상주의 화가들과 후기인상주의 화가들이 활동한 시기가 거의 동일하다.


그렇다면 신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는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에 대해 좀 더 깊게 들여다봐야 한다. 신인상주의 화가들은 빛과 색을 포착하고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후기인상주의 화가들보다 더욱 과학적인 접근법을 채택하였다는 점이 신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신인상주의가 표방한 회화예술에 있어서의 과학적인 접근이란 것이, 비록 제대로 된 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비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비판은 예술에 있어서의 과학은 ‘과학적인 과학’이 아니라 ‘예술적인 과학’이라는 점을 간과한 것에서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술에 있어서의 과학을 ‘잘못된 과학적 접근의 결과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신학을 ‘잘못된 철학적 접근의 결과물’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뿐이다. 예술은 포용력이 큰 형이상학적인 학문이다. 따라서 예술에서의 과학은 '예술이라는 관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 '이성적 분석'을 통해 옳고 그름을 따져야만 하는 학문의 영역이 아닌 것이다.


Copyrght@Dr. Franz Ko, 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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