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인상주의를 표현하는 영문은 Post-Impressionism(포스트인상주의)이다. 따라서 '후기인상주의가 바로 포스트인상주의'라고 말하는 것을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포스트인상주의를 후기인상주의라고 번역하는 것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고찰이 요구된다.
그것은 후기인상주의라는 번역이, 자칫 포스트인상주의가 인상주의의 아류이며, 인상주의라는 미술사조가 ‘시기의 전후에 따라’ 전기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로 나뉘게 된다는 그릇된 생각을 갖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Post-Impressionism을 [포스트인상주의]라고 해석하는 것이 오해의 소지를 없앨 수 있는 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헌과 연구자들은 Post-Impressionism을 [후기인상주의] 또는 [탈인상주의]라는 용어로 번역하고 있는데 그것에는 포스트인상주의의 개념 자체가 그럴만한 사유를 내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기인상주의 화가들은 기존 인상주의(1880년대 이전까지 파리를 중심으로 유행했던 인상주의, 고전인상주의)의 한계를 거부하면서 인상주의를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수정하고 확장함으로써 변화시켰다. 이것을 인상주의의 진화 또는 인상주의의 진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기존 인상주의와 마찬가지로 생생한 색상을 사용하였고, 물감을 붓이나 나이프, 손 등으로 두껍게 이겨 바르는 임파스토(impasto, 이탈리아어에서 온 것으로 ‘반죽된’이란 뜻을 갖고 있다.) 기법을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실제로 존재하는 실물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사물의 기하학적 구조를 화가 자신이 느끼는 방식대로 표현하기 위해서 형태를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만큼이나 특정 부분을 왜곡하기도 하였으며, 색상의 사용에 있어서도 느끼는 방식을 기반으로 표현하려고 하였다. 그렇기에 그들을 '후기인상파 화가'라는 하나의 테두리로 묶으면서도 그림에 있어서는 공통적인 형식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이와 같이 후기인상파의 작품 각각에는 화가 개개인의 개성이 배어있기 때문에, 작품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바로 그 화가의 작품'임을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게 된다.
연구자에 따라서는 후기인상주의를 ‘기존 인상주의의 빛과 색상의 자연주의적 관심과 묘사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그들은 ‘사물의 구조에 대한 반동’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포스트인상주의라는 용어에서의 ‘포스트’를 ‘후기’라는 시기적인 의미보다는 ‘대립’(對立:의견이나 처지, 속성 따위가 서로 반대되거나 모순됨. 또는 그런 관계) 또는 ‘탈’(脫, 벗어남)이라는 의미가 포함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예술에 있어서의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과 모더니즘(modernism)의 경우를 통해 이 문제를 좀 더 살펴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모더니즘의 안티테제(antithesis, 대립, (둘 사이의) 대조)이다. 마찬가지로 후기인상주의는 인상주의를 확장 수정함으로써 인상주의를 벗어나려는 안티테제이며, 비록 인상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인상주의와는 다른 ‘새로운 경향의 미술 사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은 포스트인상주의는 ‘후기인상주의’가 아니라 ‘탈인상주의’이며, 포스트인상주의는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미술사조이긴 하지만 인상주의의 연장이 아닌 새로운 미술사조로 봐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익혀 알려져 있는 ‘후기인상주의’를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여기에서 말하는 ‘후기’라는 단어를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개념에서만 해석할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와 확장이 더해진 새로운 것’이란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후기인상주의가 비로소 포스트인상주의와 동일한 용어가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물음은 "포스트인상주의가 인상주의에 대한 안티테제인가?" 하는 것이다. 포스트인상주의에 대해 고전인상주의와의 대립을 의미하는 안티테제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견을 내놓을 수 있다. 그것은 대립이란 단어가 가진 ‘반대’와 ‘모순’이라는 의미로 인한 것이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포스트인상주의는 고전인상주의와 반대되는 것이거나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고전인상주의의 수정하고 확장함으로써 현대예술을 향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간 미술운동이다. 포스트인상주의는 고전인상주의를 보완한 새로운 형태의 미술사조인 것이다. 따라서 '안티테제'라는 단어는 포스트인상주의와 고전인상주의의 관계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단어이지만 많은 문헌에서는 그것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안티테제라는 단어를 전통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대조’(對照: 둘 이상인 대상의 내용을 맞대어 같고 다름을 검토함. 서로 달라서 대비가 됨)라는 측면에서 확장 보완된 의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포스트인상주의는 고전인상주의와 대립하는 미술사조가 아니라, 대조를 이루는 또는 대비를 이루는 미술사조인 것이다.
포스트인상주의를 탈인상주의로 보게 되면 신인상주의 또한 포스트인상주의로 볼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인해 문헌에 따라서는 신인상주의의 창시자인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를 포스트인상주의 화가로 분류하고 있다. 또한 탈인상주의라는 측면에서 보면 신인상주의와 포스트인상주의 모두가 ‘고전인상주의에 대한 반동을 통해 발현된 새로운 형태의 미술사조’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 고전인상주의가 비슷한 형식을 가진 것에 반해 포스트인상주의(Postimpressionism)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폴 세잔,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을 후기인상주의라는 같은 미술사조로 묶지만 그들의 작품에서는 비슷한 형식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폴 세잔의 작품에서는 오직 폴 세잔스러움만이,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에서는 오직 빈센트 반 고흐스러움만이, 폴 고갱의 작품에서는 오직 폴 고갱스러움만이 느껴지고 있는 것은, 포스트인상주의 화가들의 개성과 고집이 너무나도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작품에서는 그들 각각의 강렬한 개성만이 찾아지는 것이지 그들 간의 공통점을 찾아보기는 어렵기 마련이다. 그들 후기인상주의 화가들의 공통점은 ‘고전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과, ‘고전인상주의에 대한 반동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같은 시기에 활동한 화가들’이라는 것이다.
이들 후기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들의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내용과 특징들을 분석하게 되면 그들 이후에 나타난 현대예술의 경향을 그것들이 미리 보여주고 있다는 것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만큼 후기인상주의가 현대미술에 미친 영향이 지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