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와 후기인상파가 활동한 기간에 대해

반 고흐와 후기인상파가 활동한 기간에 대해

미국의 예술사학자(American academic, author and art historian)인 존 리워드(John Rewald, 1912–1994)는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의 연구에 있어 선구적인 역할을 수행한 대표적 초창기 연구자로 꼽히고 있다. 그가 1956년에 출간한 저서 <후기인상주의: 반 고흐에서 고갱까지>(Post-Impressionism: From Van Gogh to Gauguin, 1956)는 후기인상주의 연구에 있어 하나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책에서 존 리워드는 후기인상주의의 기간을 1886년에서 1892년 사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말은 곧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와 폴 고갱(Paul Gaugin, 1848–1903)이 본격적으로 활동한 기간이 바로 후기인상주의의 기간이란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존 리워드가 정의한 이 기간은 현재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후기인상주의의 기간(1886년에서부터 1905년까지)과는 약 3년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그것은 후기인상주의를 보는 관점과 방향에 따른 것이기에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는 식의, 흑백논리를 여기에 적용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수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후기인상주의의 시작은 1886년이란 것이다.


존 리워드는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있었던 회화예술에서의 다양한 현상들을 다루면서 특히 당시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반 고흐(van Gogh), 고갱(Gauguin), 쇠라(Seurat), 르동(Redon)과 같은 초창기 후기인상파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에 주목하였고 그것들의 관계를 탐구함으로써, 인상주의를 기반으로 또는 인상주의에서 파생된, 새로운 형태의 예술운동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를 확장하였다. 그는 이를 통해 19세기와 20세기 초의 현대회화예술을 또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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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후기인상주의가 시작된 해를 1886년으로 정의한다는 것은 “어쩌면 반 고흐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후기인상파 화가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물음을 가지게 만든다. 반 고흐가 후기인상파 화가라는 것에 대해서는 다른 이견을 제시할 수 없지만, 그의 화가로서의 이력을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면 '반 고흐는 분명 후기인상파를 대표하는 화가이긴 하지만, 후기인상파 화가가 아니었던 적이 있는 화가’라는 것을 그리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후기인상주의가 시작된 해인 1886년은 반 고흐가 고국 네덜란드를 떠나 ‘반 고흐의 파리 시기’(1886–1888)가 시작된 해이다. 즉 ‘반 고흐의 파리시기가 시작된 해가 바로 후기인상주의가 시작된 해’인 것이다. 또한 존 리워드가 후기인상주의의 기간을 1886년에서부터 1892년으로 정의하였다는 것은 ‘반 고흐를 후기인상주의 화가로 재탄생시킨 것은 파리’라는 말이 된다. 반 고흐는 파리에 와서야 비로소 후기인상파 화가의 길에 접어들었기에, 파리는 그를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위대한 후기인상파 화가 반 고흐'로 재탄생시킨 도시인 것이다.


반 고흐가 화가라는 이름으로 지낸 기간은 그가 사망한 해인 1890년을 기점으로 약 10년 간이었다. 따라서 파리 시기가 시작된 1866년 이전에도 반 고흐는, 비록 무명이었지만, 당연히 화가였다. 그렇다면 반 고흐가 네덜란드 시기(1886년 이전)에 그린 그림들에 대해서는 “반 고흐의 작품이긴 하지만 후기인상주의 작품에는 속하지 않는다.”라고 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반 고흐의 작품은 크게 ‘네덜란드 시기 반 고흐의 작품(1886년 이전)’과 ‘후기인상주의 화가로서 반 고흐의 작품(1886년-1890년)’으로 나누게 된다. 기간적으로 보면 반 고흐는 화가로서 지낸 후반기 5년 간은 후기인상주의 화가였지만 전기 5년 간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파리의 [가을 살롱전]

19세기 미술에 있어 파리의 가을 살롱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매년 가을 파리에서 개최되고 있는 예술작품 전시회인 [Salon d'Automne](Société du Salon d'Automne라고도 불린다.)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 [Autumn Salon]이다. 이것을 한글로 번역한 것이 가을 살롱전, 가을 박람회, 가을 전시회 등과 같이 소개되고 있다. 여기에 ‘개최지가 파리’라는 전시회의 성격을 담아서 [파리의 가을 살롱전]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살롱을 개최한 초기의 목적은 미술의 발전을 장려하고, 국적과 관계없이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출구 역할을 하며, 인상주의의 보급과 그 확장을 대중에게 확대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1903년부터 시작된 이 살롱은, 그때까지 공식적으로 개최되고 있던 파리 살롱의 보수적인 정책에 대한 반동으로 인식되었으며, 20세기 회화와 드로잉, 조각과 판화, 건축과 장식 예술의 발전과 혁신을 보여주는 대규모의 전시회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Salon d'Automne의 초기에는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과 같은 당대 유명 예술가들의 지지를 얻어 그들의 작품들을 전시하기도 하였다. 전시회에서 있었던 중요한 사건 중에는 1905년 야수파의 탄생을 목격한 일과 1910년 입체주의의 탄생을 목격한 일을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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