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을 향한 끌림’은 인간의 본능이자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하나의 표식이다. ‘사고 싶은 것이 있어야 살아있다는 것’라는 말이 있다. 무엇인가를 사고 싶다는 것은 살아 있는 인간의 본능이다. 여기에서 ‘사고 싶다는 것’은 ‘갖고 싶다는 것’이고 이것은 또한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와 동일한 의미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가 무언가를 갖고 싶게 만들고 사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롭다는 것은 대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언어의 높은 테두리가 새로움이라는 비물질적인 현상을 저마다의 자의적 해석 안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학사전에서는 새롭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새롭다:
1. 지금까지 있은 적이 없다.
2. 전과 달리 생생하고 산뜻하게 느껴진다.(맛 또는 감)
3. 매우 절실하게 필요하거나 아쉽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보는 것과 같이 인간은 ‘전에는 없었던 것’에서뿐만이 아니라 ‘이전과 달라진 느낌’이나 ‘절실하게 필요하거나 아쉬운 느낌’이 들 때, 또는 그러한 것을 통해서 새롭다는 감정을 갖게 된다.
방향을 조금 바꾸어 보면 새로움에 대해 또 다른 관점에서의 접근이 가능하다. 새롭다는 것도 결국 창조주에 의해 허락된 자연계의 현상 중에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피조물에 의해 생성되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지 정신적인 것이든 간에, 또는 형체를 가진 것이든지 그렇지 않은 것이든 간에 ‘지금까지 있은 적이 없는 새로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태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인간이 느끼는 “새롭다.”라는 것은, 기존에 있은 것이 아닌 전혀 다른 그 무엇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지 속에서 이제야 건져 올린 어떤 것이거나, 우연히 알아차린 것이거나 발견하게 된 무언가를 자기 위안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결과물일 뿐일 수 있다. 그래서 무지의 정도가 심한 사람일수록 새롭다고 느끼는 것들이 많아지게 되며 그것의 강도 또한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욱 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α ――――――
어떤 예술작품들에서는 결코 질리지 않는 새로움을 한결같이 느낄 수 있다. 한결같다는 것이 주는 새로움은 ‘이미 익숙해진 것이기에 결코 새롭지 않은 것’에게서 받게 되는 새로움이기에, 새롭다는 감정 자체조차 새롭게 느껴지게 된다.
그것은 예술에 있어서의 새로움은 물질적인 것에 대한 새로움과는 그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이 예술작품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형태의 결 다른 새로움이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볼 때마다 전과 다른 느낌을 갖게 만드는 것, 한결같지만 순간순간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예술작품인 것이다. 이런 예술적 새로움을 물질적 새로움과 비교하여 설명하려는 노력은 한낱 어리석은 짓에 그칠 수 있다.
예술작품에서 느껴지는 새로움은 그것을 소유하고 싶게 만들지만 실상은 그럴 수 없음을 대부분의 인간은 스스로가 자각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그런 소유욕을 실제로 이룰 수 있는 인간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예술적인 새로움에 목이 마른 인간이 넘어 서게 되는 것이 미술관의 문턱이다. 그들에게 미술관은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예술적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는 샘터이다.
미술관의 전시실에 머무는 동안, 벽면에 걸려 있는 작품들을 감상하는 동안, 그 예술작품은 감상하는 이의 정신적인 소유물이 된다. 미술관은 시간과 공간을 쉐어링(공유, sharing)하면서 예술작품을 소유할 수 있게 해주는 형이상학적인 공간인 것이다. 그래서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예술작품을 정신적인 공유재(公有財)라고 할 수 있게 된다.
MoMA(뉴욕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모네의 <수련>
비오고 쌀쌀한 날이라서 그런지, 모네의 수련 전체를 한 장의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 그래서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고 여길 수 있는 행운을 안을 수 있었다. 모마에 전시된 수많은 명작 중에서도 모네의 <수련>은 늘 관람객이 북적이는 대작이다. 아마도 이런 가슴 벅찬 행운은 다시 맛볼 수 없을 것이다. 미술관에 전시된 예술작품은 이런 사소한 변화 하나에서도 전혀 색다른 느낌을 갖게 만드는, 새로움을 소유하게 만드는, 신비로운 공유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