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의 노랑, 감상적 노랑

반 고흐의 노랑, 감상적 노랑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파리의 예술가로 살아가길 원했던 후기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노랑에 빠져있다 보면, 색이란 것이 색감만이 아니라 질감과, 거기에 더해진 감상적 느낌을 가진 '복합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무엇'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분명 이미 오래전부터 그러했음이 분명한데도 이제야 알게 된 것 또한 '새로운 것'이기에, 빈센트의 색 노랑에 전혀 ‘새로운 노랑’이란 꼬리표를 붙여도 좋을 것이다.


화가들의 작품을 즐겨 기웃거리는 버릇은, 시간 지난 오래전부터 있어온 일이지만, 돌이켜보면 그림쟁이를 꿈꾸었던 철없던 십 대 시절 한 때에 대한 낡고 색 바랜 심상에서 발원하는 것인 것 같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인쇄상태란 게 허접하다 못해 조악하다 할 만큼이나 형편없었지만, 유명 서양화가들의 작품들이 실려 있는 당시로서는 ‘최신’ 컬러판 화보집에서 접했던 고흐의 노랑은, 십 대 얼치기 그림쟁이의 입으로는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로운 현상이자 형상이었다.


두 눈을 둥그렇게 뜬 채 말을 잃은 까까머리 십 대에게 고흐의 노랑은 색으로서의 노랑이 아니라 빛의 진동이 피어낸 노랑이었고, 구구절절한 스토리가 붓질마다 꿈틀거리고 있는 하나의 완전한 개체 그 자체로 여겨졌었다. 그곳을 향해 고개 돌려 보면 그날, 그것에 대해 무언가 말을 하려고 입술을 벌리기는 했었지만 막상 입 밖으로는 아무것도 새어 나오지 못했던 것 같다. 가물가물하기만 했던 그때의 느낌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조금씩, 구체성이란 살점이 물감을 덧칠하듯 더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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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의 <노란 꽃이 피어 있는 들판>

<A Field of Yellow Flowers>, Vincent van Gogh, 53 x 34.5cm, 1889, Kunstmuseum Winterthur, Winterthur, Switzerland


더 많은 세월이 흘렀다. 빈센트, 그에 대해 조금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중년의 눈빛은, 그의 작품을 마치 어릴 적 고향친구처럼 여기면서도, 더한층 강해진 편견의 끌림을 향해 사유의 계곡을 기웃거리게 만들고 있다.


그리곤 어느 날부터인가 조금씩 알아차리게 되었다. 고흐의 붓질에는 삶에서의 고독과, 사랑에 대한 갈망, 예술을 향한 격정, 고개 돌린 체념의 질투와 외면 그리고 침묵, 스스로 갇혀든 세계에서의 풍요로움과 현실에서의 빈곤함이 거칠고 불안정하게 진동하고 있기에, 고흐의 노랑은 색으로서가 아니라 감상을 품은 빛의 파동으로서 진정 아름답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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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

<Wheatfield with Crows>, July 1890, 50.2 ×103cm,

Van Gogh Museum, Amsterdam


노랑이 칠해진 표면에서 산란되고 있는 빛의 입자들은 너무 강렬해서 늦가을, 절정을 갓 지나 끝물 끌어올린 낙엽이 빚어내고 있는 나무그늘보다 더 찬란하고 슬프다. 오베르의 밀밭 가운데 서 있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Wheatfield with Crows>, July 1890, 50.2 ×103cm, Van Gogh Museum, Amsterdam)에서도 들판을 가득 채운 노랑은, 수평의 바람의 결과, 수직의 빛의 결을 머금고 있다. 어쩌면 하늘과 밀밭의 경계에 쭈뼛쭈뼛 그어 놓은 검은 까마귀와, 뭉글뭉글 으깨어 놓은 검청의 하늘이란 것도 노랑을 더욱 돋보이게 하려는 반 고흐의 의도된 배치는 아닐까, 의구심을 너머 확신을 가져 본다.


마지막 날까지도 노랑물감을 놓지 않은 고흐, 떠나던 날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들판에선, 선연했을 그의 검붉은 핏빛조차 노랑의 스펙트럼 안으로 산란되어 스며들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반 고흐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에선 시간 지난 핏자국의 갈색 느낌마저 들게 만들고 있다. (반 고흐의 마지막 작품 <나무뿌리>를 들여다보면 그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


"빛에 반사된 노랑은 입자의 떨림이 되어 시공간을 너머 자유로이 부유한다."


그는 지금 어느 하늘을 부유하고 있을까. 어느 시간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아를르일까, 오베르 쉬르 우아즈일까. 파리일까. 나의 무지함을 색안경 삼아 반 고흐의 그림 몇 점을 더듬어 본다. 비록 언어의 울타리에 갇혀버리는 일이라고 해도, 고흐의 노랑은 여전히 새롭기만 하다.



반 고흐의 마지막 작품

<까마귀가 있는 밀밭>(네덜란드어: Korenveld met kraien)은 빈센트 반 고흐가 1890년 7월에 그린 그림으로 ‘반 고흐의 가장 위대한 작품’들 중에 하나로 인용되고 있다. 또한 <까마귀가 있는 밀밭>은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반 고흐의 마지막 그림’이라고 흔히 언급되고 있다.

사실 반 고흐가 <까마귀가 있는 밀밭>을 그린 것은 1890년 7월 10일경으로 보고 있다. 반 고흐가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날은 1890년 7월 27(37세)이고, 이틀 뒤인 1890년 9월 29일 이른 시간에 영원히 눈을 감았다. 동생 테오(Theo Van Gogh)에 따르면 빈센트의 마지막 말은 "The sadness will last forever", “슬픔은 영원할 거야.”라고 한다.


근래의 연구에 따르면, 반 고흐는 그의 마지막 날인 1890년 7월 27일, 파리의 근교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들판에서 <나무뿌리>(<Tree Roots>, 1890, 50.0 ×100.0cm, Van Gogh Museum, Amstredam)를 그리면서 하루를 지냈을 거라고 한다. <나무뿌리와 둥치>(<Tree Roots and Trunks>)라고도 알려져 있는 이 작품을 ‘반 고흐의 마지막 날이 담겨 있는 작품’이라고 부르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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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의 마지막 작품 <나무뿌리> 또는 <나무뿌리와 둥치>

<Tree Roots> or <Tree Roots and Trunks>, July 1890,

50.0 ×100.0cm, Van Gogh Museum, Amstre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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