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의 <시간의 영속>

반 고흐의 <시간의 영속>


언젠가부터, ‘불행했던 천재화가’라는 별칭이 [반 고흐]라는 화가의 이름 앞에 붙고 있다. 아니 붙여졌다고 하기보다는 마치 어떤 의도를 가지고서는 그의 이름을 대신하려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가지게 될 때가 있다.

어느 예술평론가에 의해 또는 누군가 예술사학자에 의해, 어쩌면 이름 모를 예술애호가에 의해 붙여졌을 이 짧은 문구를 곱씹어보면 어느 정도는 맞은 것 같다가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도 보인다. 어쨌든 천재화가 반 고흐의 삶과 예술에서는, 누구나의 삶이 그러하듯이, 불행했던 면과 그렇지 않았던 면의 희비를 더듬을 수 있게 된다.


반 고흐(van Gogh, March 1853 – July 1890)나 카라바조(Caravaggio, September 1571 – July 1610)와 같이 ‘불행했던 천재화가’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화가들에게서 찾아지는 공통점은 ‘사후에 그 어느 예술가들보다 더 크게 사랑받는 화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카라바조와 반 고흐를 하나의 직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짓이란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불행했던’ 그리고 ‘요절한’이란 수식어가 공통적으로 따라붙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숫자상으로 보면 반 고흐는 약 37년 4개월을, 카라바조는 약 38년 10개월을 이 지구상에서 살아가다가 어느 날 훌쩍 떠나갔다. 천재들에게는 마흔을 넘긴다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이었던 것 같다.


예술가에게 있어 '살아서는 불행했다'는 것의 의미는 ‘그 누구보다 더 격렬하고 처절하게 고뇌했던 삶과 예술’이 그들의 인생 전반을 지배하였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그들의 삶에서는 많은 부분의 비극적인 것들과 적은 부분의 희극적인 것들이 순간순간 순서 없이 뒤엉켜 있기 마련이다.


반 고흐는 현대에 와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에 한 명이 되어 있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통해 생계를 해결하는 이’를 전업화가라고 한다면 반 고흐는 죽어서야 비로소 전업화가의 언저리에라도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살아 있는 반 고흐 자신’은 그림을 팔아 생계를 해결할 수 없었지만 ‘죽은 반 고흐의 그림을 소유하게 된 사람들’은 반 고흐의 그림으로 인해 충분히 생계를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반 고흐의 요절이 다른 이들에게는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하였으니, 한 사람의 비극은 다른 여러 사람의 희극이 될 수도 있다는 씁쓸하기 짝이 없는 '삶의 아이러니'를 여기에서도 마주하게 된다.


―――――― α ――――――


반 고흐가 한 사람의 자연인이자 화가로 살았던 흔적들을 더듬다가 보면 처절함을 넘어 ‘반 고흐만의 성스러운 처연함’을 눈과 가슴과 호흡으로 느낄 수 있게 된다. 어쩌면 그런 이유에서 일 수 있다. 반 고흐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는 공간들은 저마다 ‘예술적 성지’로서의 역할을 경건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은.

뉴욕 맨해튼 중심에 자리 잡은 현대미술관(MoMA: Museum of Modern Art)과 메트로폴리탄미술관(The MET)의 전시실의 벽면에 걸려 있는 반 고흐의 작품에는 참배객들의 순례가 끊이질 않는다. 스스로를 예술애호가라고 생각한다면, 스스로를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다고 자신하는 사람이라면, 반 고흐를 찾아 나서지 않는 뉴욕은 일개 여행자로서 돌아다니는 콘크리트 덩어리일 뿐이지 참배객으로서 순례하는 예술의 성지라는 얘기 따위는 결단코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현상은 파리의 보석 중에서도 보석인 오르세미술관(Musée d'Orsay)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원래는 기차역으로 사용된 건물이지만 개보수를 통해 전문미술관으로 탈바꿈한 오르세미술관은 세느 강 건너에 있는 루브르박물관(Musée du Louvre)과 함께 프랑스가 자랑하는 예술의 성지이다.

오르세미술관의 수많은 전시실 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는 곳은 단연 반 고흐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이다. 순례자는 오르세미술관의 전시실 71번과 72번에서는 별과 같이 반짝이는 반 고흐의 27개의 작품 앞에서 걸음이 멈추어 서게 될 것이다.


달리, 기억의 영속.JPG

살바토르 달리의 <기억의 영속> 또는 <기억의 지속>

<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

24 × 33cm, MoMA(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반 고흐의 예술을 좇는 사람이라면 미국의 뉴욕과 프랑스의 파리 이외에도 [반 고흐 미술관]이 있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은 순례의 길에 나서야만 하는 성지들이다. 그 순례의 길에서 만나는 현대적인 전시실에서는 19세기말에 멈추어 서 있는, 어쩌면 계속해서 흐르고는 있지만 그 흐름이 너무나도 느리기에 마치 멈춰버린 듯이 느껴지는, 그래서 초현실주의(Surrealism) 화가인 살바토르 달리(Salvador Dalí, 1904 – 1999)의 <기억의 영속>(The Persistence of Memory) 안에서나 무심히 흐르고 있던 <시간의 영속>(永續, The Persistence of Time, The perpetuity of Time)을 반 고흐에게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반 고흐에게도 달리에게도 시간은, 늘어진 시계처럼 변형과 채색이 가해진 영속하는 그 어떤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by Dr. Franz Ko(고일석)@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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