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꽃, 목련에 대한 소고

봄의 꽃, 목련에 대한 소고


백목련이든 자목련이든, 목련은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사라진다는 것에는 태어남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는 걸.

그래서 사라짐이 고독한 것처럼 태어남 또한 고독하다는 걸.

결국에는 태어남이나 사라짐이나 고독한 것은 마찬가지라는 걸.

그리고 사라짐이 결코 소멸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걸.

백목련은 욕심 많은 화려한 여인처럼 차가운 밤바람과 날카로운 새벽바람에도 싸리문 밖으로 나서길 두려워하지 않는다. 거기에 비해 자목련은 진득하니 때를 기다릴 줄 알기에 덜 어설퍼 보이기도 하고 옷 섬을 정갈하게 여민 아낙 같이 곱기도 해서 지나는 사내의 눈길을 슬며시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백목련의 성질머리는 그 피는 시기에서 알 수 있다. 이제 갓 월동에서 깨어난 나무둥치가 아직 짧은 낮의 햇살을 끌어 모아 겨우 물기를 올리려 버둥거리고, 앙상한 가지 끝에서는 진갈색 표피에 싸여 있는 자그마한 새순이 알을 깨고 나오려는 병아리처럼 힘겹게 발길질을 해대는 겨울의 끝 무렵 또는 너무 이른 봄의 초입, 백목련은 저 혼자 환하게 피어난다.


그 무렵의 기온이란 게 변덕이 죽 끓듯 하기 여사라서 이제 봄인가 싶다가 보면 다시 바람 차가워지기 일쑤이니 나뭇잎보다 앞서 피어나는 백목련의 만개는 채 무르익지 않은 봄의 추위에 제 몸조차 떨게 만든다. 백목련은 때 이른 봄날, 햇살 한 줌 겨우 따스해진 추위 속에서 활짝 피어나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녹이려 저 혼자 흐드러지니, 그 꽃 피움이란 건 철 모르는 어린 여자연예인의 스캔들 같다.


그 스캔들의 끝이란 건 활짝 핀 절정의 화사함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한 채 한순간 뚝 떨어져 하늘자락에서 사라져 버리거나, 갈변해 가는 물리적 변화를 겨우 견디면서 아등바등 괴사 되듯 말라가는 것이다. 결국 바닥에 떨어져 내려 이내 질척거리다가 흑갈색으로 비틀어져가니 백목련의 화려함은 너무 짧기도 하고 한낱 모래를 쌓아 지은 허황한 성과 같은 것이었나 보다.

백목련과는 달리 자목련은 자기의 때를 진득하니 기다릴 줄 아는 것 같다. 자목련은 백목련이 지기 시작할 무렵, 따스한 봄 햇살의 기운이 도닥도닥 나른하게 익어갈 무렵에야 담장 위로 고개 내밀며 수줍은 자색의 웃음을 살포시 짓기 시작한다. 사실 자목련은 애초 백목련과 같은 화사함을 갖지 못하였기에 애써 눈여겨보질 않는다면 이곳저곳 지천으로 피어나는 노랗고 붉은 봄꽃이며 말간 연초록의 새잎에 밀려 눈길을 받기 어려울 수도 있다.

자목련은 땅에 떨어져서도 보라 빛이 더욱 짙어지다가 이윽고 검게 말라가니 그 끝에서도 자신의 색을 간직하려는 마음이 곱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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