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빛 목련 벤치에 앉아

진주 빛 목련 벤치에 앉아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분노를 삭이는 일에 익숙해지고, 거짓말을 뱉어내는 것에는 더욱 익숙해져 간다는 것이다. 세상과의 타협을 통해 분노를 삭일 줄 아는 사람은, 현실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나름대로의 문을 만들어 둔 사람이지만, 그렇지 못한 이는 그것을 위한 비상구나 출구를 미처 마련하지 못한 사람이다. 세상은 거짓말이, 화폐가 통용되는 것처럼, 아무렇게나 주고받는 곳이다. 세상은 그것을 이성적인 것이라 여긴다. 그것들을 거래하는 이들은 대부분이, 자신의 거짓말은 진실을 생성하는 것에 쓰일 것이기에 진실일 수 있으며, 분명 진실한 것이라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위안한다. 이와 같이 분노를 삭이는 일이나 거짓말을 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자기 위안이고 자기 최면이다. 세상은 나름대로의 방식과 생각으로 살아가는 곳이다.//

탱탱하게 물 올리던 봄빛이 절정을 향해 한 발 더 다가선 시간에 파란 하늘과 뽀얀 꽃송이가 연회색의 꽃 그림자를 드리운 벤치에 앉는다.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 머리 위를 바라본다. 꽃잎에 스며든 봄빛은 망이 고운 채로 걸러낸 잘 익은 막걸리 빛깔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 진주조개의 우윳빛 뽀얀 속살 같기도 하다.


눈을 감는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봄바람에 이곳이 차안인지 피안인지 방향을 잃는다. 이런 순간에는 돌아갈 길 따위는 잃어버려도 좋다. 꽃그늘 아래에서 봄을 헤던 글쟁이는 연어의 본능을 따라 봄 길에 오른다. 제 몸을 사르는 퍼덕임은 먼 길 나선 글쟁이의 구도를 찾아가는 본능 같고 온순하게 숨을 들이켜는 이 자리에 내리쬐는 햇볕은 어느 존재의 자비와도 같다.

이 자리가 왠지 어색하지 않다. 등 붙인 이 딱딱한 자리가 작년과 그전 해, 그리고 지나온 어느 해와 기억하지 못하는 그전 전 어느 해의 그 자리이기도 하니 꽃 잎 떨어져 뒹구는 목련 아래에 앉으면,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가슴은 봄빛처럼 차분하지만 연어의 본능처럼 숨소리마저 거칠어진다.


이것이 글쟁이의 회귀본능이라면 저 짙은 코발트빛 하늘 모서리, 목련꽃이 화사하게 밝힌 봄의 호숫가를 어쩌면 영원히 벗어나지 못해도 좋겠다. 그래, 그래도 괜찮다, 봄이니깐, 그것이 어찌 되건 간에 그냥 좋을 뿐이다. 출구라든지 비상구 따위는 애초부터 만들 필요가 없었다. 그냥 좋은 순간은 그냥 맞이해야 한다.


이 진주 빛 꽃그늘 자체가 봄날의 낭만이기도 하다. 시리고 푸른 봄의 하늘을 목련의 꽃 틈 조각사이로 올려볼 수 있는 이 자리는 낭만의 물결이 찰랑이는 추억의 호숫가이다.


오늘은 무척이나 밤이 기다려진다. 검청빛 어둠이 하늘 저 멀리에서 어른대는 밤이 되면 이 자리를 다시 찾아야겠다. 꽃빛 뽀얀 밤이슬을 흠뻑 맞으며 검은 거리를 잠 없이 돌아다니는 것도 이 봄날의 낭만일 게다.


봄빛이 잉태한 목련꽃은 우아하지만 한편으론 슬프기도 하다. 절정의 순간, 갈변현상으로 인해 누추해질 자신이 싫어서 가지 끝을 떠나가는 것 때문인지, 떠남의 쓸쓸함 때문인지, 목련꽃이 떠나기 시작할 때가 되면 지난가을, 옷장 뒤편으로 밀어 넣었던 트렌치코트를 끄집어내게 만든다.

그래 봄이니깐, 그때니깐,

낭만을 위해, 약간은 성가셔도,

조금은 더 잊어버려도 괜찮다.


삶이 지어낸 변명 몇몇을 추려 꽃바닥 위에 흩뿌린다.

질척이는 목련의 꽃잎처럼 수이 삭아

언젠간, 자잘한 추억의 포말이 되길 바란다.

봄날의 포말은, 썰물을 따라 밀려오지만

때마다 다른 빛과 향기에 언제나 낯설다.


어쩌면 인간의 후회는 포말과도 같아서 아무리 후회한들 이미 지나간 시간은 스스로의 고해에 지나지 않을 뿐이고 입 밖으로 튀어나온 그 중얼거림은 삶이라는 퍼즐에 맞추기 어려운 조각만을 더해 넣을 뿐이다.


커다란 꽃잎 한 장이 문뜩 어깨 위에 툭 내려앉는다. 떠나보낸 가지 끝 자리엔 연초록의 새싹이 화사하게 돋아날 것이다. 목련은 사람보다 위대하다. 떠나보냄이 맞이함이란 걸 진즉에 알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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