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발리스를 찾아서, 실존으로 가는 길

노발리스를 찾아서, 실존으로 가는 길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하고, 여차저차의 일들을 거치면서, 나의 이름에 붙어 있는 문자들을 분석 내지는 고찰해서 얻은 것이라곤, 조상님 중에 한 영감님이, 이제는 제삿날에나 마주할 수 있게 되었고 어릴 적엔 먼 친척 뻘 정도로나 여겼으며, 커서는 남이나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을 너머 남보다도 못한 것 같다고 생각했던, , 정머리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쌀 한 톨만큼도 찾아지지 않았던 할아버지라는 인물에 의해 그것이 붙여졌다는 것과, 물론 그것조차 완전한 신빙성을 확보한 것은 아니지만, 두 개의 글자 중에서 끝자리 하나는 그나마도 사내아이라면 대대로 그냥 사용해야만 하는 소위 ‘돌림자’라는 것이 전부였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집안에서는 ‘탕건’이라는 흉물을 머리 위에 얹고 있었고, 집 밖을 나설 때면 ‘갓’(폭넓지 않은 갓)이라 불리는 검은 모자를 머리에 쓰고 다녔던 그 영감님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저지른 행위는 참으로 간단하였다.

거기에 대해, 나의 이름에 붙일 수 있었던 것이라곤 가운데 글자 하나뿐이었고 그것마저도 획수가 가장 작은, 단지 일 획의 한자 하나를 쭉 그어 넣음으로써 그는 할아버지라는 직책에게 부여된 나름의 도리를 다 하셨다고 여겼던 것이 아닌가, 짙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할아버지란 존재가 가까운 혈육을 가리키는 단어이긴 하지만, 알고 싶지도 않았던 여차저차한 형편이 그 영감님의 그릇된 처신을 원인 삼아 가족사에 굴곡지게 끼어들어 ‘할아버지’란 일 년 가야 겨우 한 두 번 볼까 말까 하는 ‘먼 동네 영감님’보다 더 먼 어느 영감님을 일컫는 이음동의어로 간주되었다.


이쪽 혈육의 일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그 영감님은, 무슨 바람이 불었던 겐지 손주 놈 이름 짓는 일에는 쓸데없이 간섭하고 싶었나 보다, 의무라기보다는 권리라고 여겼었다보다,라고 괜한 생각을 그 무렵에 떠올렸었다.


어쨌든 딜레마에 빠지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미 주어진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그것도 스스로 그것을 뜯어내고 개명한다는 것은 도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큰 부담을 안게 될 것이 분명하였다.

‘적당히 타협하기’는 세상을 살아가려면 익혀야 하는 가장 중요한 생존기술이다.


“그러면 뭐, 다른 이름 한 두 개쯤 더 가지면 되지.”

최선이 없다면 차선이 최선을 대신할 수 있다고 여기는 버릇은 종종 세상살이에서 쉬어갈 만한 자리를 만들어 준다. 어쨌거나 그 시절엔 ‘스스로에 의한 스스로의 이름’을 가져야만, 삶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아울러 나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주어진 이름을 그저 ‘사회통념상의 이름’으로 보고, 나라는 실체가 스스로 지은 또 다른 이름을 갖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헛웃음이 실실 나오는 것은, 나에 의한 나의 이름을 가질 때, 나는 나일 수 있다는, 얼핏 괘변 같은 논리가 당시에는, 새벽녘이면 젊은 사내놈의 그것이 그러하듯 나의 자아를 꼿꼿하게 발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는 것이다.


거기에, 타인에 의해 붙여진 나의 이름을 정(正)이라 여기고, 나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붙인 나의 이름을 반(反)이라 여기며, 그것들의 합(合)이 결국 나의 영토가 된다는 들뢰즈의 철학을 차용한 그럴싸하게 변질된 변증법적 논리는, 얼치기 열여덟 사내에게는 결코 거부하기 어려운 지독한 유혹일 수밖에 없었다.

작명이란 건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의미를 담은 몇몇 한자어들이 머릿속과 종이 위를 머물다가 지나갔고 잘 알려진 지성들(知聖, excellent intellectuals)의 이름들 또한 후보군에 올랐다. 어쨌거나 뒤집어엎기를 거듭하는 고민의 과정 끝에 건져 올린 것은, 프란츠와 노발리스, 그리고 헤르만이라는, 지난 몇 개월간 나를 괴롭히고 질책했던 작가 세 사람의 이름이었다.


결국에는 외국물을 먹으며 살아갈 팔자라는 것은 어쩌면 그때 이미 예비되어 있었던 것일 수 있다. 하긴 열여덟 사내의 삶의 폭이 그리 넓지 못했기에 어차피 익숙해진 지식의 영토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긴 했다.


어쨌든 그 순간 이 세 작가의 이름은 스스로가 생명의 호흡을 가진 살아있는 개체가 되어, 마치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듯이 보이다가도, 심연에 박혀 있는 뿌리 끝에서 서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떨어지지 않는 생명력 질긴 유기체가 되어 갔다.


그것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거듭된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다.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안전한 도피처의 입구엔 틀림없이 ‘타협’이란 문패가 걸려 있을 것이고 흔히 타협의 결과에게 결론(Conclusion)이란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결론 또한 상황 여하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릴 수 있는 여지가 있어 ‘최종 결론’(Final Conclusion)이란 말을 사용함으로써 ‘결정의 확고함’을 표명하는 일도 크게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타협의 결과물을 최종 결론이라고 하는 것에서 어폐를 느끼는 이들도 있겠지만, 뭐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일 일은 결코 아니란 것을 말하고 싶다.


당시의 결론은 먼저, 실존존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이름을 따서 프란츠로 살아보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마 <변신>의 주인공인 <그레고르 잠자>가 처한 상황이 가슴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스며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노발리스(Novalis)라는 이름으로, 종내에는 헤르만(Herman)이란 이름으로 살아가자는 것이었다. 실존주의와 낭만주의, 그리고 그 너머를 찾아가는 삶의 길을 일련의 이름들이 이끌어줄 것이라 당시에는 믿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에는, 헤르만 헷세의 <유리알 유희>(<유희의 명인 요제프 크네히트의 회상>, 독일어로는 Versuch einer Lebensbeschreibung des Magister Ludi Josef Knecht samt Knechts hinterlassenen Schriften)에 나오는 유희 명인 <요제프 크네히트>처럼 ‘지혜로운 앎’을 통해 세상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대자유인으로서의 노년을 맞이하고자 하는 열여덟 사내의 의도를 그 속에 깔아 넣었다.

그때란 것이, 언젠가는 분명 다가올 것이라고 확신하였지만, 시간이란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인지 뒤로 돌아가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순간에 처하듯이, 정확성을 가진 표현으로는 옮겨 담을 수 없었다. 막연한 기다림, 그것은 스물의 물기 찬 푸름이 경계하는 마른 갈색의 바람이었지만, 부족한 지혜의 공간을 넓혀갈 시간적 연장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기다려야 있어요, 아직 기다리고 있다니까요,라는 말로 아직 그 무엇을 기다리도록 만든 영원히 젊은 천재 시인 <랭보>나,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고도(Godot)’를 여태껏 기다리고 있도록 만든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의도를 뒤척거리지 않더라도 기다림은, 인간에게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의 본능을 찾아가도록 하는 부표와도 같은 것이다.


누구도 그때를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만 날을 세운다면 본능은 그것을 알 수 있다. 노발리스의 시간이 이미 다가왔다. 이제 프란츠는 노발리스이기도 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실존주의와 낭만주의는 선 하나 그어 나눌 수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노발리스를 찾아 길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절대의 허위가 없이 절실함에 나선 이 낯선 길’이 노발리스를 찾아가는 길일 것이다. 얼마나 가야 할지, 어디까지 가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시간과 공간의 문을 열어, 파란 꽃이 피고 지는 새 영토를 찾아갈 때이다. 들뢰즈가 말한 것처럼 그곳으로의 재배치를 통해 실존하는 자로서의 영토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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