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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와 베아트리체의 두 번째 만남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두 번째 만남


그녀를 기다리며 피렌체의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이 벌써 9년째이다. 피렌체에서의 시간이란 아르노 강을 흐르는 물살과도 같은 것이어서 그저 무심하게 흘러갈 뿐이란 것을, 언젠가부터 단테는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그것은 아무런 이유 없는 방황이 아니라 그녀를 향한 순례이기 때문이다. 언젠간 분명,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단테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아홉 살이었던 소년은 열여덟의 청년이 되었다. 열여덟은 세상의 많은 것들이 신기하게 보이고 그중에서도 특별한 매력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집착을 갖게 되는 나이이다. 베아트레체를 향한 열여덟 단테의 갈망은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단테는 오늘도 다른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베아트리체가 살고 있는 포르티나리 저택을 지나 피렌체의 거리며 아르노강의 다리를 걸어 다니고 있었다. 이렇게 하염없이 길을 걷는 것은 ‘영원한 사랑’을 서약하는 단테 스스로가 지어낸 일종의 의식이었다.   


한참을 걸어 다니다가 베키오다리 아래쪽에 있는 산타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의 난간에 기대어 아르노강을 흐르는 물결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눈 뜬 채로 깜빡 졸았는지도 모르겠다. 물결 위에 눈 같이 하얀 드레스를 입은 한 여인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단테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운명의 여인 베아트리체였다.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9년 만이다. 열여덟 살이 된 베아트리체는 고고함마저 느껴지는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하였지만 단테는 그녀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두 번째로 만난 곳은 산타트리니타다리가 아닌 베키오다리였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그 이유는, 피렌체를 흐르는 아르노강의 다리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유명한 것이 베키오다리이기 때문일 수 있다. 어쨌든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두 번째로 만난 곳은 ‘아르노강을 흐르는 다리’였다는 것은 의의를 제기하기 어렵다.(물론 피렌체의 어느 거리였을 거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     


베아트리체도 단테의 짝사랑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어쩌면 그것은 사랑에 대한 단테의 목마름이 지어낸 환영일 수도 있겠지만,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단테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르노강의 물결에 반짝이는 햇살의 눈부심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을 단테 또한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단테는 평생 동안 “눈부시게 아름다운 베아트리체가 그날 물살의 반짝임과 함께 다정한 미소로 나에게 인사했다.”라고 믿기로 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뜨거웠던 베아트리체를 향한 열망은 그 순간 단테를 얼어버린 듯 굳어버리게 만들었다. 9년이라는 시간 동안 단테가 행했던 사랑의 순례는 순식간에 종착지에 다 달았다. 

후일 단테는 그날의 일을 이렇게 회고하였다.

“다시 만난 베아트리체가 나에게 인사를 건넨 순간, 누구도 볼 수 없는 마음의 방 한편에 숨어 지내고 있던 생명의 영혼은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격정적으로 요동쳤으며, 나의 몸은 아주 작은 맥박소리에도 놀라 부들부들 떨었다. 나에게로 온 신은 나 자신보다 더 강렬하게 나를 압도했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는 다시 만난 일에 대해 무수한 추측들과 상상들이 문학과 그림을 통해 난무하고 있지만 그날 단테는 그저 먼발치에서 그녀를 바라만 보았을 뿐 말을 붙이기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못했을 것이다.


*** ***

1283년 5월 1일은 단테의 일생 전체를 뒤흔든 중대한 일이 벌어진 날이다. 그것은 이날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두 번째로 만났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날이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처음 만난 지 정확히 9년째라는 것은 극적인 상상력이 더해지도록 만들고 있다.  

이날 베아트리체가 단테에게 인사를 건넨 것은 그녀가 타인을 응대하는 의례적인 인사치레 정도였을 테지만, 그녀의 사랑을 갈구하던 열여덟의 청년 단테를 황홀감에 빠지게 만들기에는 충분하였다. 그날 밤 단테의 꿈에 베아트리체와 사랑의 신이 나타났다. 그날 이후부터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향한 사랑을 더욱 불태우며 그녀를 향한 연가(시)를 쓰기 시작했다. 1290년 6월, 사랑의 뮤즈 베아트리체가 세상을 떠나자 그녀를 향한 단테의 연가는 더욱 애절해졌다. 베아트리체를 그리며 쓴 텍스트들을 엮어서 발간한 단테의 시집이 <비타 노바>(신생 또는 새로운 삶)(129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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