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발치에서라도 그녀를 다시 보고 싶다는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의 간절한 바람은 피렌체의 돌바닥을 하염없이 돌아다니게 만들었다. 그렇게 정처 없이 거리를 헤매는 동안 소년은 어느덧 청년으로 성장하였다.
아홉 살이 되던 해인 1274년 봄, 아버지를 따라 참석했던 5월제 기념행사에서 소년 단테는 소녀 베아트리체를 만나 마음뿐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사로 잡혔다. 훗날 단테는 그날의 기억을 “그때부터 사랑이 내 영혼을 압도했네.”라고 밝혔다.
1274년의 첫 만남에서부터 1321년 단테가 죽는 날까지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일생 대부분과 글들을 바치며 사랑한 단 한 명의 여인이 되었다. 베아트리체를 향한 사랑으로 인해 단테는 행복하였지만 외로웠고, 불행하였지만 기쁨이 충만하였다. 세상의 이데올로기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진짜의 나를 찾아가는 순례의 길에 오르는 것, 스스로를 불행과 외로움의 울타리로 밀어 넣는 것, 사랑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베아트리체(1265 - 1290년 6월 8일)의 성(姓)은 포르티나리(Portinari)이다. 그래서 그녀의 전체 이름은 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Beatrice Portinari)이다. 그녀는 1265년 피렌체의 유력한 은행가인 폴코 포르타나리의 딸로 태어나서 1284년 피렌체의 또 다른 은행가인 시몬 데이 바르디(시모네 디 발디)와 결혼하였다.
대부분의 문헌에서는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난 것은 9년 동안 단 2번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그들의 첫 만남은 1274년 아홉 살 때 있었고 두 번째 만남은 1283년 열여덟 살 때 있었다.
사실 베아트리체의 삶에 대해서는 자세한 자료가 남아 있질 않다. 그로 인해 ‘베아트리체’라는 여자의 존재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어쩌면 ‘나의 베아트리체’는, 사랑에 대한 단테의 갈구와 문학적 상상력이 결합하여 창조해 낸 상징적인 존재일 수 있다. 어쨌거나 전해진 바로는 1284년 베아트리체가 결혼하였고 바로 다음 해인 1285년에는 단테 또한 결혼하여 그들만의 가정을 각각 꾸렸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면 그러할까, 티끌 하나 없이 빛나는 순백의 피부며, 맑은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지닌 눈이 부실만큼 어여쁜 베아트리체의 용모와, 거기에 아홉 살이라는 나이를 잊어버리게 만드는 원숙하고 우아한 몸짓, 사람들을 응대하는 세련된 매너는, 아홉 살 소년 단테를 사랑에 빠지게 만들기에 넘칠 만큼 충분하였다. 그날 아홉 살 단테의 눈에는 오직 그녀만이 보였다.
그날 이후 단테는 단 하루라도 베아트리체를 잊을 수 없었다. 당장에라도 그녀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단테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녀의 집 부근을 서성거리는 것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포르티나리 저택이 단테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떤 날에는 그녀가 살고 있는 저택 인근의 길가에 멍하니 앉아서 온종일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갈망했건만 베아트리체를 만나기는커녕 그림자 한 조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행여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애초부터 그녀는 천국에서 내려온 천사였기에, 어쩌면 천국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다. 그녀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돌아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해 보지만 야속한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아무리 마음을 달래려고 해도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은 지워지지 않고 안개빛 환영이 되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침이면 베아트리체의 환영과 함께 잠에서 깨어난 단테는 하루 종일 그 환영과 함께 얘길 나누었고 길을 걸었다. 비록 환영에 불과하였지만 단테는, 베아트리체가 항상 자신과 함께 하고 있다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