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텍스트를 고르다가
한정된 텍스트 몇 개를
검게 토해내다가 보면
어깨너머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그를 느끼곤 합니다
잔숨결을 쫓아 고개를 돌리려 해도
빈 눈빛과 빈 표정에 행여
화들짝 놀라게 될까 봐
지금껏 마주하지는 못했습니다
바람은 늘 거칠게 불어오다가
흔적 없이 사라져 갑니다
아마도 바람의 저쪽 끝에서
그가 걸어왔을 것 같습니다
거칠게 여기까지 왔지만
아무 흔적 없이 사라져 가니까요
억새 들판 같은 가슴을 여미려고
팔을 들어 손가락을 펼쳐 보지만
바람은 그냥 지나쳐갈 뿐이고
어제와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벌써부터 비어 있었고
그저 막막하기만 해서
그냥 두고 지내온 것이
언제 적부터였는지
기억조차 잃어버렸습니다
비었다는 것은 어쩌면
시간의 짖꿎은 장난질 때문이거나
누군가의 천형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은 주섬주섬
더 해 넣으려고도 했었지만
어디가 그곳이며 어디까지인지
아무것도 가늠할 없기에
그냥 밀어 둔 채로
지금껏 지내왔습니다
이렇게 검은 텍스트 몇 개를 고르다 보면
비어있는 한정된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