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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2 - 채색된 영원

그 남자#2 - 채색된 영원


‘어린 시절’이 머릿속 한 부분을 차지하고는 있지만, 누구나, 막상 기억의 선반에서 그것을 끄집어 내리게 되면 안개 자욱한 새벽에 시골집 굴뚝에서 구불하게 피어오르는 아침밥 짓는 연기처럼 그것의 원형을 더듬으려는 것이 의미를 잃어버리곤 한다.

사실 그것은 순서 없고 두서없이 불쑥 고개를 내밀기 일쑤이기에 대체 그것이 무엇이며 언제까지를 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조차 아물거리게 된다.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는 굳이 두말할 가치가 없으며, 같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떠올리는 상황과 감상에 따라 크고 작은 변형이 가해지는 것이 그것이기에 특정한 텍스트에 그것을 가두려는 짓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의 시기에 대해서는 견해를 피력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 ‘인간으로서의 삶’이 아직 떡잎조차 제대로 올리지 못한, 단위로 보면 다소 모호하기 짝이 없는 시절을 그것이라고 칭하고 있다.

돌아볼 때마다 아련하고 가슴 먹먹해지는 그 시절은 어쩌면 애초부터 경계가 희미한 것이었거나 시간의 흐름이 경계를 북북 문질러 지워버린 것일 수 있다.


기억 속에 남겨져 있는 그의 어린 시절은 들판이며 마을 뒷산을 혼자서 돌아다니는 사내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간혹은 또래의 사내아이 몇 명이 그의 곁을 채우고는 있지만 대게는 혼자서 그곳을 돌아다니는 모습만이 기억의 선반 위에 덩그러니 얹혀 있다.


논둑에 맞닿은 길고 좁은 개울에서 물장난 치고 놀던 무더운 여름의 날들과, 엉성하게 엮은 얼음썰매를 하염없이 지치고, 솜털 같은 눈을 굴려 만든 두 개의 덩어리를 위아래로 쌓아 올리고서는 코며 입, 눈과 팔을 구겨 넣던 차가운 겨울의 날들이 바람이 구름을 밀어가듯 그곳의 높은 하늘과 커다란 들판과 옹기종기 마을을 스쳐 지나갔다.

영원하기를 바랐을 그 시간 속에서 자연인으로서의 나에 대해 눈을 뜬 것 같다고, 어느 날엔가 에스프레소 커피 두 잔을 연거푸 마시면서 그가 말했다.


70년대의 어느 해 삼월에는 국민학교 2학년이 되었고 몹시도 더웠던 여름 무렵, 당시 대한민국의 많은 대지들이 앓아야만 했던 몸살이 그곳에도 들이닥쳤다.

정경으로서야 완연한 시골마을이었지만 행정 상으로는 도시의 한 부분이었기에 개발과 발전이란 시대적 흐름은 그곳의 들판과 뒷산을 파헤쳤고 아스팔트타르를 두껍게 깐 검은 도로길과 반듯하게 각이 잡힌 알록달록한 집들과 건물들이 점차 그곳에 채워졌다.


물론 마을 어른들이야 진즉에 알고 있었겠지만, 학교수업이 끝나면 혼자서 들판을 돌아다니다가 저녁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와서 밥 먹고 숙제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던 아이는 채 마음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이삿짐을 꾸려야만 했다.

그렇게 아이는 철거민이 되었고 아이의 그곳은 추억이란 이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그때의 일은 아이에게 “세상에 영원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갑작스레 밀려든 떠남의 시림과 이별의 아픔을 아이는 대체 어떻게 견딘 것일까.

아마도 아이는 “살아가다 보면 어떤 것들은 가슴에 묻어야만 한다.”는 것 또한 물기 젖은 눈으로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이별의 먹먹함 때문인지, 이별의 아픔 때문인지 그날 이후 아이는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했다.

집시와도 같은 유랑생활이 아이를 반겼고 아이는 그것에게 몸과 가슴을 던져 넣었다.

아이의 유랑은 타의에 의해 시작된 것이기에 체념을 동반한 수동적인 적응이 요구되었지만 언젠가부터는 능동적인 자의가 되어 있었다.


집 한 채 지을 땅을 사서 몇 달간의 공사로 <반양옥집>을 짓고 시멘트가 채 마르기도 되기 전에 식솔들을 그 집에 끌고 들어가서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일 년 정도를 살다가 그 집이 팔리면 식솔들을 남의 집 문칸방으로 옮기고, 남은 돈으로 다시 땅을 사서 집 한 채를 지어 파는 일이 가장으로서 생계를 유지하는 당시의 수단이었던 아비 때문에, 사실 그 일이 여섯 식구의 생계를 해결하기에 충분치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그 일로 인해, ‘우리 집’이라고 불렀던 자가로의 이사와 ‘남의 집’이라고 불렀던 셋방으로의 이사를 집시들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살아가는 듯 매년 겪어야만 했다.


뫼비우스의 띠를 도는 것처럼 반복되었던 이사와 이사들과 그때마다의 전학과 전학들이 있었지만 그곳 들판과 마을 뒷산, 들판을 흐르는 작은 개천과 못과 물웅덩이를 가슴에서 내지는 못했다.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어떤 것은 물빛 안개로 채색한 영원 속에서 더듬을 수 있게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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