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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3 - 만화방과 운동장

그 남자#3 - 만화방과 운동장


어쩔 수 없었기에 아이가 그곳을 떠난 것은 순전히 타의에 의한 것이었다.

그날 이후 아이가 만화방을 들락날락하며 지내게 된 것은 타의와 자의가 타협한 결과였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서둘러 씻고 후다닥 밥 먹고 종종걸음으로 학교에 가는 것은 하나 달라질 것이 없었지만, 학교의 이름은 00 국민학교가 00 국민학교로 바뀌어 있었다.

어른 철거민은 철거민 신분만을 가지면 되지만 아이 철거민은 전학생이란 신분 또한 가지게 된다는 것을 아마 당시의 어른들은 몰랐을 것이다.


어쨌든 그곳 또한 대구의 변두리였고 인근의 철거지역에서 전학 온 학생들이 적지 않았기에 전학생에게 관심을 두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그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게 전학이란, 아비와 어미가 꾸린 짐을 따라 어느 날인가 불쑥 옮겨와서는, 언젠가는 다시 짐을 꾸려 문득 떠나가야만 하는, 이사라는 동적행위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이사와 전학을 통해 새롭게 살아가게 된 곳은 이상하면서도 신기하였다.

그전에 살던 곳에서는 논과 밭, 들판이 동네와 동네의 경계를 이루고 있었기에 윗동네라든지 아랫동네와 같은 이름을 붙이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지만, 이사 온 곳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골목과 골목마다 집과 집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기에 동네라고 구분 지을 수 있는 어떤 경계를 찾아낼 수 없었다.

그래서 궁리해 낸 것이, 크게 다리 아프지 않을 만큼 돌아다니다가 조금 넓은 골목길이나 차가 다니는 도로를 만나면 그것을 경계 삼아 윗동네 1, 윗동네 2 식으로 이름을 붙이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이에 의해서 어떤 동네는 큰 동네가 되었고 어떤 동네는 작은 동네가 되었다.

대개의 경우 큰 동네는 차가 다니는 도로길에 붙어 있었다.


아이가 돌아다녔던 그 시절의 동네들에는 이발소보다 만화방이 더 많았다.

조금 큰 동네의 버스정류장 근처에는 이발소가 꼭 하나씩은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동네의 사람들은 큰 동네로 걸어가서 머리를 깎았다.

그전에 살던 곳에서는 오일 장이 서는 날이면 장터 이발소를 찾아 머리를 깎곤 했지만 신개발지인 그곳에서는 언제든지 머리를 깎을 수 있었다.


아이의 눈을 반짝이게 한 것은 만화방이 동네마다 한두 개씩은 꼭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만화방들을 떠올릴 때면 언제나 눈웃음이 지어진다.

가게문 앞에 <00 만화방>이라는 글자가 검거나 붉은색의 페인트로 갈겨져 있는 좁은 공간에 들어서서 아이는 그 시절의 영웅이었던 바벨 2세와 철인 28호, 아톰 그리고 로보트 태권브이 같은 만화책 속 주인공들을 노트의 한쪽 구석에 옮겨 그리곤 했다.


만화책 한 권에 오원(아마도)이었던 만화방에서 겨우 한 권으로 오후 한 나절을 보내는 아이를 만화방 주인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가 궁리해 낸 것이, 다른 아이들이 잘 앉지 않는 자리를 이용하는 것과, 동네의 이 만화방 저 만화방을 번갈아 다니는 것과, 윗동네나 아랫동네의 만화방을 순례하듯 이용하는 것이었다.


아무튼 궁하면 용감해진다는 것은 세상의 진리이다.

아이는 비록 어렸지만 만화방 주인의 눈치를 어느 정도는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경지에 이미 도달해 있었다.

집에 돌아가봐야 점심밥 챙겨줄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기에 하굣길에 들리는 만화방을 아이는 이전 동네에서 돌아다니던 들판쯤으로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말을 하고 보니 아의의 배가 몹시도 고팠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누군가 돌아와서 밥을 챙겨주는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가곤 했으니, 그 정도의 허기는 그럭저럭 참을만한 것이었나 보다.

빛바랜 사진 속의 아이가 무척이나 말라있는 것은 그 시절의 배고픔과 연관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에 교과서며 노트의 구석을 채웠던 만화 속 캐릭터들은 점차 풍경화나 정물화 같은 형태로 바뀌어갔고, 그림 잘 그린다는 칭찬 때문인지 언젠가부터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겠다고 아이는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표현은 직업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나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이 물리적인 행위가 일어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는 화가가 되지 못할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후일의 어느 날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한 의미를 확장하였다.


그림을 그리는 것에는, 물리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 이외에도, 정신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형이상학적인 행위를 포함할 수 있다는 논리를 세움으로써 [여우와 포도] 이야기가 주는 교훈을 현실의 세상에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주머니가 비어있는 날이면, 사실 그런 날이 훨씬 더 많았기에 몇 번은 엄마의 지갑에 몰래 손을 대었지만, 그렇게 하라고 누군가 시킨 것은 아니었지만 국민학교 운동장을 혼자서 서성거려야만 했다.

그럴 때면 운동장이 혼자서 돌아다니던 어린 시절의 들판이었다.


만화방에 갈 수 없었던 그 시절의 더 많던 날들에는, 혼자여야 한다는 삶의 두려움을 너무 일찍 알아차렸다는 죄를 저질렀기에 그에 대한 형벌을 받아야만 했다.

누가 내린 판결인지는 알 수 없기에, 만약 신이 그랬다면 분명 그 신을 원망했겠지만, 시지프스가 하염없이 돌을 굴려 산꼭대기로 올려야만 하는 것처럼 그 형벌은 기약 없이 지속될 것 같았다.

그래도 아이는 그 형벌 또한 견딜만한 것이라고 여겼나 보다.


누군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어둑어둑 어둠이 내리는 초등학교의, 세상에서 가장 넓다고 느껴지는 운동장의 녹슨 그네에 매달려 아이는 저녁노을의 화려한 침몰에 빠져들다가, 연이어 찾아드는 검은 밤을 적막함으로 그림을 채우곤 했다.

그렇게 아이는 학교운동장과 만화방에서 낡은 노트 한 편에 뭔가를 계속 긁적거리며 삶과 인생을 익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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