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와 흑사병

카라바조의 출생과 가족, 그리고 어린 시절에 대해

카라바조와 흑사병


카라바조의 시간은 16세기말에서부터 17세기 초까지이다.

따라서 카라바조 또한 흑사병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1576년에 이탈리아 북부지역을 휩쓴 흑사병은 카라바조의 인생을 뒤흔들어 놓았다.

밀라노에서 살고 있던 카라바조의 가족은, 흑사병을 피하기 위해 베르가모(Bergamo)의 남쪽 타운인 카라바조 지역으로 급히 이주하였다.

하지만 바로 다음 해인 1577년에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흑사병에 걸려 같은 날에(또는 비슷한 날에) 한꺼번에 사망하였다.

그때 카라바조의 나이는 겨우 여섯 살이었다.


흑사병은 카라바조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만약 1576년에 이탈리아 북부지역에서 발생했던 흑사병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카라바조는,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천재화가 카라바조로서의 삶을 살았기보다는, 16세기 말과 17세기 초를 살아간, 손재주는 좋지만 그저 범부에 지나지 않는 한 남자 미켈란젤로 메리시로서 삶을 살다가 사라졌을 수 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흑사병이 물러났다.

장터며 광장에는 사람들의 북적임이 돌아왔다.

죽음은 이제 일상으로부터 격리되었고 살아남은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었다.


흑사병으로 인한 죽음의 공포가 휩쓸고 지나간 시대에, 혼자 살아남은 여자의 몸으로 어린 자녀들을 돌봐야만 했던 어머니의 슬픔과 절망을 카라바조는 맏아들로서 묵묵하게 바라보아야만 했다.

그때의 카라바조는 비록 아직 어린 나이이기는 했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이 집안에 남아 있는 ‘가장 나이 많은 남자’라는 현실의 무게감을 어떤 식으로든 인지하였을 것이다.


아마도 카라바조는 화가가 된 후에 언젠가,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것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질 않다.

어쩌면 카라바조는 자신이 그린 그림 속의 어떤 여인에게 그의 어머니의 모습을 이입시켰을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이에 대한 것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궁금증은 추측을 낳고, 추측은 가설을 세우며, 가설은 연구와 검증을 거쳐 진실이라는 옷을 입게 되는 법이다.

물론 거기까지 가는 것에는 끈기와 인내라는 시간의 마법이 필요하다.

시간은 언제나 인간의 편은 아니지만 괜찮다.

가설로만 남겨진다 해도 나쁠 것 하나 없는 것이 화가 카라바조에 대한 것이기에.


아무튼 어린 시절, 소중한 가족들과 지인들을 연이어 잃으면서 카라바조의 가슴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절망과 그로 인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날카로운 생채기가 새겨졌다.

또한 이러한 것들은 카라바조의 인격 형성과, 삶에 대한 태도 및 작품 세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에 대해서는 당시 카라바조가 처했을 상황들에 대한 되새김질만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하지만 죽음이 일상화되었던 시대를,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살아간 카라바조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완전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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