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이 물러간 후의 카라바조

카라바조의 출생과 가족, 그리고 어린 시절에 대해

흑사병이 물러간 후의 카라바조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어머니 루치아 아라토리의 현명한 처신 덕분에 흑사병 이후에도 카라바조의 가족은 스포르차 가문(Sforzas Family) 및 코론나 가문(Colonna Family)과 나름대로의 ‘좋은 관계’를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는 것이다.


당시 스포르차 가문과 코론나 가문은 이탈리아 북북 지역에서 가장 유력한 가문이었다.

물론 그 관계를 좋은 관계라고 말하는 것은 카라바조 가족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그들 명문가의 입장에서는 ‘가장을 잃고 여자 혼자서 자식들을 돌봐야 하는 아랫사람에 대한 호의 내지는 배려 차원의 관계’ 정도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그 관계는 상하가 분명한 수직적인 것이었을 뿐 결코 수평적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카라바조의 아버지 페르모 메리시가 생전에 이들 가문에게서 상당한 신뢰와 지지를 받았을 것이란 점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페르모 메리시가 흑사병으로 인해 사망한 후에도 그들 가문이 카라바조 가족과 관계를 완전하게 끊지 않았다는 것과, 후일에 화가 카라바조가 저지른 각종 기행에도 불구하고 그들 가문이 지속적으로 카라바조를 후원해 준 것에 대한 설명이 어려워질 수 있다.


그들 가문과의 관계가 어떠했든지 간에 당시 스포르차 가문 및 코론나 가문과 이어나간 관계는 후일에 카라바조가 로마에서 그들 가문의 후원을 통해 화가로서 자리를 잡고 명성을 얻는 것에 있어 중요한 발판이 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카라바조의 어린 시절과 성장기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완전히 신뢰할만한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카라바조의 전기와 여러 가지 문헌들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카라바조는 흑사병을 피해 밀라노에서 카라바조 지역으로 가족 전체가 이주했던 5살(1576년) 무렵부터 13살이 되던 해인 1584년까지(이 해에 어머니 루치아 아라토리가 사망하였다.) 약 8년간을, 아버지 페르모 메리시가 사망한 후에도 약 7년간을 더,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주의 베르가모에 속하는 한 작은 타운인 카라바조에서 계속해서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카라바조는 현재 약 16,000여 명의 인구가 살아가고 있는 약 32평방 킬로미터(약 12평방 마일) 크기의 작지만 아름다운 전원 마을이다.)


어머니 루치아 아라토리가 1584에 사망하면서 카라바조에게 얼마간의 유산을 상속해 주었고 그 유산 덕분에 밀라노에서 도제기간을 마친 후에 약 4년간을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기록를 통해 1577년 아버지 페르모 메리시 사망하면서, 남아 있는 가족들이 살아갈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재산을 남겼을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흑사병으로 인한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도 카라바조 가족의 생활은 크게 어렵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1584년 13세의 카라바조는, 당시 밀라노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던 유명 지역 화가인 시모네 페테르자노(Simone Peterzano, c.1535 – c.1599))가 운영하는 화실(공방, 작업실)에 도제로 입소하여 미술 교육을 받게 되면서 카라바조 타운을 떠나 밀라노로 거처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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