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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네 페테르자노의 자화상>과 카라바조의 예술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자화상>이 카라바조의 예술에 미친 영향에 대해


첫 번째로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자화상>(<Self portrait of Simone Peterzano>, 1589)을 감상해 보자.

말 그대로 이 작품은 화가인 시모네 페테르자노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의 붓질을 통해 캔버스에 담아 넣은 것이다.


이 작품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그림 속의 시모네 페테르자노에게 조사되고 있는 빛과, 그 빛이 만들고 있는 조명효과이다.


1589년에 제작된 이 자화상에서 빛은, 그림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그의 얼굴과 목깃, 그리고 그림의 왼쪽 하단에서 붓을 들고 있는 그의 오른손과 왼손의 일부분에 집중되고 있다.

빛이 집중되고 있는 부분들은 당연히 밝게 처리되어 있다.

그렇지 않은 다른 부분들은 어둡다 못해 검게 처리되어 있어 마치 ‘빛뿐만이 아니라 어둠조차 집어삼킨 듯하여, 어둠을 배경 삼은’ 것 같은 강렬한 대비의 느낌을 주고 있다.

심지어 시모네 페테르자노가 입고 있는 검은색의 옷과 그 잔주름까지도 밝은 부분들을 부각하기 위한 의도된 장치로 보인다.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자화상.JPG

화가 카라바조의 스승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자화상>

<Self portrait of Simone Peterzano>, 1589



그림 속의 시모네 페테르자노에게 조사되고 있는 빛은 ‘자연스러운 빛의 흐름’과는 거리가 있다.

빛이 조사되고 있는 방향을 따라가다 보면 적어도 2개 이상의 광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공적인 광원이 사용된 것이다.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빛은 그림 속의 자신에게 조사된 것일 수도 있고, 그림 밖에서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신에게 조사된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이 광원은 현실에서 물리적인 수단으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고, 화가의 의도가 반영된 상상이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이 그림에서의 빛은 검은 장막을 배경으로 인공적인 조명을 사용한 것과 같은 강렬한 대비를 만들어 있어, 눈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빛과 어둠 사이에 어떤 경계가 존재하는 것 같은 아주 특별한 느낌을 받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전통적인 키아로스쿠로 기법과는 상당한 다름이 있다.


이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독자들은 ‘카라바조의 테네브리즘’을 만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자화상>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회화적 기법을 ‘전형적인 카라바조의 테네브리즘’이며, 시모네 페트르자노가 카라바조의 스승이기 때문에 ‘카라바조의 테네브리즘이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회화적 기법에게서 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학자에 따라서는 그와는 전혀 다른 방향의 해석을 내놓게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절대적으로 단정 짓는 것 또한 이성적인 행위라고 할 수만은 없다.


시몬네 페테르자노와 카라바조는 전통적인 키아로스쿠로 기법을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테네브리즘’이라는 회화적 기법으로 진화시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테네브리즘은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테네브리즘’인 것이고, 카라바조의 테네브리즘은 ‘카라바조의 테네브리즘’인 것이다.

이로써 카라바조와 시모네 페테르자노는 ‘화가로서 제자와 스승’이라는 관계를 너머 ‘테네브리즘’이라는 회화적 기법의 문을 연 화가라는 예술사에서의 공통분모를 가지게 되었다.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해석하는 일은 다분히 ‘영적이면서 지적이고, 감상적이면서 감성적인, 오직 인간에게만 허락된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여서 그것을 행하는 이의 눈과 가슴, 지식과 주관의 터치가 ‘감상’이라는 행위에게 더해지거나 감해지게 된다.

따라서 누가 어떠한 주장을 내어놓든 간에 그것을 두고 ‘전적으로 완전하게 옳은 것‘이라든가 ‘전혀 맞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인간적으로 원숙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소위 ‘천한 인문학’이 대세인 양 기를 세워 휘몰아치는 세상에서 스스로를 ‘제대로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는 인간’이라고 여기는 이라면, 심미안(審美眼)의 빗장을 활짝 열고 좀 더 개방적인 해석과 접근이 필요하다.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자화상>이 그려진 1589년에 시모네 페테르자노(1535년 생)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리고 화가로서 절정의 원숙미’에 도달한 오십 대 중반이었다.

물론 16세기의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인생의 끝자락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경제적 여건이 허락되고 특별한 사고나 큰 병에 걸리지 않은 경우라면 지금 우리의 수명만큼을 누린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르네상스 최고의 예술가 중에 한 명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르티(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57 - 1564)의 경우, 당시 남성의 평균 수명의 거의 두 배에 해당하는 89년이라는 시간을 살아가면서 작품활동을 이어 갔다.


시모네 페테르자노는 인생의 정상에 서서 자신의 삶과 예술을 돌이켜보며 스스로의 모습을 캔버스에 옮겨 담았을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얼굴에 조사된 강렬한 빛이 얼굴의 주름을 지우고 있다.

빛은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얼굴에 새겨진 골을 ‘세월로부터 구원’하고 있다.

얼굴에 비친 빛은 단순한 빛이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타임머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얼굴의 전체적인 윤곽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이와는 달리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눈빛에는 젊은 날의 호기심이 가득 어려 있다.

인생의 정상에 올랐지만, 체념과 만족의 눈빛으로 세상의 일들을 바라볼 수 있지만, 아직은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고, 아직은 그것들을 할 수 있으며, 가야 할 길이 아직까지 거기에 남아 있고, 그 길을 기꺼이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기에, 두 눈의 반짝임을 내려 둘 수 없는 것이다.


시모네 페트르자노가 이 초상화를 그린 1589년에 카라바조(1571년 생)는, 이와는 달리, 고작 18살의 풋내기 무명화가에 불과하였다.

이제 막 도제생활을 마친 이 시기의 카라바조는 밀라노를 중심으로 베네치아와 이탈리아 북부지역을 유랑하듯이 돌아다니면서, 르네상스시대가 남긴 위대한 예술작품들과 당대 유명 기성 예술가들이 탄생시킨 뛰어난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정립해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 시기의 카라바조는, 화가라는 직함을 이름 앞에 붙인 명함을 다른 이에게 내밀자니 아직은 주저하게 되는, 한낱 애송이 화가에 불과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의 카라바조는 아직까지 ‘카라바조의 테네브리즘’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상태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카라바조는 1589년에서 1592년 사이에 스승의 자화상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자화상>을 감상하였을 것이다.

1589년은 시모네 페테르자노가 자신의 자화상을 완성된 해이고, 1592년은 카라바조가 밀라노를 떠나 로마로 완전히 거처를 옮겨간 해이다.

카라바조의 1592년 이후의 행적에서는 밀라노가 언급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카라바조가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자화상>을 감상한 것은 늦어도 1592년 이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자화상 앞에 서서 두 눈을 반짝이고 있는 십 대 후반 또는 이십 대 초반의 젊디 젊은 카라바조를 상상하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지적 유희이다.

스승의 붓질로 탄생한 자화상은 이날, 아직 자신의 작품세계를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무명의 화가 카라바조에게 ‘정신을 내리찍는 도끼’로써 작용했을 것이다.

<시모네 페테르자노 자화상>에서의 빛과 어둠은 결국에는 카라바조의 빛과 어둠에게로 스며들어서 ‘카라바조의 테네브리즘’이라는 새로운 회화적 기법으로 승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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