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 <그리스도의 매장>이라는 제목을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통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매장>이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매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 이유는 우리의 문화권에서 생각하는 ‘매장’의 장면과는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매장(埋葬): (명사) 시신이나 유골 따위를 땅속(무덤 안) 따위에 묻는(안치하는) 행위
카라바조의 <그리스도의 매장>
Deposition of Christ(Entombment of Christ)
1602‑1604, 300×203cm, 바티칸 피나코데카(Vatican Pinacoteca)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그리스도의 매장>과 카라바조의 <그리스도의 매장>이 묘사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무덤에 매장하고 있는 장면’이 아니라 ‘십자가에 매달려 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이 땅으로 내려지고 있는 장면’에 가깝다.
이 당시 유대인들의 매장 풍습이 지금 우리의 풍습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들 작품의 제목으로 ‘매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 작품의 이탈리아어 원제목은 <Deposizione>이며 영어 제목은 <Deposition of Christ> 또는 <Entombment of Christ>이다.
이탈리아어에서 ‘Deposizione’은 일반적으로는 ‘증언, 진술’을 의미하지만, 종교적 예술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이 십자가에서의 내려지는 장면을 묘사하는 것’을 일컫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영어에서의 ‘depostion’은 ‘직책에서 내려짐’을 의미하는 ‘(주어진 직책에서의) 면직, 폐위’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리고 ‘Entombment’는 ‘매장, 안치, 무덤이나 석관(tomb) 안에 시신을 안치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와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의 매장>으로 번역하고 있는 <Deposition of Christ> 또는 <Entombment of Christ>는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게 된다.
<Deposition of Christ>, <Deposizione>
<Deposition of Christ>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내려짐>,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를 내림>, <그리스도의 하강>과 같이 번역을 한다면 ‘십자가에 매달려 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땅으로 내리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의 내용과 완전하게 부합하게 된다.
또한 성경의 내용을 모티브로 삼아 <그리스도의 면직>, <그리스도의 수난>과 같이 상징적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Entombment of Christ>
<Entombment of Christ>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그의 시신을 무덤에 안치되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표현이다.
따라서 한글로는 <그리스도의 장례>, <그리스도의 매장>, <예수의 매장>, <예수 그리스도의 매장> 등과 같이 ‘매장’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번역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Entombment of Christ>에 대한 한국어 번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라는 장면’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원제목 <Deposizione>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 <그리스도의 매장>으로 번역되었을까
이와 같이 이탈리아어 원제목인 <Deposizione>과, 그림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면 <Deposition of Christ>을 번역하여 한글 제목으로 사용하는 것이 더 적합할 수 있다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겠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Entombment of Christ>을 번역한 <그리스도의 매장>이 한글 제목으로 소개되고 있다.
여기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이 땅으로 내려지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에게 어떤 이유로 <그리스도의 매장>이라는 제목을 붙이게 된 것일까에 대한 고찰이 필요해진다.
첫 번째로는 <Deposition of Christ>을 직접적으로 번역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내려짐>과 같이 ‘내용을 반영한 다소의 의역’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 수 있다.
실제로 그림에서는 ‘그리스도의 시신이 매달려 있던 십자가’가 가시적으로 묘사되어 있지 않다.
또한 <Deposition of Christ>을 그대로 번역하여 한글로 옮기게 되면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를 내림> 또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내림>과 같이 다소의 문맥상 어색함을 느꼈을 수 있다.
거기에다가 ‘내려짐’이라는 단어의 ‘또 다른 종교적 해석’으로 인해, 행여나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작용 또한 고려하였을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면직>과 같이 상징적인 표현을 제목으로 사용한다면 그리스도 예수가 자신의 직에서 완전히 끌어 내려진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어 이로 인한 종교적 논쟁거리를 제공할 여지를 미연에 방지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면직’이라는 것이 ‘세속을 살아가는 인간 전체를 대신하여 피를 흘림으로써 인간을 구원하라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존의 사명을 완수하였기에 당장에는 그 직을 면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하여야 하겠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불필요한 종교적 해석이 끼어들 우려를 감안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한국에서 ‘예술사’라는 학문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시점에는 장례 문화에 있어 ‘매장’이라는 단어가 사회적으로 친숙하였을 것이기에 <Deposition of Christ>을 번역하는 것보다는 <Entombment of Christ>를 번역하여 <그리스도의 매장>이라는 ‘짧고 익숙한’ 제목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선호하였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거기에 더해 <그리스도의 매장>으로 번역한 또 다른 요인으로는 카라바조와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작품들 모두 그림의 배경이 ‘어둡다는 것을 넘어 사물을 구분할 수 없을 만큼이나 몹시도 검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당시 유대인들의 매장 풍습은 시신을 땅에 묻는 것이 아니라 동굴과 같이 폐쇄된 실내 공간에 시신을 안치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 공간은 컴컴하게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그림이 묘사하는 것은 <Deposition of Christ>이 아니라 <Entombment of Christ>라고 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그림의 배경이 검다는 점을 바탕으로 보면 그림은 ‘그리스도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리는 장면’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의 시신을 매장 장소로 옮겨와서 그곳에 안치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배경이 검은 것에 대한 이런 식의 해석은 ‘테네브리즘’이라는 회화적 기법을 감안하지 않았을 때에만 설득력을 갖게 된다.
거기에다가 카라바조와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그리스도의 매장> 이외에 이와 동일한 제목을 사용하고 있는 다른 화가들의 작품들은 검은색을 그림의 배경으로 삼지 않았다는 점을 무시할 수 있어야만 이 주장이 또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