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문화(또는 보헤미안적인 문화)란 ‘사회적인 규범이나 물질적 가치에 앞서 예술적인 삶과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하는 문화적 태도와 생활양식을 지향하는 것에서 습득한 능력과 습관의 총체’를 일컫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보헤미안이란 단어는, 단지 '예술가적인 자유롭고 독립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 '기성 사회가 규정하고 있는 틀에 갇힌 질서와 문화, 종교와 정치 같은 개인의 삶을 구속하는 사회적 체제에 대한 적극적이고 자주적인 저항과, 그런 것들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이룬 자유로운 정신의 상징'이라는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보헤미안’은 지금의 체코 지역을 가리키는 보헤미아(Bohemia)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중세 시대(약 15세기 경)의 프랑스인들은, 정착지가 없이 유랑하며 살아가던 집시(로마니족)들을 보면서 보헤미아 출신의 사람들, 즉 보에미앙(Bohémien, 여성형은 Bohémienne(보에미엔느), 복수형은 Bohémiens(보에미앙))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영어로 오면서 보헤미안(Bohemian)이 된 것이다.
흔히 보헤미안(Bohemian)과 집시(Gypsy)는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이미지의 연상작용에 묶여 동일한 의미를 가진 2개의 다른 단어라고 여겨지는 경향이 있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원과 의미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먼저 집시는, 역사적 실체를 가진 로마니족이라는 특정 민족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이와는 달리 보헤미안은, 일체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집시의 생활 방식(Life Style)을 동경하는 이들이 추구하는, 생활에서의 또는 예술에서의 또는 문학에서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정서'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와 같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보헤미안이란 단어가 집시에서 유래했다는 것과 집시 문화가 보헤미안 문화의 뿌리라는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보헤미안이란 단어에는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면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집시를 일컫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집시는 유럽의 유랑 민족인 로마니족(Romani people)을 지칭하는 실체에 기반을 둔 단어이다.
로마니족은 원래 펀자브, 라자스탄 같은 인도의 북서부 지역에서 살다가 점진적으로 서쪽으로 이동하여 결국에는 유럽 곳곳을 유랑하면서 살아가는 집시가 되었다.
집시와 인도의 관련성은 그들의 언어인 로마니어가 산스크리트어와 친연성을 가진 인도-아리아 계열이라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관련 문헌들에서는 로마니인들의 서진(西進)에서 가장 결정적인 행보를 이룬 것은 6세기에서 11세기 사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따르면 로마니인들의 서진은 특정 시점에 한꺼번에 대규모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수세기에 걸쳐 일어난 점진적 흐름이었다.
6세기에서 7세기 경에, 인도 북서부에서 페르시아(현재의 이란) 지역으로 점진적으로 이동한 로마니인들은 10세기에서 11세기 경에 있었던 지역적 혼란(가즈나 왕조의 침공 등)을 계기로 아나톨리아(현재의 터키)와 다른 유럽 지역으로 다시 점진적으로 이동하였다.
당시 유럽인들은 로마니인들의 외모를 보고 ‘이집트에서 온 사람(Egyptian)’일 것이라고 여겼는데 여기에서 '집시'라는 이름이 유래한 것이다.
유럽 지역으로 이동한 로마니들은 어느 한 지역에 정착하지 않고 춤과 음악, 점술과 수공예품 제작 같은 것을 생계의 수단으로 살아가는 삶을 택하였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원래 로마니인들은 펀자브, 라자스탄 같은 인도 북서부 지역에 정착해서 살아가던 사람들이란 점이다.
인도에서는 정착해서 살아가던 로마니인들이 유럽으로 이동한 후에는 유랑하여 살아가는 집시가 된 것이다.
아마도 몇 백 년에 걸친 점진적 이동 과정에서 겪었던 수많은 일들과 거기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들이 그들을 집시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어쨌든 그들이 한 곳에 정착하지 않았다는 것을, 국가와 종교의 울타리에 갇히지 않으면서 결코 다른 민족에게 동화되지 않는다는 자주적이고 능동적인 집단적 행위였다고 긍정적으로 볼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해 그들의 역사에는 차별과 박해라는 상처들이 골 깊게 새겨질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파리에서 보헤미안이라는 단어는 관습이나 규범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추구하는 예술가와 문학가, 사상가 같은 '창의적이고 깨어있는 지식인'을 뜻하는 사회문화적 용어로 새롭게 탄생하였다.
당시 파리에 몰려든 그들은 비록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지만 집시와 같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동경하였기에 스스로를 '보헤미안'이라고 칭하였고 기성의 사회적 규범과 체제를 거부하면서 자신만의 창작 활동에 몰두하였다.
또한 보헤미안(Bohemian)은 하나의 문화적 정서로서 19세기 유럽 전역에서 거대한 반문화(Counter-culture)적 현상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파리가 발원지인 보헤미안 정서는 영국과 독일,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같은 유럽 국가 대부분에서 유행하면서 거대한 시대적 정서가 되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19세기에 와서야 보헤미안 문화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일까."라는 물음을 가져볼 수 있다.
그것은 18세기 중반, 영국을 시발점으로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 전 세계의 경제,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꾼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환점' 중에 하나인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이 19세기에 보헤미안 정서가 발아하는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급격히 진행된 도시화는 이전 세대의 예술가들과는 달리 귀족의 후원을 받지 못하는 예술가들을 양산하였고 그로 인해 궁핍함 속에서 활동하는 '독립 예술가'가 늘어나게 되었다.
19세기에 들면서 이들 독립 예술가들은 기성 질서에서의 성공과 경제적 성취보다는 새로운 예술에서의 자유와 가난을, 어쩔 수 없이 맞이하거나 또는 자의적으로 선택하였는데 이것이 보헤미안 문화의 핵심적인 정서가 되었다.
보헤미안 문화가 사회적 저항과 자유분방함, 낭만적 빈곤을 핵심 정서로 삼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시대적 환경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 사회적 저항: 물질에 있어서의 부르주아적인 속물근성과 기성 사회시스템에서의 엄격한 도덕주의에 대한 반항심.
- 자유분방함: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현재를 자유롭게 즐기는 삶에서의 태도와 사회적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연애.
- 낭만적 빈곤: "배는 고파도 영혼은 자유롭다."를 넘어 "배가 고프기에 영혼이 자유롭다.", 또는 "영혼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배가 고파야 한다."는 자의적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