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보헤미안

파리의 보헤미안



보헤미안의 중심 — 파리

19세기와 20세기 초는 <보헤미안(Bohemian) 문화>의 꽃이 절정을 이루었던 시절이었고 파리는 그 절정의 중심에 있었다.


이 시기의 파리는 말 그대로 '보헤미안의 도시'(City of Bohemian) 그 자체였기에 카페에서나 공연장에서나, 전시회에서나 연주회에서나, 문화가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에서나 '파리의 보헤미안'들을 만나 눈인사라도 나눌 수 있었다.


특히 방값이 싼 몽마르트르(Montmartre)와 몽파르나스(Montparnasse)에는 가난하지만 열정 가득한 젊은 화가와 조각가, 시인과 소설가, 음악가와 사상가들이 모여 살면서 자연스럽게 '파리 보헤미안들의 아지트'를 형성하였다.


피카소, 모딜리아니, 샤갈, 사르트르, 보부아르, 헤밍웨이 등과 같은 예술과 사상, 문학에서의 지성들이 당시 카페 드 플로르, 라 로통드, 르 돔, 셀렉트,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와 같은 카페와 서점을 기웃거리면서 파리의 보헤미안으로 살아갔다.


파리의 보헤미안들은 서로의 작업실을 오가면서 그림과 시와 글을 교류하였고, 카페에 앉아 커피와 와인을 마시면서 예술과 문학과 철학에 대해 토론하였였다.

이들이 추구한 것은 세속에서의 물질적인 성공보다는 '진정한 창작의 자유'였고 실존주의, 초현실주의와 같은 현대 예술과 문학의 토양을 제공하였다.


물론 인류학적인 측면에서는 당시의 그들에게 '보헤미안'이란 이름을 붙이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보헤미안적인 정신과 가슴으로 보헤미안적인 삶을 추구하며 살아간 '정신적 보헤미안'이자 '문화적 보헤미안'이었으며, 또한 보헤미안이라는 단어를 하나의 문화적 정서로 모더니즘화 시킨 장본인들이었기에 그들이야말로 '현대적 의미에서의 진정한 보헤미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보헤미안의 도시, 파리

19세기에도 그랬지만 특히 20세기 초의 파리는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도시라는 개념을 넘어 문화적 공간으로서의 도시였다.

당시의 파리는 사상과 철학에서의 새로운 바람과, 예술과 문학에서의 새로운 사조가 앞과 뒤, 위와 아래를 가리지 않고 한꺼번에 뒤섞여 끓어오르는 인류 지성의 거대한 실험실을 이루었다.

당시 파리에서 있었던 이와 같은 현상은 르네상스 시대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만큼이나 경이로운 일이었다.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서뿐만이 아니라 대서양 건너에서 몰려든 젊은 예술가들과 문학가들, 사상가들과 같은 지성들은 비록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지만 그 누구보다 더, 그 어느 곳에서보다 더 자유로운 삶을 파리라는 공간에서 누릴 수 있었다.

파리의 그들에게 현실에서의 물질적 제약은 결코 자유로운 영혼을 가두는 창살이 될 수 없었다.


영혼이 자유로웠던 그들은 '보헤미안(Bohemian)'이란 단어를 자신의 아이덴티티인 양 이름 앞에 붙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은 기성 사회의 질서와 규범과 세속적인 부를 거부하면서 반짝이는 사유의 불빛을 따라 지성의 유목민으로 살아간 문화에서의 보헤미안들이었다.


그들 파리의 보헤미안들은 가난한 삶을 살았다.

종종 한 끼 식사값이 없어 배고픔에 시달리면서도 사유의 자유 속에서 지적 유희의 기쁨을 누렸다.

그들은 진정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인간', '사유하는 인간'이었기에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 그 자체였다.

그들은 물질적 부유함보다는 한 줄의 문장을, 사회적 명예보다는 한 점의 그림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자산으로 여기는 자유로운 창작의 영토에 자신만의 거주지를 마련하였다.

그래서 가난하지만 부유하였고, 지금의 우리가 누리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누렸고, 누구보다 더 밝게 빛나는 삶을 살았던 이들이 바로 그들 파리의 보헤미안들이었을 수 있다.


물론 파리의 보헤미안들 중에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어서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살아간 이들도 있다.

그것이 변절에 의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그들 또한 파리의 보헤미안이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쨌든 당시 파리에서 활동한 그들을 통해 보헤미안이란 단어는,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자유롭고 독립적인 창작 활동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을 뜻하는 용어로 자리매김하였고 그들의 눈과 귀, 가슴과 손끝에서 탄생한 그림과 음악, 소설과 시, 사상과 철학에서의 보헤미안적인 정서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곳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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