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을 넘어 '예술과 낭만'을 품은 형이상학적 유기체가 될 수 있었던 것에는 보헤미안 문화의 역할이 그 중심에 있었다.
파리는 보헤미안 문화의 발원지였으며 보헤미안 문화로 인해 파리는 '예술과 낭만의 도시'라는 애칭을 갖게 되었다.
보헤미안 문화에 대한 얘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파리의 카페'이다.
'파리와 보헤미안 문화'를 서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보헤미안 문화와 카페' 또한 결코 떨어뜨릴 수 없는 한쌍의 고유명사이다.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카페가 있었기에 보헤미안 문화가 있었고, 보헤미안 문화가 있었기에 파리의 카페가 예술과 낭만의 성소가 되었다."라는 말이 결코 과언이 아니란 걸 알아차리게 된다.
파리의 카페는 보헤미안 문화라는 꽃을 피운 들판이자 정원이었으며 보헤미안 문화는 카페의 작은 테이블 위에서, 카페의 눅눅한 조명빛을 봄날의 햇살 삼아 싹트고 성장하였다.
카페의 침침하지만 따뜻한 조명 아래에서 파리의 보헤미안들은 서로가 서로를, 예술이 예술을, 문학이 문학을, 철학이 철학을 비추면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갔다.
그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움은 당시 보헤미안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었고 그 속에서 새로운 창작을 향한 불꽃이 뜨겁게 타올랐다.
파리의 카페는 예술과 문학에서, 사상과 철학에서 보헤미안들의 삶과 창작이 자유롭고 치열하게 협연하는 소극장이었다.
파리의 카페는 먹고 마시고 휴식을 즐기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 사유와 창작을 위한 공간이었다.
예술과 문학, 사상과 철학이 자유롭게 교차하고 섞이면서 새로운 창작의 영토가 드넓게 펼쳐졌다.
당시 파리의 카페는 보헤미안들의 서재이자 아틀리에였고 교류와 대화의 응접실이자 작업실이었다.
커피잔을 타고 오르는 투명한 물안개와 담배 끝이 뿜어내는 희뿌연 연기를 들이켜면서 보헤미안들은 그림을 그리고, 곡을 쓰고, 글을 쓰고, 논쟁하고, 사유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좌절하였다.
생제르맹 데 프레(Saint-Germain-des-Prés)의 카페 드 플로르(Café de Flore)와 되 마고(Les Deux Magots)에서는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가, 한 곳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아 인간의 실존과 자유에 대해 토론하고 글을 썼다.
몽파르나스(Montparnasse)의 카페 르 돔(Le Dôme)과 라 로통드(La Rotonde), 르 셀렉트(Le Select)의 좁은 실내에서는 피카소와 모딜리아니, 샤갈과 같은 예술가들이 그들만의 언어로 떠들어대면서 그들만의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갔다.
카페의 문 밖에서는, 기성 사회가 규정하고 있는 질서와 체계가 자유를 구속하고 있었지만 카페의 문 안으로 들어서면, 아무런 억압 없는 자유로운 세계가 펼쳐졌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꿈꿀 수 있었다.
보헤미안들은 파리의 카페에서 오직 자신에게만 주어진 것 같은 '완전한 창작의 영토', '창작의 유토피아'를 를 찾아내었고 그것을 열정적으로 일궈나갔다.
그렇기에 보헤미안들에게 있어 카페란 '자유 그 자체'이자 '새로운 창작이 발현되는 예술적 성소'였다.
작은 테이블 위에서 새로운 문학과 사상, 예술과 철학이 태어난 것은, 파리의 카페에서는 물질보다는 사유가, 세속적인 명예보다는 자유로운 창작이 궁극적인 가치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들 보헤미안들의 토론과 논쟁, 웃음과 눈물, 허풍과 거만함, 사랑과 우정이 생제르맹 데 프레와 몽파르나스의 밤거리를 찬란하게 밝혔기에 파리는 ‘예술과 낭만의 수도’로서 '사람을 사유케 하는 도시'가 된 것이다.
문화적 용어로써의 보헤미안은 단순히 특정한 유행을 일컫는 것을 넘어 '정신적 태도와 정서 및 생활과 정신에서의 의식과 비의식의 흐름'을 포괄적으로 의미하는 용어이다.
또한 인간 개개인에 대한 관점에서의 보헤미안은 사회적 관습과 종교, 경제적 구속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며, 문학과 예술, 음악과 사상에 있어 기존의 틀을 깨는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물질적인 부와 사회적인 명예보다는 정신적인 만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진정으로 자유롭고 지적인 사람'을 말한다.
오늘날에는 보헤미안이라는 단어를, 자유롭고 예술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개개인, 또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창작 스타일을 가진 예술가와 문학가를 지칭하는 문화적 상징어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보헤미안이란 단어 하나를 직접적으로 사용하기보다는 '보헤미안 스타일'과 같이 복합적인 형태로 의미를 확대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보헤미안이란 카페에 앉으면, 비록 그곳이 [생제르맹 데 프레]나 [몽파르나스]의 카페가 아니라고 해도, 파리의 보헤미안들이 호흡하던 공기의 흐름과 커피 향을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재해석해 봐도 좋을 것 같다.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가 길어 올리는 물안개를 바라보면서 사르트르의 철학적 문학을, 피카소의 해석적 붓질을 느낄 수 있다면 그가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보헤미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