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제왕'이라 불리는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 이탈리아 오페라의 황금기를 이끈 음악가)의 뒤를 이어 이탈리아 오페라의 황금기를 마무리한 '이탈리아 오페라의 성자'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의 오페라 <라 보엠>(La Bohème, 작곡 1893년-1895년(약 3년에 걸쳐 완성), 초연 날짜: 1896년 2월 1일, 이탈리아 토리노, 레조 극장(Teatro Regio))은 당시 보헤미안에 대한 문화적 정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힌다.
그것은 푸치니의 <라 보엠>이 단순히 19세기말이라는 한 시대를 음악으로 표현한 것을 넘어 '궁핍했지만 찬란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서양인(특히 유럽인)들의 동경과 그 시절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을 완벽하게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서양인들이 동양인들보다 오페라를 더 좋아하는 것에는 '좋았던 그 시절'에 대한 문화적 동경과 자부심이 그들의 정서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푸치니의 <라 보엠>는 파리가 배경이지만 음악과 함께 전개되는 사랑과 질투, 가난과 우정의 서사는 당시 유럽의 도시 어디에서나 마주하게 되는 일상의 단면들이었기에, 국가나 종교에 상관없이 19세기를 살아간 유럽인 누구나의 보편적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보헤미안의 현실에서의 삶은, 푸치니가 <라 보엠>에서 표현한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하기 짝이 없었지만, 푸치니의 <라 보엠>은 이를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음악을 통해 '미화된 비극'으로 포장함으로써, 유럽 전역에서 '보헤미안 판타지'가 일어나게 하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였다.
사실 19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보헤미안 정서는 '산업화되어 가는 사회를 살아가는 소외된 지식인(예술가, 문학가, 사상가 등)들의 처절하면서도 낭만적인 몸부림'에 그 뿌리가 닫아있다.
따라서 당시에 일었던 보헤미안 정서를 두고 푸치니의 <라 보엠>이 유행시킨 문화적 바람이라고 단정적으로는 말할 수 없지만, '푸치니의 <라 보엠>이 보헤미안 정서의 흐름에 가장 화려한 마침표를 찍은 최고의 작품'이라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