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의 개념을 확립한 앙리 뮈르제의 <보헤미안의 생활 단면>
보헤미안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문학 작품으로는 앙리 뮈르제(Henri Murger, 1822–1861)의 소설 <보헤미안의 생활 단면>(또는 <보헤미안의 생활 장면>, Scènes de la vie de bohème, 1849)을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La Bohème)의 원작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세기 파리 라탱 지구가 배경인 앙리 뮈르제의 <보헤미안의 생활 단면>은 가난하지만 예술(문학, 그림, 음악, 철학 등을 통칭하는 의미에서의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젊은 보헤미안 예술가들의 삶을 텍스트로 그려낸 작품이다.
<보헤미안의 생활 단면>은 작가 자신이 보헤미안으로서 살아가면서 겪은 가난과 이로 인한 갈등을 문학적으로 기록한 작품으로 '가난하지만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추구한 예술가의 자화상을 완성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앙리 뮈르제의 삶은 그의 작품 <보헤미안의 생활 단면>에 나오는 인물들의 삶보다 더 '보헤미안'스러웠기에 훨씬 더 가난하고 고단하기 짝이 없었다.
그것의 정도에 대해서는 작가 자신의 말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보헤미안 생활은 예술의 전당으로 가는 통로이거나, 구빈원이나 자선 병원으로 가는 길목이다."
앙리 뮈르제의 <보헤미안의 생활 단면>은 보헤미안이라는 개념을 현대적으로 확립한 작품으로 예술가의 가난을 미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굶주림과 질병이라는 비정한 현실을 날카롭게 묘사함으로써 '낭만과 현실의 조화'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
<보헤미안의 생활 단면>이 출간되기 전까지 보헤미안은 단순히 '보헤미아 지역 출신의 방랑자(또는 집시)'를 뜻하는 단어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지만, 앙리 뮈르제의 이 작품으로 인해 보헤미안은 '사회적 관습을 거부하고 가난하지만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예술가'라는 현대적 의미를 비로소 갖게 되었다.
작품은 하나의 일관된 줄거리보다는 여러 개의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구성을 통해 보헤미안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보헤미안의 삶을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의 흐름 같은 것이기에 그것을 하나의 정의(definition)에 가두려는 행위는 어리석은 짓일 뿐이다.
앙리 뮈르제의 <보헤미안의 생활 단면>이 단편적인 사건을 통해 보헤미안이 살아가는 전체적인 방식을 보여주려 한 것은 바로 그런 점 때문일 수 있다.
네 명의 친구들
앙리 뮈르제의 <보헤미안의 생활 단면>은 '보헤미안'이라 불리는 가난하지만 유머와 자부심이 넘치는 네 명의 친구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여기에서 그들의 직업이 시인, 화가, 음악가, 철학자(통칭 예술가)라는 것을 통해 '가난하지만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보헤미안'이 지칭하는 범주를 알 수 있다.
- 로돌프(Rodolphe)는 미미의 연인으로 가난한 시인이자 잡지 편집자이다. 로돌프의 모델은 작가인 앙리 뮈르제 자신이며 미미는 앙리 뮈르제의 연인으로 결핵으로 요절한 루실 루베이 모델이다.
- 마르셀(Marcel)은 무제트의 연인으로 끊임없이 대작을 그리려고 노력하는 화가이다.
- 쇼나르(Schaunard)는 음악가이자 작곡가이다.
- 콜린(Colline)은 철학자이자 서적 수집가이다.
굶주림과 낭만 사이
겨울이면 땔감이 없어 자신의 원고를 태워 몸을 녹이고 집세를 내지 못해 쫓겨나는 궁핍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주인공들은 현실에서의 비참함에 갇히지 않는다. 빌린 정장 한 벌을 서로 돌려 입으며 사교계의 화려한 파티에 참석하고, 신분을 속여서 고급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식사를 하는 것과 같이 기발한 재치를 발휘하며 가난을 견디며 지낸다.
미미와 로돌프의 비극적 사랑
<보헤미안의 생활 단면>에서 가장 핵심적인 서사는 로돌프(작가 앙리 뮈르제 자신)와 폐결핵을 앓는 자수공 미미(앙리 뮈르제의 연인 루실 루베)의 사랑 이야기이다. 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하지만, 가난과 질투, 미미의 병세 악화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다가 차가운 다락방에서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미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다. 두 사람의 사랑의 서사는 앙리 뮈르제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였기에 더욱 극적이다. '미미의 죽음'은 청춘의 화려한 환상이던 보헤미안으로서의 삶이 끝났음을 상징한다.
보헤미안의 종말
결국 네 명의 친구들은 '유랑하는 자유민'을 떠나 '정착한 일반인'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현실과 타협하며 보헤미안의 삶에 작별을 고한다. 마르셀은 화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하고, 로돌프도 안정적인 집필 활동을 하게 된다. 그들은 가난하고 배고팠던 '보헤미안 시절'을 회상하며, 그것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돌아가고 싶지도 않은 청춘의 한 페이지였음을 깨닫는다.
앙리 뮈르제의 현실에서의 삶을 살펴보면 그의 작품 <보헤미안의 생활 단면>의 내용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다.
앙리 뮈르제는 1822년 파리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건물 관리인이자 재봉사였고, 어머니는 일반 노동자였다.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인해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고 15세가 되자 법률 사무소의 서기로 일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돕기 시작했다. 하지만 앙리 뮈르제의 마음은 그때부터 벌써 문학과 예술을 향해 있었다.
<보헤미안의 생활 단면>의 모태: <물 마시는 사람들>(Les Buveurs d'Eau) 모임
청년기의 앙리 뮈르제는 파리의 라탱 지구에서 시인, 화가, 음악가, 철학자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물 마시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을 결성하였다. '물 마시는 사람들'이란 이름에는 그 시절 그들이 처했던 현실에서의 상황이 '직접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가난한 예술가인 그들은 와인을 마시고 싶어도 그럴만한 경제적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와인을 살 수가 없으니 대신 물만 마신다."는 뜻에서 모임의 이름을 '물 마시는 사람들'로 지었다고 전한다.
이 시절에 앙리 뮈르제는 루실 루베(Lucile Louvet)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보헤미안의 생활 장면>의 내용처럼 결핵으로 사망했였다. 루실 루베는 <보헤미안의 생활 단면>에서 시인 로돌프의 연인으로 나오는 미미의 실제 모델이다. 곁에서 그녀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앙리 뮈르제는 커다란 상실감에 빠졌다. 앙리 뮈르제가 젊은 시절에 라탱 지구에서 보내면서 겪었던 이와 같은 사건들이 후일에 <보헤미안의 생활 단면>의 자면을 채우는 에피소드가 되었다.
작가로서의 성공과 보헤미안을 떠난 보헤미안
오랜 무명 생활 끝에 앙리 뮈르제(1822–1861)는 문예 잡지 <르 코르세르(Le Corsaire)>에 1845년 3월부터 1849년 4월까지 자신의 생활을 바탕으로 한 에피소드를 부정기적으로 연재하며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1849년에는 극작가인 테오도르 바리에르와 함께 <보헤미안 생활(La Vie de bohème)>을 연극 무대에 올려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연극 <보헤미안의 생활>은 문예 잡지 <르 코르세르>에 연재했던 에피소드들을 희극으로 각색한 것으로 앙리 뮈르제에게 명성과 부를 가져다준 작품이다. 앙리 뮈르제의 대표작인 <보헤미안의 생활 단면>은 연극 <보헤미안의 생활>이 성공을 거둔 후에, <르 코르세르>에 연재했던 에피소드들을 수정하고 편집하여 1851년에 한 권으로 묶어 발간한 것이다.
안정적인 수입을 얻게 된 앙리 뮈르제는 '보헤미안을 떠난 보헤미안'이 되는 자기 역설에 빠졌다. 역설에 빠졌다기보다는 스스로가 역설을 찾아 몸을 숨겼기에 자기 역설이 된 것이다. 세속적으로 성공을 이룬 보헤미안 앙리 뮈르제는 보헤미안으로서의 삶을 청산하고 파리 외곽의 퐁텐블로 숲 근처에서 '부족함 없이 평온하게 살아가는' 일반적인 삶을 선택하였다. 보헤미안으로 살았고, 보헤미안이란 개념을 정립하였고, 보헤미안이었기에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었던 앙리 뮈르제는 이제 다음과 같은 '자기변명'을 통해 자신의 변절(?)에 당위성을 부여하려고 했다.
"보헤미안은 청춘의 통로일 뿐, 머무를 곳이 아니다."
하지만 성공으로 찾아온 또 다른 일상은 그리 길지 않았다. 1822년 생인 앙리 뮈르제는 1861년, 38세(거의 39세)에 파리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나갔다. 그의 죽음에 대해, 보헤미안으로 지내던 시절에 겪은 극심한 영양실조와 과로가 원인이었다고 주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19세기 서유럽(영국, 프랑스 등)과 미국 남성의 평균 수명이 약 35세에서 45세였다는 점을 간과한 채 보헤미안 생활의 비참함만을 극단으로 강조하려는 것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수치에는 높은 영아 사망률로 인한 통계적 함정이 숨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의학이 발전되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30대에 죽음을 맞이하는 일을 두고 아주 특이한 경우였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19세기 조선 말기 한국 남성의 평균 수명을 사학계와 인구통계학적 연구에서는 비슷한 시기 서양 남성들의 평균 수명인 약 35~45세보다 현저히 낮은 약 24세에서 35세로 추정하고 있다.)
앙리 뮈르제는 마지막 순간에 "음악도 없고, 미미도 없구나(Pas de musique, pas de Mimi)"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 짧은 문장은 예술적 영감도 사라지고 사랑하는 연인도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보헤미안의 쓸쓸하고 빈털터리인 처지를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