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도시, 두 개의 영혼', 파리는 두 개의 영혼을 가진, 사람을 사유케 하는 도시이다.
그 두 영혼의 경계에는 센강이 흐르고 있다.
파리를 가로질러 흐르는 센강은, 단순한 지리적 환경이 아니라 파리라는 유기체가 땅 위에 그어 넣은 사유의 경계선이다.
세느 강의 남쪽 ‘파리의 좌안(Left Bank, Rive Gauche)’에는 질문이 흐르고, 세느 강의 북쪽 ‘파리의 우안(Right Bank, Rive Droite)’에는 답이 흐르지만, 지금껏 답일 것 같은, 어쩌면 답일 수도 있을 것 같은 답만을 쫓았을 뿐이고 답에 도달했다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파리는 우리라는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가 '사유할 수 있는 인간'이란 걸 되새기게 해주는 도시이다.
질문과 답을 향한 이 두 개의 흐름은 인드라 망에 꿰인 구슬들이 그러하듯이 서로가 서로를 비추면서 파리라는 도시의 두 개의 얼굴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인지 파리에서는 가면을 쓴 나의 모습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나의 이중적인 모습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파리는 인간의 삶뿐만이 아니라 사상과 문화, 계급, 정신이 좌안과 우안이라는 두 세계의 흐름을 따라 작동하는 도시이다.
좌안과 우안을 더듬으려는 몸부림이 파리의 이방인이 걸어야만 하는 길인 것은, '사유가 인간을 자유케 할 것'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파리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센강(Seine)은 물의 흐름이 땅바닥에 새겨 넣은 골이 아니라 사유의 흐름이 정신에 새겨 넣은 선이다.
센강은 파리를 우안과 좌안이라는 두 개의 세계로 나누는 영혼의 분수령이다.
그래서 센강의 물결에는 서로 다른 사상과 가치관, 문학과 예술이 끊임없이 충돌하고 화해하는 인문학적 전시장이 막힘없이 펼쳐진다.
"파리가 좌안과 우안으로 나누어진 것은 센강이 그곳에 있었던 것만큼이나, 어쩌면 태초부터 예비되어 있었던, 아주 오래된 일일 수 있다."
센강의 남쪽 세계인 좌안(Rive Gauche)은 사유와 예술의 영토이다.
파리 대학교의 모태인 소르본(Sorbonne)과 프랑스 엘리트의 산실인 그랑제콜 (Grandes Écoles) 같은 라탱 지구의 대학들과 철학자들의 카페, 가난한 문학가들과 예술가들의 허름한 다락방이 이 영토에 자리 잡았다.
파리의 좌안을 돌아다닐 때면, 그 어디에서보다도 더 영혼의 돌기를 높이 세우고 영혼의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있어야 한다.
행여 껍데기만을 더듬다가 그냥 돌아가는 일일랑은 없도록.
센강의 북쪽 세계인 우안(Rive Droite)은 프랑스 왕정 시대부터 권력과 명예, 부가 뿌리내려 자라난 영토이다.
루브르 궁, 방돔 광장, 오페라,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샹젤리제의 화려함이 오늘날까지 우안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우안은 '눈으로 볼 수 있고 물질적으로 발현된' 현실의 세계이기에 관광객으로 파리를 찾는 이들은 우안을 돌아보면서 '이것이 파리'라는 최면에 걸리게 된다.
센강은 우안과 좌안의 경계에서 흐르고 있지만, 스틱스강(Styx)처럼, 이 두 개의 세계를 완전하게 단절시키지는 않는다.
/* 센강(현실 세계의 지성적 구분)과 스틱스강(존재론적 세계의 종결과 시작)
파리의 삶과 지성의 '경계'를 나누는 '소통과 연결의 통로'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삶의 태도'에 대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고 있다. 이와는 달리 그리스 신화 속 스틱스강(Styx)은 '존재의 끝과 시작'을 가르는 '단절과 회귀 불가능한 경계'로서 "죽음 앞에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 하는 '존재의 본질'에 대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
센강을 가로지르는 파리의 다리들은 우안의 '현실에서의 물질적 흐름(삶)'과 좌안의 '이상에서의 정신적 흐름(지성)'이 아무런 제약 없이 오고 가도록 허락한다.
우안의 파리지앵들은 좌안의 서점과 카페에서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며 사유하고, 좌안의 가난한 예술가들은 우안의 갤러리에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며 현실에서의 삶을 살아간다.
센강의 강물은, 살아간다는 것은 물질(성공에 대한 욕망, 우안)과 사유(자유에 대한 갈망, 좌안) 사이를 끊임없이 오고 가는 흐름이란 것을 은밀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말한다.
센강의 다리에 서서 강물을 내려보고 있으면, 대립할 수밖에 없는 이 두 개의 가치가 지금껏 어떻게 공존해 왔고, 때로는 한쪽으로 치우치는 일을 겪으면서도 결국에는 어떻게 아름다운 대위법을 이루었는지를 아주 미약하게나마 알아차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