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자유의 영토, 파리의 좌안

파리의 좌안과 우안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

파리의 좌안, 사유와 자유의 영토


"좌안은 영혼의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의 사유의 뜰이다."

파리의 좌안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으로 정의되는가"와 같은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던져지는 사유의 영토이다.

좌안에서는 '물질적인 결과보다는 정신적인 과정'에게 더 가치를 부여하며, '기성 사회의 질서와 권위에 대한 질서 있는 반항과 내면의 자유'에서 좌안의 인문학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센강의 남쪽 지역인 '좌안'은 중세 이래 지식이 교류하고 토론이 이루어지는 사유의 영토였고 그 중심에는 라탱 지구가 있다.

프랑스어로는 Quartier Latin(카르티에 라탱)으로 표기하는 라탱 지구의 지명은 '라틴어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라틴어로 토론하던 거리'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소르본 대학의 종소리가 파리의 하늘에 진동을 일으키면 좌안은 사유의 시간에 빠진다.

그럴 때면 라탱 지구의 골목길은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가 걸어야만 하는 사유의 길'이 된다.


/* 라탱 지구(Quartier Latin, 카르티에 라탱)

라탱 지구는 파리 좌안(Rive Gauche)의 5구와 6구 일부를 아우르는 지역(구역, 지구)에 붙여진 지명으로, 중세부터 18세기까지 이 지역에 모여 살던 대학생들과 교수들이 일상생활과 수업에서 라틴어만을 공용어로 사용했기 때문에 붙여졌다. */


19세기와 20세기 초 파리의 좌안은 모더니즘 문화의 발원지이자 본거지가 된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생제르맹데프레의 카페 드 플로르와 되 마고에서 '인간의 실존', '존재의 의미'에 대해 토론하였고, 제임스 조이스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서로의 원고를 읽으며 서로의 문학을 밝혔다.


또한 장 폴 샤르트르와 알베르 카뮈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카페의 담배 연기 속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고민하던 풍경은, 그 상상만으로도 좌안의 인문학적 정체성을 더듬을 수 있게 한다.

좌안의 카페는 단순한 휴식의 공간이 아니라 세상과 인간을 해석하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고뇌하는 사유의 실험실이었다.


좌안을 흐르는 대기는 언제나 자유로웠지만 실험적이었기에 어딘가 불안하고 불완전하였다.

라탱 지구의 구불구불한 낡은 벽돌길과 몽파르나스의 연기 자욱한 허름한 다락방은 "자유는 불안과 불완전함에서 발아하게 된다."는 문장으로 수렴한다.


좌안에서는 "무엇이 옳은가." 보다는 "옳다는 것이 무엇인가."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더 중요한 것으로 여겼다.

좌안에서 예술은, 완성보다 시도와 과정, 그것에서 오는 실패를 아름다움이라고 여겨졌다.

좌안에서 철학은, 답을 찾아내는 것보다 질문을 던지는 것에게 가치를 부여하였다.


완벽한 조화보다 진실된 혼돈을 더 사랑했던 좌안의 공기는, 늘 조금은 불안하게 흘렀기에 인간의 사유가 살아 호흡할 수 있었다.

그렇게 좌안은 사유와 자유를 사랑하는 영혼의 영토가 되었고 좌안의 길바닥에서는 지성의 꽃이 피어났다.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라는 장 폴 사르트르의 말처럼, '좌안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은 사유의 영토'로 우리에게 남겨졌다.



좌안의 철학자들 (The Philosophers)

좌안의 카페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와 <카페 드 플로르>(Café de Flore)는 좌안 철학자들에게 '또다른 서재'와도 같은 공간이었다.

좌안을 대표하는 철학자로는 다음과 같은 인물들을 꼽을 수 있다.


-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좌안 지성계의 교황'으로 불린 철학자이자 문학가로 실존주의의 기수이다.

-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현대 여성주의의 초석을 다진 여류 문학가이자 철학자로, 사르트르와 함께 좌안의 토론 문화를 이끌었다.

-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부조리 철학'을 주창하며 사르트르와 때론 협력하고 때론 대립한 철학자이자 문학가이다.

- 모리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 현상학의 대가로 사르트르와 함께 ‘현대’ 잡지를 창간하였다.


좌안의 문학가들 (The Writers)

"길을 걷다 어깨를 부딪치는 사람 모두가 작가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당시 파리의 좌안은 문학가들로 북적거리던 지역이었다.

좌안을 대표하는 문학가들로는 다음과 같은 인물들을 꼽을 수 있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920년대 '로스트 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 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미국인 작가로 파리 생활 당시 몽파르나스의 여러 카페들을 전전하며 글을 썼다.

-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파리 좌안의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도움으로 <율리시스>를 출간한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이다. (<율리시스>가 가진 문학적 의미와 내용에 대해서는 별도로 다루기로 한다.)

-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좌안의 귀족적인 살롱 문화를 배경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집필했다.

-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기다림의 미학'이라 할 수 있는 <고도를 찾아서>의 저자이며 부조리 연극의 거장으로, 생애 대부분을 파리의 좌안에서 보냈다. 사무엘 베케트가 파리에 처음 정착했을 때는 같은 아일랜드 출신의 대문호 제임스 조이스의 조수이자 제자였다. 제임스 조이스의 화려하고 방대한 스타일과는 달리 사무엘 베케트는, 절제되고 단순화된 '뺄셈의 미학'을 추구하는 자신만의 문학을 개척하였다.

사무엘 베케트는 세속적인 명성을 극도로 꺼렸고, "작품은 작가의 입을 떠난 순간 스스로 말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자신의 작품에 대한 어떠한 해석이나 설명도 거부하며 '고독한 은둔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196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을 때는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고 세간의 관심을 피해 숨어버렸다.



좌안의 예술가들 (The Artists)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여든 가난한 예술가들은 파리 좌안의 몽파르나스(Montparnasse)에서 ‘에콜 드 파리'(École de Paris, 파리파)를 형성하였다. 에콜 드 파리는 20세기 초, 특히 제1차 세계대전 전후로 세계 각국에서 파리의 좌안인 몽파르나스로 모여든 외국인 예술가 집단에게 붙여진 이름으로, 특정한 예술 기법이나 '주의(-ism)'를 공유하기보다, '파리의 좌안이라는 공간에 모인 이방인들의 예술적 연대'의 성격을 갖고 있다.

좌안을 대표하는 예술가로는 다음과 같은 인물들을 꼽을 수 있다.


-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입체파 시기 이후 좌안의 카페 ‘라 로토드(La Rotonde)’를 즐겨 찾았다.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몽파르나스의 전설적인 보헤미안 화가이다.

-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 화가로, 좌안의 예술가 공동체 ‘라 뤼슈(La Ruche)’에서 활동했다.

-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몽파르나스의 좁은 작업실에서 인간의 본질을 담은 조각상들을 빚었다.

- 만 레이(Man Ray):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사진작가로, 좌안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사진으로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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