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사상으로서의 헤밍웨이의 빙산 이론

문학 사상으로서의 헤밍웨이의 빙산 이론


헤밍웨이의 빙산 이론(Iceberg Theory)은,

텍스트화한 것을 통해

텍스트화하지 않은 것을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텍스트 너머에 있는

더 크고 깊은 진실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문체적 절제의 미학'이다.


헤밍웨이의 빙산 이론을 단지 '글쓰기에 있어 문체상의 기교'에 관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빙산 이론은 전후(세계대전 이후)의 세상을 살아간 20세기 로스트 제너레이션들의 실체적 경험을 문학적으로 대하는 태도이자 윤리에 관한 것이며, 텍스트로 기술하지 않음으로 해서 더 많은 것을 말하는 '문체적 패러독스(paradox)'를 핵심으로 하는 '문학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헤밍웨이의 작품은 글로 읽히는 것보다 침묵 속에 가라앉아 있는 것이 훨씬 더 많으며, 표면에 떠올라 있는 것은 침묵 아래에 잠겨 있는 '크고 무거운 것'의 의미 또는 상징인 것이다.


빙산 이론의 문학적 의미

기술한 바와 같이 빙산 이론은 문학적 기법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헤밍웨이가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비롯된 문체적 미학이자 윤리이다.


빙산은 극히 일부분(10%-15%)만이 수면 위로 드러나 있고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85%-90%가 수면 아래에 잠겨 있다.

그래서 빙산은 '어떤 현상이나 사물에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야말로 그것의 실체이며 무게'일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물질적인 상징인 것이다.


헤밍웨이의 문학에서는 '내용의 전개에 있어 꼭 필요한 사건'만이 텍스트를 통해 드러나 있고 그 아래에는 말해지지 않은 세계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헤밍웨이의 빙산 이론을 설명하면서 '꼭 필요한 사건'의 개념을 '최소의 사건'이란 표현으로 설명하는 문헌들이 있다.

하지만 '드러내지 않는 것까지 더듬어 살펴볼 수 있게 하는 필요충분한 사건'이라는 본질적 의미를 고려하면 '최소'라는 단어보다는 '최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적다'는 의미에서의 Minimal(최소)과 '알맞다'는 의미에서의 Optimal(최적)의 차이를 따져 보면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헤밍웨이가 텍스트를 통해 수면 위로 올린 것은 '최적화된 사건'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쨌든 헤밍웨이가 텍스트화한 것은 '그것'의 결과가 일으킨 사건이고 텍스트화되지 않은 것은 '그것'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사건이다.

하나의 결과는 과거의 다양한 원인으로부터 복합적인 영향을 받아 발현된 사건이다.

따라서 수면 위에 드러난 결과보다는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는 원인이 훨씬 더 크고 무겁기 마련이다.


수면 위에서 볼 수 있는 것이건 그렇지 않은 것이건, 결과와 원인을 이루는 사건은 모두 헤밍웨이의 기억에서 소환된 사건이다.

전장에서 겪었던 과거의 사건 하나하나가 텍스트를 통해 묘사되지는 않지만 그것들은 현재의 말투와 침묵 속에 침투되어 있다.
이와 같이 묘사된 사건(결과)을 통해 묘사되지 않은 사건(원인)에 몰입하게 되는 것은 '헤밍웨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텍스트화하지 않는 것과 빙산 이론에 대해

헤밍웨이가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작품의 전개를 위한 최적화된 사건들이다.

이 과정에서 헤밍웨이는 사건의 결과만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을 뿐 그것의 원인은 수면 아래에 그냥 두었고 감정의 묘사에 있어서도 '삭제한 것처럼' 절제하였다.


헤밍웨이의 빙산 이론을 하나의 문학 사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헤밍웨이가 왜 그랬는지'를 이해해야만 한다.


20세기 초에 있었던 제1차 세계대전은 인간을, 신성이나 이성, 윤리와 언어보다 무력과 참혹함이 앞서는 현실을 체험하게 만들었다.
의미를 잃은 죽음과 한순간에 사라지는 개인의 삶을 바라보는 것은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공포 그 자체였고 침묵은 그것에 대한 회피의 도구가 아니라 절규의 수단이었다.

언어는 충분치 않았기에 침묵을 선택하여야만 했다.


전쟁은 끝났고 죽은 자는 과거가 되었고 산 자는 현재가 되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강하기에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운이 좋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다.

무수한 사건들을 침묵으로 견뎌낸 살아남은 자들은 로스트제너레이션이 되었다.


헤밍웨이는 로스트제너레이션의 침묵을 '묻혀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고통의 원인을 설명하지 않고 설명되지 않는 상태를 그대로 텍스트로 옮겼다.


사건은 결과로 함축되고, 감정과 원인의 묘사는 생략되며 문장은 짧고 단순하다.

결과에 대한 단순한 묘사는 주인공이 가진 결핍의 원인을 암묵적으로 보여주는 '의도된 결핍'이다.

이를 통해 읽는 이는, 텍스트 아래에 가라앉아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헤밍웨이 작품에서의 침묵은 비어있는 공백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의 저장소이다.
헤밍웨이는 로스트제너레이션이 겪은 슬픔과 절규, 비극을 텍스트화하는 것을 한낱 '감상적인 것'으로 변질시키는 행위이며 또한 '로스트제너레이션에 대한 문학적 배신'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헤밍웨이는 로스트제너레이션의 슬픔과 절규, 비극을 단순한 행동과 사물의 상태, 일상적인 사건으로 대체하여 의도적으로 감춘다.

이와 같은 절제는 헤밍웨이 문학의 문체적 미학이면서 로스트제너레이션의 품위를 지켜 주기 위한 문학적 배려이다.


빙산 이론에서 독자는 더 이상 수동적 감상자가 아니라 수면 아래를 더듬어야 하는 '능동적 참가자'이다.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에 있는 침묵의 공백을 채우며 독자는 주인공이 겪은 과거의 사건들을 감각으로 체험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괜찮아."라고 말할 때 그 말이 진실이 아님을 알아차리게 된다.
말해지지 않았기에,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의 침묵으로 남았기에, 그 고통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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