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기억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기억

기억: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기억은,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다시 생각해 낸다는 사전적 의미에서의 '되돌아보며 소환할 수 있는 과거에 대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간과 공간을 침식하는 '무거운 침묵'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어서, 바다에서 인 물결이 육지의 모서리를 깎아 들어가듯이 현재의 삶을 침식하고 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주인공 제이크 반스가 그런 것처럼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주인공 프레더릭 헨리(Frederic Henry) 또한 전쟁을 직접적인 형태로 회상하지는 않는다.
프레더릭 헨리는 '문학적 영웅'의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고 전쟁 속에서 점점 비어 들어가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프레더릭 헨리는, 육체뿐만이 아니라 정신까지도 전쟁과 사랑, 상실 속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의 기억은 '언어'이기보다는 육체와 정신에 새겨진 형태로 소환된다.
포탄 소리에 육체가 먼저 반응하고, 비가 내리는 날에는 정신적인 불길함에 사로잡힌다.

프레더릭 핸리에게 '생각이나 말'로 소환되기에 앞서 '반사 작용'으로 소환되는 것이 기억이다.


전쟁은 직접적인 모습을 갖추려 하지 않고 행군과 대기, 전진과 후퇴, 진흙과 피, 예기치 않은 죽음의 형태로 감정 없는 텍스트들 위에 흩뿌려져서 기억의 진짜 얼굴은 무감각의 형태로 소환된 그런 것들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어떤 기억은, 전쟁과 같은, 감각을 빌어 소환하는 것이 너무 잔인한 일이기에 무감각이 감각을 대신해서 텍스트화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좋을 수 있는 것이다.

전쟁은 죽음의 슬픔을 느낄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는 공간이다.

프레더릭 헨리는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지만 그것을 슬퍼할 기회를 잃고 그것에 대한 기억은 육체와 정신에 겹겹으로 쌓인다.

그래서 전쟁의 기억은 당장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언젠가 소환할 수 있는 형태로 남겨진다.




캐서린 바클리(Catherine Barkley)는 프레더릭 헨리에게 기억을 잊게 해주는 존재이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 전쟁은 잠시나마 사라진다.

그녀는 프레더릭 헨리에게 단순한 연인의 역할을 넘어, 전쟁이 파괴하지 못한 마지막 인간성의 형상이면서 그녀 자체가 전쟁 중의 상실에서 출발한 인물이다.


“난 이미 모든 것을 다 잃었어요.”

캐서린 바클리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지만 이미 무너져 본 사람이다.

그녀의 약혼자는 전쟁에서 죽었고, 그 상실은 그녀를 현실에서의 비극을 앞서 결말로 이끌어 놓는다.


그녀의 사랑에는 계산이 없기에 사랑을 게임이 아니라 몰입으로 대한다.

캐서린 바클리가 프레더릭 헨리에게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는 것은 사랑에 대한 수동성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녀에 의한 선택에서 온 헌신이다.


“우린 하나예요.”

그녀는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파괴된 세상에서 사랑의 의미만은 남기려 한다.

그녀에게 사랑은 낭만적 행위가 아니라 세상에 맞서는 방식이다.

그녀에게 전쟁은 지켜야 할 이념도 명예도 없이 사랑을 앗아간 폭력일 뿐이기에 그녀는 전쟁의 반대편에 선다.

그녀는 프레더릭 헨리보다 전쟁의 허구를 먼저 간파한 인물이다.


캐서린 바클리는 출산과 죽음이라는 운명을 마주하면서도 결코 울부짖지 않는다.

그녀의 담담함은 체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 이후 인간의 품위를 말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미 상실을 겪고 그 아픔을 아는 사람이기에 죽음 앞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는다.




캐서린 바클리는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쟁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사랑이라는 단 하나의 질서에 자신의 전부를 걸었다.

그런 그녀를 세상이 원하는 이상화된 여성, 남자 주인공을 위한 구원의 도구, 자아가 약한 여성이라고 비평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될 점은 그녀의 선택은 여성의 연약함에서 비롯된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그녀의 적극적인 결단에 의한 것이란 점이다.

결국 캐서린 바클리는 전쟁이 모든 의미를 파괴한 세계에서 사랑이라는 세상의 마지막 윤리로 세상의 질서를 지키려 한 인물이다.




하지만 사랑은 기억 위에 세워진 연약한 피난처이기에 사랑은 기억을 지우지 않는다.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비는 언제나 두 사람의 행복을 위협하는 침울하고 무거운 존재이다.
비는 죽음의 기억시키면서 다가올 상실을 예고하는 전령이다.


<무기여 잘 있거라>의 끝머리에서 프레더릭 헨리는 캐서린 바클리의 죽음을 비극적인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죽음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기에 모든 것들이 한 문장 안으로 담담하게 가라앉는다.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기억은 과거의 그때에 머무르지 않는다.
기억은 사랑을 불신하게 만들고, 신을 의심하게 만들며, 행복을 불안한 잠정적인 것으로 보게 한다.
어떤 기억은 인간을 이성적인 현명함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 뿐이다.


"인간은 지나간 것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그것 이후의 시간을 그때의 기억과 함께 견디며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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