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기억과 모더니즘 문학

모더니즘 문학에서의 기억과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기억에 대해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기억과 모더니즘 문학


모더니즘 문학에서의 기억에 대해


모더니즘 문학에서의 '기억'은, 지나간 것을 돌이켜 생각한다는 '회상이라는 행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존재와 시간 자체를 구성하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즉 '기억'은 이미 영토화되었던 과거의 것을 현재의 것으로 재영토화를 이루는 방식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현재의 재영토화는 미래의 영토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작가 헤밍웨이에게 있어 기억이란 '말하지 않은, 또는 말해지지 않는 문장과 문장, 그리고 그 사이의 여백’이며, 과거란 회상의 대상이 아니라 침묵 속에 묻어 두어야 하는 대상이다.


헤밍웨이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낚시를 하고 술을 마시고, 다투고 싸움질하고,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그런 행위와 행동이 그들의 '기억'을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다.


그와 같은 행위와 행동에는 그들이 겪었지만 언어로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전쟁과 죽음, 상실과 배신 같은 '드러나 보이지 않고 입 밖으로 내뱉지 않기에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들'이 잔뜩 똬리를 틀고 있다.


뚜렷하게 볼 수 없다고 해서, 텍스트로 새겨지지 않았다고 해서, 느낌마저 더듬을 수 없거나 무거움조차 덜해지지 않는 것이 '기억'이며 또한 '헤밍웨이 작품에서 찾아지는 모더니즘적인 기억'이다.




기억: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기억은 그것과 관련된 것을 회상하는 행위로 나타나지 않는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기억'은 '치유되지 않은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래서 주인공이 그때 그곳에 실제 하였는지 아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제이크 반스는 그때 그곳에서 겪었던 과거의 일에 대해 주절주절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에게 전쟁은 지나간 시간에 지나간 공간에서 있었던 일이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전쟁에 관한 회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제이크 반스가 어떻게 다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한 경위를 알 수 없다.


전쟁에서 입은 상처가 현재의 삶을 결정짓고는 있지만, 전쟁은 침묵 아래에 잠겨있다.
전쟁에 대한 침묵은 제이크 반즈의 '전쟁에 대한 기억'이 얼마나 깊고 무거운 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는 텍스트로 표현되지 않은 기억이 텍스트 곳곳에 스며 있다.

기억은 말로 표현하지 않을 때 비로소 일상의 삶 속으로 스며든다.


파리의 카페와 밤의 술, 그리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동이 이어지며 불안정한 진동을 일으킨다.

불규칙적이긴 하지만 진동하며 반복하는 그와 같은 일상은 얼핏 망각을 위해 행하는 주술적 행위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들은, 전쟁의 기억으로부터 도피하려고는 하지만 막상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정신의 자연스러운 순환'이라서 또 다른 차원에서의 의미를 가진 행위이다.


제이크 반스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그렇듯,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장소만이 바뀔 뿐 흐르지는 못한다.

진동이 움직임을 만드는 것인지 움직임이 진동을 일으키는 것인지는 구분할 수 없다.

그것은 그의 기억이 시간의 흐름을 왜곡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등장인물 브렛 애슐리는 '사랑이라는 현재'이면서 또한 '완성될 수 없는 미래'이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 현재의 제이크 반스는 가장 행복해 보이지만 그로 인해 제이크 반스의 결핍이 더욱 선명하게 부각된다.


행복한 현재가 잔인했던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고 미래를 불안하게 진동시킨다.

제이크 반스에게 있어 '결핍으로 인한 불가능성을 자각하는 것'은 가장 잔인한 일이다.

그래서 브렛 애슐리는, 그녀가 의도하지는 않지만, 현재의 제이크 반스를 흔들어 놓는 '잔인한 존재'가 된다.

제이크 반스에게 그녀는 현재의 행복을 주는 현재의 존재이면서 또한 현재뿐만이 아니라 미래를 흔드는 잔인한 존재이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기억은 과거를 현재로 소환해서 불가능성을 자각하는 형태로 표출된다.


뜨거운 태양과 함성 가득한 스페인의 투우장은 질서 잡힌 하나의 세계이며 제이크 반스가 전쟁 이전의 자신을 소환하는 공간이다.


투우장에서 소환된 과거는 전쟁으로 잃어버린 남성성과 명예를 살아 있게 한다.

그곳에서는 의식과 기술이 피와 죽음을 통제한다.

소환된 하나의 과거가 또 다른 과거를 통제하고 덮어버리지만 그것은 과거를 현재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동경일 뿐이다.


기억의 재영토화는 체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완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브렛 애슐리와의 짧은 대화에서 기억의 완성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함께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제이크 반스의 과거는 현재로 소환되지만 애써 설명되지 않는다.

제이크 반스는 과거가 현재를 어떻게 규정했는지 알고 있기에 짧게 대답한다.

“그래, 참 좋았겠지.”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라는 말처럼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에 담겨 있는 과거는 현재로 소환되어 재영토화를 이룬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기억은 다시 떠오른 태양처럼 빛나지 않는다.

다만 그림자처럼 어둡고 무겁게 따라다닐 뿐이다.

태양은 다시 떠오르지만 전쟁 이전의 과거는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

전쟁이 새긴 과거만이 현재를 완성한다는 것을 제이크 반스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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