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통한 구원: 헤밍웨이의 <파리는 날마다 축제

헤밍웨이의 <파리는 날마다 축제>: 문학을 통한 구원


헤밍웨이에게 파리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공간이면서 또한 삶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현재

적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인식은 모더니즘 문학에서의 ‘기억 개념’에서 그 맥을 찾아볼 수 있다.

(모더니즘 문학의 기억 개념과 헤밍웨이 문학에서의 기억 개념에 대해서는 이 문단을 매듭짓고 나서 별도로 다루기로 한다.)


그렇기에 헤밍웨이의 <파리는 날마다 축제>가 20세기 문학에서 “머릿속의 기억이 현재를 추상적으로 구성한다.”라는, 기억에 대한 모더니즘적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는 것이다.


‘모더니즘적 기억 개념’에 따르면 과거는 박제되어 있는 ‘지나간 장소와 시간에 고착화된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반복적이고 재귀적으로 소환되어 현존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문학은 그렇게 소환된 현상을 텍스트들의 나열로 기록하는 추상적 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파리는 날마다 축제>가 지닌 문학적 깊이는 젊은 날의 궁핍을 책상 위로 소환하는 방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헤밍웨이는 젊은 시절 파리에서의 궁핍에 대해 감상적인 채색을 입혀 자신의 책상으로 소환하지 않는다.


배가 고픈 것은 젊은 날에 있었던 물리적 고통이었지만 결국에는 헤밍웨이의 텍스트가 있게 하는 조건이었다.

논리적으로 말하자면 ‘젊은 날의 궁핍’은 ‘현재의 텍스트’에 대한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충분조건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 헤밍웨이는 궁핍은 미덕을 생각하고 행하게 하는 조건이 아니라 문학적 집중을 위한 환경이자, 과잉으로 인한 문학적 나태를 회피하도록 해주는 작가정신의 조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문학적 태도는 문학적 비유나 수식어와 같은 군더더기일 수 있는 것들(텍스트와 흐름)을 제거하고 핵심적인 것들만을 남기는 헤밍웨이 문학의 ‘빙산 이론’의 실존적 뒷받침으로 자리 잡는다.

또한 헤밍웨이는 생활의 절제가 문장의 절제가 되면, 생활과 문학은 따로 분리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헤밍웨이의 빙산 이론(Iceberg Theory):

헤밍웨이의 빙산 이론은 문장의 기술이 아니라 침묵의 윤리이며 문체적인 기법을 나타내는 용어가 아니라 전후(戰後) 인간의 기억 방식에 관한 문학적 용어이다.

독자가 보지 못하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더 크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표현을 통해 빙산 이론에서 말하는 '표면과 그 아래 숨겨진 것'이 가진 문학적 관계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빙산에서 물 위로 드러나는 부분은 약 10%이고 나머지 약 90%는 물아래에 잠겨 있다.

그래서 헤밍웨이의 빙산 이론에서도 문장을 통해 드러난 것은 10%에 불과하며 그렇지 않은 것이 약 90%라는 비유를 사용한다.


독자는 자신이 아는 것만큼만을, 자신이 가진 지식만큼만을 책에서 읽을 수 있게 된다.

빙산 이론은 헤밍웨이 작품의 근간을 이루고 있지만 쉽게 들여다볼 수 없는 것(텍스트와 흐름)에 가라앉아 있다.

그래서 자칫 수면에 떠 있는 '빙산의 일각' 만을 보고서는 빙산 전체에 대해 말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 헤밍웨이의 작품인 것이다.

결국 헤밍웨이 문학의 독자는, 헤밍웨이의 빙산 이론을 이해하고 있는 독자와 그렇지 않은 독자로 나뉘게 된다. */



<파리는 날마다 축제>는 또한 한 작가의 '문학적 탄생' 과정을 다룬 성장 서사의 성격을 갖고 있다.


파리에서 지내던 시절의 헤밍웨이는 ‘이미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정립한 완성된 작가’가 아니라, 끊임없이 익히고 수정하면서 실패를 거듭하는 ‘완성을 꿈꾸는 젊은 작가’이다.


에즈라 파운드의 격려와 권위적이지만 날카로운 거트루드 스타인의 문학적 조언과, 피츠제럴드와의 교류와 불안한 우정을 통해 ‘로스트 제너레이션으로서의 문학적 계보’에 속하면서 헤밍웨이만의 문체와 문학을 정립해 가는 과정을 을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 발견할 수 있다.


또한 헤밍웨이가 그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문학을 존경하지만, 숭배한다거나 비난하지 않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로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른 작가의 문학을 무작정 좇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학을 정립하는 것이며, 그것을 위해서는 스스로의 문학에 대해 냉정해야 한다고 헤밍웨이는 말하고 있다.


한편으로 헤밍웨이는 로스트 제너레이션을 신화적으로 말하려 하지 않는다.

전후의 세대는 길을 잃고 방황하지만, 그들의 방황은 결코 영웅적이지 않다.


젊은 날의 방황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로스트 제너레이션이 그랬던 것처럼 그전 세대에도 그랬고 그 이전과 이전 세대에도 그랬기에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로스트 제너레이션의 방황이 그 이전 세대의 눈에는, 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 누구나 한 번쯤은 앓고 지나가는 젊은 날의 열병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을 수 있다.


술을 마시고 취하는 것, 관계를 맺긴 하지만 실패하는 것, 서로가 서로를 오해하고 반목하는 것,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 가치 없는 것인 줄 알지만 괜히 집착하는 것, 비도덕적이고 반종교적이며 반사회적인 것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 등이 그들의 바지주머니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 헤밍웨이는 로스트 제너레이션의 방황을 문학적으로 옹호하거나 채색하려 하지 않고 그들이 가졌던 불안정함과 미숙함을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구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미숙하고 불안정하게 방황하던 로스트 제너레이션은 헤밍웨이의 문학 안에서 일상의 삶으로 복귀한다.

이제 그들은 방황이라는 고정된 사회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인간적'이라는 문학적 이미지로 해방된다.


헤밍웨이 자신이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며, 그들 세대의 살아 있는 증거이기에 그 구원의 메시지는 '모든 것을 이룬 완성한 작가 헤밍웨이'가 '방황하는 젊은 날의 자신'에게 보내는 구원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로스트 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을 겪으면서 허무감과 혼란 속에서 삶의 방향과 가치관을 상실한 채로 살아간 1920년대의 젊은 지식인 세대를 말한다. (문학과 예술사에서는 그 당시의 젊은 예술가와 작가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집필하던 1957년-1960년에 헤밍웨이(1899–1961)는 60대 후반이었다.

60대 후반을 '인생의 노년기'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문헌에서는 이때를 '헤밍웨이의 노년기'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파리는 날마다 축제>의 집필기인 1957년-1960년의 바로 다음 해인 1961년에 헤밍웨이가 세상을 떠났기에 '노년기 작품'이라기보다는 '말년의 유작'이라고 하는 것이 좀 더 이성적일 수 있다.


아무튼 <파리는 날마다 축제>는 작가인 헤밍웨이가 인생의 끝무렵에 초고를 정리하다가 끝을 맺지 못한 채로 남겨진 미완성 유작이다.

그래서 <파리는 날마다 축제>는, 제목에서 오는 느낌과는 달리, 쓸쓸하게 인생을 관조하는 듯한 울림을 받게 된다.


젊음의 열정은, 물리적으로는, 희미해진 과거의 흔적일 뿐이다.

하지만 뜨거웠던 그 시절의 추억과 로스트 제너레이션으로서의 문학적 윤리는 헤밍웨이의 텍스트에 곰 삯은 채로 녹아들어 있다.


헤밍웨이는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 젊은 날의 자신을 채색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거리를 유지하면서 텍스트로 소환하고 있다.

자신의 일을 말하는 데도 마치 소설 속의 누군가를 말하는 것 같은 '이방인화 된 헤밍웨이'를 좇는 듯한 느낌마저 받게 된다.


그것은 헤밍웨이적인 문체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텍스트 속의 헤밍웨이와 현실의 헤밍웨이 사이에 놓여 있는 문학적 거리감으로 인한 것이기도 하다.


젊은 날의 파리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이미 지나가 사라진 파리이다.

하지만 헤밍웨이는 정직하게 파리를 보고 그것을 정직하게 쓰려했던, 젊은 날에 가졌던 파리에 대한 태도와 생각을 소환해 냄으로서 <파리는 날마다 축제>의 텍스트에 절제와 투명성을 부여하고 있다.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파리를 배경으로 쓴 도시 문학이라거나, 헤밍웨이가 노년기에 파리를 추억하며 쓴 회고록이라고만 하기에는 그 아래에 숨어 있는 것들이 너무 소중하다.

<파리는 날마다 축제>는 헤밍웨이 문학의 기원에 대한 '문학적 다큐멘터리'이면서 문학이 삶을 구원하는 방식을 다룬 '문학적 증언'이다.


젊은 날의 파리는, 젊은 날에 새겨졌던 다른 많은 것들처럼, 실루엣만을 남긴 채로 희미해져 갔다.

하지만 파리에서 지었던 글쓰기 방식과 문학적 태도는 헤밍웨이의 생애와 함께하면서 현실의 텍스트로 소환된다.

그래서 헤밍웨이의 젊은 날의 파리는 여전히 <움직이는 축제>, Movable Feast로 살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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