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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이야기


1.

개미 한 마리가 부지런히 기어 다닌다

가만히 보면

검은 낚싯줄을 잘라놓은 것 같은

마디진 가는 다리를

벌새의 날개 짓 같이 필사적으로 퍼덕이고 있다

양손을 엮어 다리를 모으고 등을 굽혀 내려다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다리에 난 쥐를 참는 사이

붉게 물든 구름이 제 무게를 못 견디겠다는 듯

빗물을 가득 머금은 장미 꽃송이처럼

땅을 향해 낮아지고 있다

그저 몇 걸음 되지도 않는

구불구불한 실선을 따라 개미는,

해질 때까지 기어 다닌 것이다



2.

어느 날인가부터 있어야만 하게 된 이곳은

뿌옇게 흐린 하늘의 달빛보다

더 밝은 땅의 가로등과

그의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무수한 물체들과 현상들이

낯설게 늘려져 사방을 빼곡하게 뒤덮고 있다

생각을 더듬어 보면

이곳에 있게 된 그때부터

하늘은 늘 짙은 회색이었고

부족한 수면으로 무언가를 꿈꾸는 것은

거추장스러운 잡념이 되어버린 지 오래이다

안개 매캐한 새벽이면

마른 구역질로 눈을 뜨고

목에 걸린 기침이

그의 다리를 더욱 가늘게 만든다



3.

바람이 분다

늘 그렇듯 인도블록 위에서

구겨진 종이뭉치가 나뒹군다

마른 나뭇잎 몇 조각이

바람에 서걱거리고는 있지만

이내 익숙한 소음에 섞여버린다

어느 날 개미는 가던 길을 멈추고 선다

미간을 찌푸려 하늘을 훔쳐본다

그곳에서 파란 하늘을 본 듯하지만

어지러움에 이내 잊어버린다

기억하지 않는 것이 더 편안하다는 것을

개미는 이미 알고 있다



4.

개미는 늘 생각한다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 같아"

주머니에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손을 집어넣어 뒤적거려보지만

나무토막 같은 몸뚱이의 파편만이

손끝을 아리게 할 뿐이다

생각이란 걸 하려 잠시 애를 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언제부터 그랬는지 알지 못한다

떠나올 적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기도 하고

잃어버린 추억의 한 조각인 것 같기도 해서

좀체 알 수 없는 그런 날이

어제와 그 어제처럼 오늘도 계속된다



5.

개미는 나라는 것 따위는 잊어버릴 만큼

현명하고 똑똑하다

그것이 더 편하다는 것을 개미는 알고 있다

개미는 부지런하다

아침마다 구토와 마른기침으로

힘겹게 눈을 뜨지만

또다시 밤이 늦어지도록 기어 다닌다

개미는 똑똑하고 부지런하지만

사실은 멍청하기도 하다

어디로 가는 건지 알 수 없는 그의 바쁜 걸음은

마치 생각하는 것조차 잊어버린 듯하다



by Dr. Franz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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