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에서 'Les Années Folles(레 자네 폴, 미친 시절)'로 표기하고 있는 파리의 1920년대(1920년에서부터 1929년까지)를 영어권에서는 다음과 같은 3가지의 텍스트들에 담아 표현하고 있다.
The Roaring Twenties(포효하는 20년대)
The Jazz Age(재즈 시대, 피츠제럴드)
The Wild Years(야생적 시기, 헤밍웨이)
이와 같은 텍스트들이 영어권 또는 영미권에 해당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 Lost Generation)과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미국권'이 중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이들 각각의 텍스트를 통해 1920년대를 바라보는 영어권의 인문학적 시각들을 살펴볼 수 있다.
'포효하는 20년대'(The Roaring Twenties)라는 텍스트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에 '포효하듯' 불어 닥친 경제적 호황과, 그 전례를 찾아볼 없을 만큼이나 '포효하듯' 전개되는 사회적 변화를 상징적으로 담아내고 있어, 미국뿐만이 아니라 영어권 전체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
특히 'Roaring(포효하는)'이라는 단어는, 재즈 음악이 뿜어 내는 강렬한 리듬과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분주해진 메트로폴리탄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금주법 시대(1919년부터 1933년까지) 뉴욕의 은밀하고도 화려한 파티를 청각적 시각적으로 떠올리게 하고 있어 1920년대 미국의 사회적 문화적 현상을 가장 잘 담아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파리에서 코코 샤넬이 일으킨 여성 패션의 혁명이, 미국에서는 '플래퍼(Flapper)'라 불리는 신여성들을 '포효하듯' 증가시켰고, 라디오와 자동차의 보급으로 대중문화가 지역과 계층을 가리지 않고 '포효하듯'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플래퍼(flapper)
1920년대는 미국의 성 혁명 시대로 기록되는 데, 이 혁명을 이끈 것은 flapper(플래퍼)라고 불린 신여성들이었다.
'플래퍼'는 기성의 관습을 거부하면서 자유분방한 삶을 즐긴 1920년대 미국의 젊은 여성을 일컫는 말이다.
그녀들은 무릎 위로 올라가는 짧은 치마와 가슴을 압박해 직선적인 실루엣을 강조한 드레스를 입었고, 당시로는 획기적이라 할 수 있는 짧은 단발머리(보브 컷)로 자신이 플래퍼임을 숨김없이 나타내었다.
또한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가 하면, 당시가 금주법 시대였음에도 술을 마시는 것과 같은 파격적인 행보로 사회적 주목을 받았다.
강렬하고 짙은 화장은 자신이 플래퍼임을 드러내는 상징이었고, 스스로 자동차를 운전함으로써 사회적 편견에 정면으로 도전하였으며, 재즈 리듬에 맞춘 활발하고 격렬한 춤을 즐기면서 사회적 굴레 밖에서의 자유를 만끽하였다.
인문학적 의미에서의 플래퍼
파리의 예술가들이 몽마르트르와 몽파르나스에서 자유와 무의식을 논하고, 코코 샤넬의 패션 혁명이 파리의 여성들에게 성적 자유를 전파하고 있을 때, 대서양 건너 미국의 거리에서는 플래퍼라 불리는 신여성들이 행위적 일탈을 통해 여성의 자유를 외쳤다.
그녀들은 샤넬이 선언한 여성의 자유를, 정신에서뿐만이 아니라 행위를 통해 실천하였고 그녀들이 일으킨 '사회적 문화적 바람'은 재즈의 리듬을 타고 금지되어 있던 낙원의 문을 열었다.
플레퍼들은 샤넬이 제안한 새로운 여성상이 대서양 건너 신대륙에서 어떻게 사회적인 문화로 폭발했는지를 보여주는 실체적 증거였다.
또한 플래퍼들은 지난 낡은 시대가 여성에게 강요한 '여성다움'이라는 전통적 원근법을 깨뜨리고 새로운 사조를 탄생시킨 또 다른 방식의 입체주의자들이었다.
1920년대의 플래퍼들은 단순히 유행을 좇기만 하는 젊은 여성들이 아니라, 빅토리아 시대가 남긴 억압적인 사회적 권위에 맞서 몸과 정신의 자유를 쟁취하려고 했던 사회적 도시 산책자(Flâneuse, 플라뇌즈)들이었다.
파리에서 샤넬이 여성들의 코르셋을 벗겨내고 '남성복의 실용성'을 여성복에 이식한 것처럼, 미국의 플래퍼들은 사회적 반항을 유니폼 삼아 온몸에 두르고 거리와 재즈 클럽으로 쏟아져 나왔다.
1920년대의 플래퍼들은 규율에 맞춘 정박자대로 살아가는 삶을 거부하고 인생에서의 엇박자를 즐겼기에 그녀들의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완벽한 재즈 연주였다.
그렇기에 재즈음악의 싱코페이션이 가장 잘 어울리는 존재는 남성들이 아니라 바로 1920년대의 신여성 플래퍼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살펴본 바와 같이 '플래퍼'라는 용어는 1920년대의 프랑스와 미국의 사회적 문화적 현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개념이지만, 한국에서는 플래퍼라는 용어가 일본을 거쳐 들어오면서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여자 깡패', '행실이 방정하지 못한 여자'를 가리키는 '후랏빠'(영어 flapper(플래퍼)를 일본식으로 읽은 표현)라는 개념을 가진 단어로 편향되게 사용되었다. 물론 이후 '건달 아가씨', '왈가닥 아가씨'와 같이 다소 순화되기도 했지만 그 본질적 의미에서는 '부정적 편견'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 결과, 지금까지 많은 문헌들에서 플래퍼를, 1920년대 파리와 미국에서의 하나의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서가 아니라 20세기 이전의 영국에서의 발생적, 사회적 의미와 연관 지어 부정적인 의미에서 해석하고 있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보들레르(1821-1867)가 산책자 '플라뇌르(Flâneur)'의 시선으로 도시의 풍경을 채집하며 사유와 언어를 건져 올리던 파리의 거리는,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플라뇌즈(Flâneuse)'들의 발걸음으로 차올랐다. (플라뇌즈(Flâneuse)는 '산책자'를 뜻하는 남성형 명사 플라뇌르(Flâneur)의 여성형 명사이다.)
보들레르가 산책하던 19세기의 거리는 오직 남성들에게만 허용되는 공간이었고 여성이 혼자서 거리를 산책하는 것은 아주 부적절한 행위로 여겨졌다.
'거리의 여자'라는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여성에게 거리는 금지된 영역이었다.
하지만 1920년대 '미친 시절(Les Années Folles)'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파리의 여성들은 코르셋과 거추장스러운 드레스를 벗어던지고, 가벼워진 옷차림에 단발머리를 흔들면서 당당하게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녀들은, 여성이 남성의 시선을 받는 '시선의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또한 도시를 능동적으로 응시하는 관찰자의 시선을 가진 존재라는 인식을 확산시킴으로써,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전복시켰다.
그렇게 그녀들은 당당하게 거리로 나와 도시를 관찰하고 소비하며 여성에 대한 사회적 금기를 깨뜨린 '혁명적 주체'가 되었으며, 도시가 뿜어내는 불규칙한 엇박자(싱코페이션)에 몸과 마음을 던져 넣은 여성 산책자 플라뇌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