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광에게서 배운다



오노의 전설

익숙하지만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하나 하자. 이 이야기는 좌절하고 방황하는 이들에게 종종 들려주고 있는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별 의미 없이 즐기기만 하던 화투짝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화투 중에 12월을 나타내는 것이 비이다. 그중에서 비광에 담긴 이야기는 조금 특별하다.


절기상으로 본다면 12월은 분명 날이 차가운 겨울이라는 계절이다. 하지만 비의 광에는 머리에 모자를 쓴 선비 한 명이 우산인지 양산인지를 머리 위에 받쳐 들고 있다.

그를 둘러싼 축 늘어진 수양버들 사이로는 실개천이 굽어져서 흐르고 그의 옆으로는 개구리 한 마리가 앞다리를 들고 뛰어오르려는 듯한, 안정되지 못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12월과 선비와 개구리라니, 그림이 뜻하는 내용을 모른다면 많이 어색한 대목이다.

이 화투짝에 담긴 것은 흔히 <오노의 전설>이라 부르는 옛날이야기를 묘사한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그림 속의 모자를 쓴 사람은 10세기경에 살았던 오노노도후(小野道風, 894~967)라는 일본 최고의 서예가라고 한다. 그의 일화는 일본의 교과서에도 소개된 적이 있을 정도로 잘 알려진 교훈 중에 하나이다.

젊은 시절 오노노도후는 아무리 붓글씨에 정진을 해도 더 이상의 발전이 없었다고 한다. 소위 슬럼프에 빠진 것이다. 슬럼프에 빠진 오노노도후는 누구나 그렇듯이 자신의 전부처럼 여겼던 붓글씨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해 회의와 좌절에 빠져 방랑길을 떠나게 되었다.

방랑길을 가다 보면 많은 일을 겪기 마련이다. 어느 날에는 바람이 불었을 것이고, 어떤 날에는 구름이 해를 가렸을 것이고, 어느 날에는 비가 내렸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뭔가 특별한 일이 갑작스럽게 닥치기도 하는 것이다. 그날은 비가 내렸나 보다. 실개천에 물이 불어난 것을 보면 제법 많이 내렸나 보다. 비를 피하기 위해 우산을 쓰고 길을 가던 중에 그의 인생을 바꾸게 된, 별것 아는 것 같지만 의미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내린 비로 개울물이 불어나 물살이 거세지자, 급류에 떠내려가지 않으려는 듯 개구리 한 마리가 개울가의 수양버들을 향해 필사적으로 뛰어오르려고 하고 있었다. 오노노도후가 얼마나 그 자리에서 지켜봤는지는 모르겠지만, 개구리는 뛰어오르다가 미끄러지고 떨어지기를 수 없이 반복하였지만 멈추지 않았고 결국에는 수양버들에 기어올랐다고 한다.


아무리 힘들고 무수히 실패하여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수양버들에 기어오르고야 만 한 마리 개구리의 모습에서 '약하고, 한 낯 미물일 뿐인 저 개구리도 저렇게 노력하여 원하는 것을 이루고야 마는데, 하물며 인간인 내가 여기서 포기하려 하다니 ‘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깨달음은 원래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찾아가는 것이다. 비록 방랑길에 올랐지만 오노노도후의 마음은 깨달음을 향해 닫혀있지 않았던 것이다. 오노노도후는 그 길로 집으로 돌아가 붓글씨에 매진하여 대성을 이루게 된 것이다.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라

‘당신 해보기나 해 봤어?’, 이 말은 현대그룹의 창업자였던 정주영 회장의 말이다. 오노노도후는 ‘저 개구리의 필사적인 노력처럼 나는 과연 죽기 살기로 붓글씨에 매달렸었던가?’라는 물음을 자신에게 던졌던 것 같다. 자신에게 물어보자. 이 두 말을 통해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끊임없는 노력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를 이끌어낸 정주영 회장이나 오노노도후의 이야기는 시대를 떠나 결국 하나의 의미를 가진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노력하자.”

누구나 슬럼프를 만나기 마련이다. 처음엔 그 슬럼프를 극복하려고 노력을 기울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세상의 일이란 게 노력이라는 행위만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안타까운 것은, 현실에서의 희망은 결코 환한 미소를 짓는 여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몇 차례의 노력이 실패하다가 보면 몸과 마음이 지치기 마련이고 점차 회의감이 찾아오기 마련이고 결국에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좌절하게 된다.


그 순간이면 오직 나만이 이런 힘든 상황에 처해진 것 같고,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 같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고, 만사가 모두 귀찮아지고, 모든 것이 원망스럽고 부정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심지어 자존감이 한없이 낮아져서 자기 자신에게 큰 실망감을 가지게도 된다.

하지만 이때가 생각의 틀을 바꿔야 할 때이다. 패러다임의 쉬프트(Paradigm Shift)처럼 사고의 쉬프트(Thinking Shift)가 필요한 때가 바로 지금이다. ‘한 낯 미물인 개구리도 결국에는 해내고야 말았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못할 일이란 게 있겠는가.


만약 절대로 이룰 수 없는 것임이 분명하다면 자신이 정한 목표치가 너무 높은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짚어봐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목표의 수정이 필요할 수 있고 다른 대안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접근하는 방향의 변경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방법이든지, 어떤 수단이든지, 어느 방향으로든지, 자신을 막아선 슬럼프를 넘어설 방법을 찾아보려는 ‘비광 속의 개구리와 같은’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도전을 멈추지 마라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보자. 왜 사람은 방황을 하게 될까. 방황이란 게 비단 자신에 대한 회의나 자신의 상황에 대한 좌절의 결과물인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도 없다.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은 체념을 할 뿐 방황하지 않는다. 방황의 가장 큰 원인은 아직 포기하지 못한 미련에 있다. 방황을 꼭 부정적인 시야로 볼 필요는 없다. 문제는 그 방황이 끝나는 순간의 선택이다. 방황의 끝은 또 다른 방황의 시작점일 수도 있고, 체념일 수도 있고, 새로운 도전일 수도 있다. 이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할지가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방황을 멈추는 데는 오노노도후의 일화와 같이 어떤 계기가 필요한 법이다. 그 계기를 무언가 크고 거대한 것에서 찾으려 할 필요는 없다. 오노노도후가 살아가던 시대에 개구리가 어디 한 두 마리였을까. 좌절하고 방황하던 이가 한둘이었을까.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길나선 이가 오노노도후 한 사람 만이었을까. 계기나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고 다가왔다가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것을 볼 수 있고 잡을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오직 자기 자신의 준비 여하와 마음가짐에 있다. 만약 오노노도후가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해 버렸더라면 그 개구리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고, 혹시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해도 ‘그 녀석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네’라며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방황이란 것은 그 상황을 헤쳐 나갈 계기를 찾으려는 길 걷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길 걷기는 비단 육체적인 길 걷기만은 아니다. 주어진 여건 여하에 따라 책을 읽으며 또는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거나 하늘을 바라보면, 정신적으로 나선 길 걷기 또한 방황의 길 걷기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방황이 희망을 찾으려는 것이냐. 그 방황의 결말이 체념으로 종료되느냐, 새로운 도전을 행한 노력의 시작점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오노노도후가 개구리의 노력을 보고 얻은 것을 깨달음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 부분에 있어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큰 부끄럼이었을 것이고 깊은 반성이었을 것이다.


자기를 반성하다가 보면 끄집어내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순간과 외면하고 싶은 일들이 수도 없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당연하다. 그것이 인간이다. 인간이기에 실수가 끊이질 않고, 그 실수를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이다. 방황을 할 때는 실수의 순간을 찾아 부끄러워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반성을 계기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야 한다. 실수를 반성한 도전은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한다. 그러니 반성이 이끈 새로운 도전의 성공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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