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의 삶을 파릇하다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막상 그 시절에는 확신할 수 없었다.
대게의 것들을 시간 지난 후에야 알아차리는 것을 두고,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괜한 변명 따위를 늘어놓아야 할 이유 또한 없다.
그즈음 캠퍼스에 적을 둔 첫 번째 해를 보내고 있던 나의 책 읽기 행보는 무리 잃은, 아니 무리에서 벗어난 한 마리 철없는 철새의 방향 없는 날갯짓처럼 이 책의 표지에서부터 저 책의 인쇄정보까지, 알파의 머리끝에서부터 오메가의 발바닥까지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날아다녔다. 행여 그것에게 '자유'라는 추상의 이름을 붙인다고 해도 비난할 이는 없을 거다.
제약받을 것 하나 없었던, 사실 있었다고 해도 그 따위는 무시하면 될 뿐이었기에, 그 시간은 모서리 없는 우주공간을 가득 채운 영겁의 검은 입자처럼 마르지 않고 마냥 주어질 것이라고 그냥 믿었다.
굳이 부족한 것을 꼽아보라면, 손에 잡을 수 있는 책들이, 주머니 형편과 시대적 여건상, 그리 다양하지는 않았다는, 그저 소소하게 여길만한 그런 것 정도였다.
도서관이나 헌책방을 뒤져서 구할 수 있는 책의 폭넓지 않은 다양성을, 편향된 나의 글 읽기 습성에 대한 변명거리로 내세울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고 지금에 와서도 그러고 싶지는 않다.
불현듯, 나무로 만든 커다란 카드함 앞에 서서 가나다라순으로 정리된 좁고 긴 서랍 칸칸이 담겨 있는 '서지 정보 카드'(Catalog Card)를 한 장 한 장 손끝으로 넘기면서 들었던 '누런 종이의 사각거림'이 몹시도 그리워진다.
어쨌든 최선책이 없다면 차선책을 찾아가는 것은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살아가는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에게 있어 생존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원래 인간의 머릿속에는, 이렇게 저렇게 어떻게든 변명거리를 찾아내는 신통방통하고 기막힌 재주가 심겨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어차피 읽을 수 있는 책의 양이란 건 시간의 테두리를 넘어설 수 없는 것이었기에, 찾아낼 수 없는 책에 대한 미련 따위는 어느 페이지 한쪽 귀퉁이에 은근슬쩍 묻혀서 떨궈 내고, 읽은 책의 페이지들을 몇 번 더 돌려 읽고 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툭 덮어 책장 선반 위에 던져버리면 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