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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진정성에 대해

1.

인간은 자신의 주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경험한 것들에게 의존해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경험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것을 ‘사례기반의 삶(Cases based Living)’ 또는 ‘경험 기반의 삶(Experiences based Living)’이라고 할 수 있고, 주관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것을 ‘규칙 기반의 삶(Rules based Living)’ 또는 ‘주제 기반의 삶(Subjects based Living)’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겪게 되는 사례와 경험을 주관을 기반으로 규칙과 주제를 찾아내어, 그것을 다시 경험과 사례로 형성해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삶에서 얻어지는 경험은 지각의 인지 작용을 통해 기억의 저장소 어딘가에 쌓이게 되고 어느 날엔가는, 어떤 격발 작용을 통해서 그 저장소에서 벗어 나와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게 된다. 일단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게 된 경험은 삶이 걸어가는 여정을 동반하면서 스스로에 의한 자기변명을 통해서 다양한 변형이 이루어지게 되고, 이렇게 변형된 경험을 ‘객관(Object)적인 것’이라고 여기게 되는 주관적인 삶을 살아가게 만든다.


그렇다면 객관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자기변명이 만들어낸 스스로의 보호 장치인 것일까. 기억에 있어 객관이란 무엇일까. 기억이라고 믿고 있는 그것은 과연 그날 그때의 그곳에, 진정으로 있었던 것이 내 머릿속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 자리에 있었던 것과 있었을 것 같은 것, 있었기를 바랐던 것이 뒤섞여 있는 지나간 것들을 지금에 와서야 기억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밤하늘에 박혀있는 별들보다 더 많은 기억들과 그것들이 뿌려놓은 무수한 파편들 중에서, 어느 기억들만을 꼭 집어내어 ‘진정한 객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기억과 그것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행위는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 고안된, 고도로 정교한 정신적인 장치인 것은 아닐까.



2.

채색왜곡각은 인간의 기억이 가진 속성(Attribute)이고 그것이 일으키는 작용은 인간의 기억 장소가 가지고 있는 방법적인 행위(Method)이다. 적절히 채색된 기억은 왜곡의 과정을 통해 ‘그때 그 자리에 있었으면’하는 ‘변형된 객관적인 추억’이 되고, 망각의 작용이 가해진 기억은 새로운 채색을 입어 ‘재탄생된 객관적인 추억’이 된다. 그 채색은 기억의 시점과 장소에 따라 다른 색을 올리기도 하기에 기억에 대한 객관은 가변적이면서 성장과 소멸의 과정을 밟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기억에서의 객관은 지각의 경험에 의한 기억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정신작용이 더해져서 형성된 주관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이다. 그렇다고 그 기억에게 진정성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에게 있어 자신의 기억은 늘 진정한 것이고 그러기에 자신의 삶이 진정한 것이다. 기억이 진정성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고 있을 때 그 기억은 객관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억에 있어 객관성은 진정성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시간의 산화작용은 그곳에 있었던 기억을 변화시키려 하지만, 꿈에서든 최면 속에서든, 일상 속에서든, 기억의 객관은 늘 기억의 진정성을 유지하려 애를 쓰고 있다.



기억, 마법의 성


기억이란 건

거기에 있었으면 하는

담고 싶었던 것들의

흐린 저장소이다

보고자 했던 것들과

남기고자 했던 것들과,

실체 없는 미망들이

거기에 더해지거나 빠져서

채색이란 미명 아래

왜곡의 변명을 방조한다

이미 여위어버린 어깨와

횅한 눈의 어색한 웃음을

이젠 어쩔 수 없다

그곳은 마법의 성이다

결코 결계가 풀어지지 않을 것 같은

지독한 마법에 걸린 성이다

성문 앞에 버려진 우물가에는

찬바람에 먼지가 쌓이고 있고

회백의 성벽에는

마른 이끼가 자욱하게 기어오르고 있다

인간의 기억은

저 편에 있는 것 같은

저 편에 있을 것 같은

저 편에 있었으면 하는

자욱한 안개에 갇힌 마법의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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