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시지프스의 돌 굴리기와 나의 책 읽기

6. 시지프스의 돌 굴리기와 나의 책 읽기


돌은 명계의 산을 '다시' 굴러서 내려가고 '다시' 굴러서 올라온다.

나 또한 그 돌을 따라 '다시' 걸어서 내려가고 '다시' 걸어서 오른다.

돌이나 나나, 시지프스나 나나, '다시'를 기약 없이 반복하고 있는 것은 '누군가에 의한 누군가를 위한 누군가의 형벌' 때문이다.

셀 수 없을 만큼 오르내린 이 길에서, 계절마다 피고 지는 길가의 잔풀을 시지프스는, 나처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형벌을 판결한 누군가는 이미 오래전에 형벌에 대한 내용조차 잊어버렸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가 올 것이라고 믿기에 올 것 같은 누군가를 기다린다.

이 이야기의 잔혹함은 그와 나의 희미해진 기억으로 인해 무한으로 증폭된다.

헤어날 수 없이 반복되는 형벌에는 오직 망각의 은총만이 기다려질 뿐이지만 막상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목마른 시지프스와 망각의 강, 레테의 강물을 나누어 마신다.

처음인 것 같으면서도 '다시' 마신 것 같은 뿌연 느낌이 언뜻 인다.


거친 산길을 따르던 기억은 '다시' 좁은 길로 이어진다.

레테의 물을 마셨으니 어디서 온 것인지 알지 못한다.

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어느 길로 가게 될지, 어디로 가게 될지는 잊었지만 산 아래로 내려가고 다시 올라와야만 한다는 기억만은 남겨져 있다.

어쩌면 산이 여기에 있기에 '다시' 내려가야 하고 '다시' 올라가야만 하는 것일 수 있다.

내가 오갈 수 있는 길은 좁고 거칠지만 언젠가부터 익숙해져 있는 이 산길뿐이다.


"아는 만큼 자유롭다."라는 표현은, "지식의 공간 안에서라면 자기변명의 최면조차 정당화시킬 수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 물음은 카뮈의 또 다른 작품들 ‘이방인’과 ‘칼리굴라’, ‘페스트’, ‘정의의 사람들’을 찾아 읽고 또 읽게 만들었다.


어차피 할만한 것이라곤, 열여덟에는, 책을 뒤지는 것 밖에 없었으니 손에 잡힌 그것들의 택스트를 '다시' 삼키고 '다시' 삼켰다.

그래야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뭔가 조금은 더 알게 될 것이라고, 그를 기다리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사유하고 반항하는 자 블라디미르(디디)처럼, 믿었다.

결국에는, 읽는다는 행위가 반복되면 돌을 굴리는 행위와 같아진다는 것만을 알아차렸지만,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매거진의 이전글5. 시지프스: 생각하기와 반항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