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그리는 열여덟의 자화상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은 파리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허물고 그 자리에 '직선의 도로'를 새겨 넣었지만, 1980년대 한국의 젊은 지성들은 그 직선의 도로를 막아 세우고 지적 유희가 펼쳐지는 '보행의 광장'을 대학로에 만들었다. (파리 대개조 사업(Haussmann's renovation of Paris)은 공식적으로 1853년부터 1870년까지 약 17년 동안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파리의 모습은 파리 대개조 사업을 통해 재창조된 것이다.)
19세기 파리의 우안에서 부르주아들이 백화점의 쇼윈도를 감상하며 주머니 속 지갑을 만지작거릴 때, 20세기 대학로의 젊은 지성들은 지하 소극장의 무대에서 '깨어나지 못한 시대를 살아가는, 살아남은 자의 고뇌'를 어둠 속에 토해내고 있었다.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이 만든 19세기의 파리는 '보이는 것 이상의 넘치는 도시'였지만, 건물 귀퉁이마다 소극장이 촘촘하게 박힌 대학로는 서로의 가슴과 영혼을 뜨겁게 공유하는 '부족하지만 나눌 것이 있는 지성의 공동체'였다.
20세기의 대학로를 돌아다니면서 19세기의 파리를 꿈꾸었던 것을 두고 한낱 '낭만주의자의 나약한 괘변'이라 비난한다고 해도,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대학로의 소극장은 한국 현대사의 상처와 열망이 폭 좁은 계단마다 켜켜이 쌓여 있는 공간이다.
그곳의 계단을 오르내릴 때면 젊은 날의 나와 그들의 숨소리가 또각또각 공명하는 것을 가슴으로 먼저 알아차리게 된다.
1985년 대학로 무대에서 느꼈던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현실에서의 좌절, 뜨겁게 불타올랐던 무언의 함성과 열기는 19세기의 파리 풍경과 충돌하고 화해하면서 지금까지 그 찬란한 불꽃을 밝히고 있다.
그곳에는 카뮈와 베케트가 있었고, 샤르트르와 카프카, 노발리스와 헷세, 단테와 괴테가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80년대 소극장 특유의 눅눅하고 퀴퀴한 공기가 공연마다 온몸의 감각기관을 오롯이 세우도록 종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1985년의 대학로는 실험적인 창작극과 해외 번역극이 공존하면서 소극장의 밀도를 높여 나가고 있었다. 당시에 무대에 오른 대표적인 연극으로는 <한 씨 연대기>와 <신신의 아그네스>, <유랑 극단>, <실비아, 실비아>, <품바> 등이 있다.
극단 연우무대의 <한 씨 연대기>는 대학로 연극의 지평을 한 단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으로 소설가 황석영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남북분단의 아픔을 서사극 형식으로 풀어내었다. '민주화'와 '민족통일'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끓어올랐던 시대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잘 반영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씨 연대기>는 1985년 한국 연극사에서 ‘리얼리즘의 승리’이자, 공간적으로는 대학로가 단순한 유희의 거리를 넘어 ‘시대의 증언대’로 격상되었음을 알린 사회적 작품으로 1985년 한국 연극계의 가장 큰 수확 중에 하나로 꼽힌다.
오스만의 파리가 19세기의 파리 시민들을 단순한 ‘구경꾼(관객)’으로 전락시킨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 씨 연대기>는 관객이 '역사의 주체'로써 참여할 수 있도록 무대와 객석의 소통을 시도하였다.
파리의 낡은 골목들을 밀어내며 '위생적이고 효율적인 도시'를 건설한 19세기 파리의 오만한 확신은, 1985년 대학로 지하 무대에서 상연된 <한 씨 연대기>의 비극적 내용과 묘하게 닮아 있다. 오스만에게 좁고 불결한 파리의 골목길이 치워버려야만 하는 오물이었듯이, 냉전의 시대에 한영덕이라는 정직한 개인은 사회 체제의 결벽증을 위협하는 오물로 취급받았다. 주인공 한영덕은 북에서도 남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경계적 지식인’이다. 의사로서의 양심과 인간적 도리를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이념이라는 거대한 직선의 논리는 그를 끊임없이 시대의 변방으로 밀어내었다.
직선의 도로가 물질계를 지배하고는 있지만 인간의 정신은 골목길의 추억을 지워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직선의 도로가 지워버린 삶의 흔적들은 극단 연우무대의 좁은 무대 위에서 '기억의 역습'을 시작하였다. 혁명은 튈르리 궁전을 불태워 없애버렸지만, 한 씨의 낡은 진료 가방은 연극무대 위에서 '또 다른 언어'가 되어 대학로의 밤을 지켰다.
극단 실험극장의 <신의 아그네스>(Agnes of God)는 배우 윤석화를 스타로 만든 작품으로 1983년 초연 때부터 시작된 흥행 열기가 1985년에 까지 이어지며 대학로 일대 소극장 흥행의 시초가 되었다. 순수하면서도 광기 어린 '아그네스' 역을 맡았던 윤석화는 이 작품을 통해 최고의 연극 스타로 부상하였고 당시 대학로에는 윤석화의 공연을 보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영아 살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통해 '기적(신앙)'과 '현실(정신분석)' 사이의 갈등을 다룬 <신의 아그네스>는, 당시 지적 갈증에 목이 말랐던 젊은 지성들에게 '종교와 과학의 대립'이라는 사회철학적 질문을 던졌다.
오스만이 설계한 파리의 직선 도로는 모든 것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파리를 통제하려 했다. 하지만 그 직선의 끝에 위치한 1985년 대학로의 소극장 무대 위에서는, 인간 내면의 심연을 다룬 <신의 아그네스>가 상연되었다. 나폴레옹 3세 황제가 하수도를 정비하며 도시의 오물을 치울 때, 연극은 인간 영혼의 가장 어두운 구석인 광기와 신앙, 그리고 죄의식을 조명 아래에 들춰내었다. <신의 아그네스>는 옳다는 것과 그르다는 것을 판단하는 행위가, 더 이상 신의 영역이나 사회의 영역만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심연을 탐구함으로써 판단할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 수 있다는 사유의 화두를 던진 작품이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직선이 '옳고 그름의 정답'을 강요하는 파리의 우안이라면, 수녀복을 입은 아그네스의 떨리는 목소리는 '옳은 것은 무엇이며 그른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파리의 좌안이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극단 민예의 <유랑 극단>은 한국적 정서와 마당극적 요소를 결합한 다양한 작품들이 당시 대학로 무대에서 큰 인기를 끌었으며, 극단 성좌의 <실비아, 실비아>는 여성의 자아와 내면을 다룬 심리극으로 주목받았다. <품바>는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와 해학으로 대학로 장기 공연의 신화를 만들었다.(<품바>는 1981년 전남 무안에서 시작되어 1980년대 중반에 대학로에 상륙하였다.)
또한 1985년은 신촌역과 홍대입구역 중간쯤에 극단 <산울림>의 전용 공연장이 생기면서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공연을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