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대학로 학림다방:문화의 아지트이자 망명지

- 다시 그리는 열여덟의 자화상

12. 대학로 학림다방: 문화의 아지트이자 망명지

- 다시 그리는 열여덟의 자화상


1985년의 대학로를 얘기하면서 또한 빼놓지 말아야 할 공간이 학림다방이다.

당시의 학림다방나폴레옹 3세의 파리가 오스만의 직선 도로로 닦여 나가면서 사라졌던 ‘구불구불한 사유의 골목’을 한국의 시대적 맥락으로 치환된 '살아남은 인문학의 망명지'였다.


학림다방(學林茶房, 서울 종로구 대학로 119, 2층)

1956년 개업한 학림다방의 별칭은 ‘서울대학교 문리대 제25강의실’이었다. 서울대학교가 지금의 관악캠퍼스로 이전하기 전에 문리대생들의 아지트로 사용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이곳은 시인 김지하, 천상병, 소설가 이청준, 사회운동가 백기완, 홍세화와 같은 반골 성향 지식인들이 자주 찾아 세월과 현실을 토론하던 공간이었다.

학림다방의 이름은 1981년에 있었던 소위 '학림 사건'이라는 공안 사건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학림 사건'이란 이름은 당시 대학생 단체인 ‘전민학련(전국민주학생총연맹)’의 첫 모임이 이 작은 공간에서 있었기에 붙여졌다.)


1871년 파리의 예술가들이 불타버린 제국의 심장 튈르리 궁전의 폐허를 보면서 근대의 허무를 견뎌내었듯, 1985년 대학로의 청년들은 학림다방의 낡은 소파에 등 붙이고 파묻혀 직선의 시대가 주는 강압을 견뎌냈다.

밖에서는 전경들의 군화 소리가 직선의 질서를 강요하며 휩쓸었지만, 학림다방의 나무 바닥은 그 무겁고 날카로운 소음을 클래식의 파동과 싸구려 커피 향기로 녹여 버렸다.


나폴레옹 3세의 직선의 파리에서 목적지를 잃은 산책자(Flâneur)들이 갓 문을 연 화려한 백화점으로 걸음을 향하고 있을 때, 대학로의 산책자들은 학림다방의 삐걱거리는 낡은 계단에 발바닥을 디뎠다.

그곳은 1871년 5월 23일 파리 코민의 튈르리 궁전 파괴도, 1980년대의 정치적 광풍도 닿지 않는 인문학적 성역이었다.


1985년 학림다방은 단순한 커피숍이 아니라, 파리 코뮌이 꿈꿨으나 당시에는 이루지 못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대’가 뽀얀 담배 연기 속에서 가물하지만 뜨겁게 실현되는 공간이었다.

그 시절 옆구리에 책 한 권을 꼽고서는 오르던 나무계단의 삐걱거림과 학림의 낡은 메모판의 눅눅한 기억은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젊은 날의 초상으로 남겨져 있다.

학림다방으로 올라가는 좁은 나무 계단: 학림 다방으로 오르는 구불한 나무 계단의 삐걱임은 유목민처럼 살아야만 했던 당시의 젊은 지성들의 애절한 절규이자 날 선 반항의 외침이다. 이 계단 중간쯤에서 문득 멈춰 서서 늘어진 천가방 안에 찔러 넣었던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을 뒤적인 기억은, 지고의 감성적 가치를 품은 문학적 자산이 아닐 수 없다.


1985년 학림다방에서 호흡할 수 있었던 공기(분위기, Atmosphere)를 인문학적 시선으로 복원하려는 것은 어쩌면 세월이 새겨 넣은 생채기를, 감사하지만 슬프게도, 어느 정도 치유했다는 뜻일 수 있다.

이제 대학로 소극장 내부에서 들이키던 공기는 어둠 내린 대학로를 유랑하다가 학림 다방의 커피향기와 담배내음에서 재영토화를 이룬다.


직선의 권력에 저항하는 곡선의 다락방

1985년의 대학로는 '차 없는 거리'가 선포되면서 젊음의 화려한 장으로 변모하였지만, 학림다방은 그 소란스러운 직선의 도로에서 살짝 비껴 난 2층에서 가만히 숨을 쉬고 있었다.

삐걱거리는 낡은 나무 계단을 올라가 마주하는 퀴퀴한 천 소파와 낮은 천장의 다락방이 주는 미학은, 광폭한 국가 권력과 거대 자본이 결코 침범할 수 없는 반항의 '성소'(Sanctuary)였다.

그 다락방 같은 공간에서 젊은 지성들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들으면서 헤겔과 마르크스, 그리고 시대의 부조리와 실존주의를 토론하였다.

창 밖은 최루탄 연기가 비 그친 뒤의 밤안개처럼 자욱하게 내린 '직선의 전쟁터'였지만, 학림 다방 안은 담배 연기와 클래식의 선율이 실존주의 철학과 뒤섞여 뒹구는 ‘곡선의 안식처’였다.


클래식 LP와 지연된 시간의 미학

시대적으로 1985년은 디지털 문화가 시작되던 시기였으나, 학림다방 스스로는 아날로그의 시간 속에 완전하게 머물렀다.

벽면을 빼곡하게 채운 빛바랜 LP판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의 무게는 공기의 밀도만큼이나 지식의 밀도를 한층 높였다.

오스만이 파리 대개조를 통해 추구했던 '빠른 순환'과는 역행하는 '느리게 고인 시간'이 천장 낮은 공간의 허공을 느긋하게 흘러갔다.


한 잔의 커피를 앞에 두고 몇 시간이고 이어지는 깊이 있는 토론은 직선의 파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곡선의 유희였다.

학림다방의 좁은 테이블 위에서는 연극 대본들과 시론(詩論)들이 스스로의 장을 채웠고, 그것들은 대학로 연극이 르네상스시대를 향해 자라나는 굵은 뿌리가 되었다.

학림다방이라는 곡선의 공간에서 새겨진 검은 텍스트들이 대학로가 찬란한 르네상스시대로 향하는 직선의 대로 역할을 한 것은, 시대와 시간이 주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관찰자의 좌석, 창가 자리

학림다방의 창가 자리는 대학로라는 거대한 무대를 내려다보는 관찰자의 좌석이었다.

창밖 대학로는 거리 축제와 학생 시위가 때를 나눠 공존하는 '뜨겁고 찬란한 무대'였다.

튈르리 궁전 창가에서 나폴레옹 3세는 자신이 이룩한 직선의 파리를 권력자의 시선으로 관찰하였지만 학림다방의 창가에서 젊은 지성들은 시대의 부조리를 관찰자의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그 시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 이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부조리에 대해 젊은 지성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변명 같은 얘기일 수 있지만, 오직 소극적 반항뿐이란 걸. 그렇기에 살아남은 것이란 걸.

지나가던 바람이 속삭였다. 강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살아남아서 강한 것이라고. 그러자 문득 또다시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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