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를 뒤지다가
살아가다 보면 유달리 애착이 가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습성을 가진 이에게는 유달리 애착이 가는 책이 한 두 권쯤 있기 마련이다. 단기 4292년인 1959년에 출판된 프란츠 카프카의 <어느 개의 고백>(어느 개의 연구)이 나에겐 그것이라 할 수 있다.
오랜 기간 서재 한 편에 보관해오고 있는 이 책은 아주 오래전 대학시절, 팔십 년대 중반, 평소 가끔씩 찾아가곤 했던 한 헌 책방 선반 구석에서 우연하게 찾아낸 책이다. 요즈음 세상과 같이 잘 발달된 검색 수단이 없던 그 시절에는 노발리스나 카프카 같은 대중성 떨어지는 작가들의 작품을 활자를 두드려 박은 종잇조각으로라도 만날라치면 발품과 손품을 부지런히 팔아야만 했다.
새벽, 서재의 창을 열자 그 시절, 풋풋했던 십 대 끝무렵의 싱그러운 향이 창문턱을 넘어선다. 구하기 어려웠던 책일수록 그 활자에 스며있는 향은 더욱 깊은가 보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어느 개 철학자의 고백이 프란츠, 그를 깨운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어느 개의 고백>이란 제목으로 기억되고 있는 카프카의 이 미완성 작품은 일반적으로는 <어느 개의 연구>(Forschung eines Hundes)란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원문을 보자면 독일어 Forschung의 의미가 '연구, 탐구, 조사, 답사, 탐험'이니 '연구'란 번역에 더 힘이 실리겠지만, 주인공의 '섬세한 살펴보기와 조사를 통한 내면의 고백'이란 관점에서 보자면 '고백'이란 번역이 좀 더 문학적일 수 있겠다.
대학교수 생활을 오래 해 본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알고 있다. 혹시 모를 시시비비 논란을 피하려면 원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그러니 <어느 개의 연구>란 번역이 가장 일반적일 수밖에 없고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이러한 점으로 인해 동일한 작품에 대해, 직업적인 전문 번역가의 번역과 대학교수의 번역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외국인의 지식과 경험, 눈과 마음을 통한 번역이라는 것이 제아무리 원문에 충실하려 한들 원작가의 세세한 감정의 느낌과, 문화와 사회적 배경을 기반으로 표현된 예민한 문장 하나하나를 완벽하게 번역하긴 불가능 한 법이다.
혹시 그러한 것들에 관심을 갖는다면 그 작가의 생애와 다른 작품들, 작가와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문화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어쨌든 기록으로 보자면 이 <어느 개의 고백>은 카프카가 1921년서부터 1922 사이에 집필한 것으로 1931년 출간된 “만리장성의 축조”에 실린 것이다. 숫자로 살펴보자면 1924년 카프카의 사망 이후 7년이 지나서 출간한 것이니, 카프카의 다른 작품들이 대게 그러하듯이, 적어도 출간에 있어서는 카프카의 자의가 반영되지 않은 상태에서 활자판이 나열되어 종이에 검게 박혀 새겨진 셈이다.
카프카의 다른 작품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이 미완성의 작품을 단행본의 대표작품으로 출간한 것을 보면 1950년대, 당시 한국 지식인층의 독서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고 깊었는지에 감탄하게 된다.
1980년대에 들어서조차 책 좀 읽는다는 이들에게만 귀동냥, 책 동냥으로 접할 수 있었던 프란츠 카프카를, 그나마 <변신> 정도만이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미완성작인 <개의 고백>을, 50년대에 출간한 것은 분명 어떤 사연이 있었을 터임을 짐작할 수 있지만, 알 수 없는 그 내용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귀를 닫아 버렸다.
그냥 그 어느 날 '프란쓰 카프카'란 다소 생소한 이름을 가진 그 프란츠 카프카를 그 헌 책방의 거친 나무 선반에서 먼지 풀풀 날리며 처음 만났다는 것만이 지금 건져낼 수 있는 확실한 기억일 뿐이다.
1959년 아니면 1960년의 어느 날 명동, 담배연기 뽀얀 음악다방 한 구석에 다리 꼬고 앉아, 세로로 내려 찍힌 검은 문자의 연결에 두 눈을 반짝거렸을 젊은 대학생을 떠올린다. 세월은 흘러가기 마련이고 오늘 그는, 다른 하늘 어느 아래에서 흰머리 성성한 노년의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그의 손을 떠나 나의 서재로 옮겨 온 것인지, 그리고 그는 아직도 젊은 시절 손에 잡았던 프란츠의 이 책 <개의 고백>을 기억하고 있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카프카의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실존과 철학의 경계가 흐려지기 일쑤이다. 이러한 점은 카프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또한 카프카의 작품은 초현실적 상황을 인간이 직면한 현실을 기반으로 상징적이고도 우회적으로 묘사했기에 세월의 테를 더 두를수록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특히 사람의 인격을 지닌 또 다른 존재로 변신한 '동물이지만 사람이기도 한' 주인공에 의해 이야기가 전개되는 <변신>이나 <여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일족>, <어느 개의 연구>에서 발견하는 사건의 전개와 심리적 상황의 묘사는 세월의 곰삭음을 통해서야 비로써 그 맛을 제대로 알 수 있게 된다.
프란츠 카프카를 실존주의 작가 또는 실존주의 사상가라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철학적 기반에 대해 의문을 가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개의 고백>이나 <변신>과 같은 작품들을 읽고 또 읽으면서, 주인공에게 부여된 부조리한 상황과 죽음, 그것의 암시적인 전개 과정에서 카프카의 폭넓은 실존적 사상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변신을 모티브로 한 그의 작품 세계들은 또 다른 의문을 낳게 만들고 있다. 왜 하필 변신의 피조물이 개나 벌레란 말인가. 변신이란 게 어쩌면 가면과 같이 용기 없는 자신을 가리는 막은 아닐까. 또한 이것이 카프카가 죽은 후에나 그의 작품을 인정받게 된 어떤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아닐까.
대게 작품에 나타나게 되는 작가의 사상은 그 또는 그녀가 살아간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형성되기 마련인데 카프카의 작품이 품고 있는 그것들은, 어쩌면 시대를 앞서 너무 멀리까지 가버린 것일 수 있다.
카프카가 살아가던 시대적 환경 속에서, 아직 젊었던 그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프라하라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지역적 환경과 그 속에서 유대인으로 성장하고 교육받아야만 했던 그의 태생적 뿌리에서, 자신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웠을 인지적이고 미인지적 굴레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어찌 되었건 간에 개, 벌레, 사회 시스템의 거대한 굴레에서 인간 실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그의 작품들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깊은 사색에 잠겨 들게 된다.
다시 이 책의 뒷장을 펼쳐본다. 1959년, 당시의 물가를 고려하면 300원이란 책값의 부담에도 첫 발행연도에만 최소 3판이 인쇄되었을 기록을 찾아낸다. 1950년대, 한국의 지성인들에게 카프카의 작품은 그 책값 이상의 가치를 지녔으리라, 그리고 그들의 인생에 분명 어떤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혼자 생각을 되새김질한다.
어느 개의 고백의 마지막 문구에서 사유가 멈추어 선다.
“자유! 물론 현재 허용되고 있는 자유는 가냘프고 연약한 식물과도 같은 자유이긴 하다. 그렇지만 어떤 자유이든 간에 하여튼 그것은 일종의 소유물이라는 것에, 변함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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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Franz 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