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 올에 스미는 그림자

캔버스 올에 스미는 그림자


색채의 파도가 쉼 없이 밀려드는 선착장 귀퉁이에서

빨강과 보라의 경계를 뒤적이는 고양이의 잠꼬대는

섬마을이 여행자에게 내미는 고요한 마침표이다


르누아르의 붓끝에서 태어난 부드러운 털결 위에

피카소의 강렬한 터치가 그림자를 드리울 때,

여행자는 차마 그 고요한 막을 깨우지 못한다


이곳에선 고양이의 낮잠조차 한 점 예술 작품이기에

그 완성의 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숭고한 경외심은

스스로 발소리를 죽이고

햇살 머금은 캔버스 결을 한 올 한 올 더듬게 된다


초록 문이 바람에 삐걱이며 낮은 콧노래를 부르고

고양이의 수염 끝을 간지럽히는 바다 내음이

투명한 햇살에 안겨 붙을 때

여행자는 비로소 알게 된다


여행이란,

누군가 그려 놓은 섬마을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

잠시 잠깐 화폭에 머물다가

마지막 배 떠나는 저녁 고동 소리에 밀려

캔버스 밖으로 걸어 나와야만 하는

무심한 퇴장이란 것을,

그래서 살아간다는 것은 캔버스 올마다

말간 회색의 그림자를 스며 넣는

쓸쓸한 여행길이란 것을


// <문학 시선>의 회장님께서, <부라노섬, 어느 고양이의 낮 잠>에 남겨 주신 댓글을 되새김질하며 읽다가,

차마 잊히게 될까 하는 짙은 아쉬움에, 그냥 있게 된다면 분명 그렇게 될 것이기에

미처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로, 인간의 기억이란 게 그리 믿을만한 게 아니란 걸 알기에, 감사한 마음에 답글 삼아 텍스트 몇 개를 가감해 보았습니다.

어떤 댓글은, 그것에게 감히 댓글이라는 레이블을 붙인다면 행여 스스로의 무지함을 드러내게 될까 봐, 조심스러운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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