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리는 열여덟의 자화상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니 두고두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연이었던 필연이었던, 그 시대에 캠퍼스에 적을 두고 살았던 것은 정말로 장하고 값진 일이었다.
날을 가리지 않는 연이은 시위와 기약 없이 반복되는 수업 거부, 섬뜩한 문자들이 빼곡한 대자보와 핏빛 선연한 해 지난 사진들이 넘쳐나는 캠퍼스, 최루탄 가루가 난무하던 가두투쟁과 방호복을 뒤집어쓴 전경들의 겁에 질린 몸짓, 잊을 수도 없고 잊히지도 않은 시대적 상황은 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길 강요했다.
어찌어찌 몸부림 끝에 기어이 살아남은 청춘들과 지식인들은 그들 식의 문화를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20세기 프랑스의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Post-structuralist philosopher)인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가 그들의 공저 <안티 오이디푸스>(Anti-Oedipus: Capitalism and Schizophrenia)와 <천 개의 고원>(A Thousand Plateaus: Capitalism and Schizophrenia)에서 제시한 개념 몇 가지에 발을 담근다면, 시대적 상황이 빚어낸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가 문화적 상황에서의 재영토화(Reterritorialization)를 이룬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게 '1985년'은 한국 연극사와 부조리 문학에 상징적인 이정표를 새겨 넣은 해가 될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1985년 3월에 '한국 부조리 극의 대부'라고 불리는 임영웅 연출가의 주도로 극단 산울림이 창단되었고, 신촌역과 홍대입구역 중간쯤 되는 마포구 서교동(지금의 주소로는 와우산로 157)에 '소극장 산울림'의 문을 열면서 개관 기념 공연으로 사무엘 베케트의 작품 <고도를 기다리며>를 무대에 올렸다.
이후 <고도를 기다리며>는 동숭동 대학로의 여러 극장들과 전국 순회공연들을 통해 한국 소극장 연극의 전설이 되었다.
또한 1985년은 대학로가 '문화예술의 거리'로 지정된 해이자 대학로와 소극장에 황금기가 도래한 해이기도 하다.
마로니에 공원을 중심으로 붉은 벽돌 건물들과 연극 포스터들이 즐비하던 당시의 대학로는 낭만과 사유가 넘치고, 지식과 고뇌가 공존하던 자유와 반항의 거리로 자리 잡아갔다.
대학로의 샘터파랑새극장, 바탕골소극장 등과 함께 서교동의 극단 산울림에서 무대에 올린 <고도를 기다리며>는 한국 소극장 연극 문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1980년대 최고의 작품이었다.
1985년 극단 산울림의 전용 극장 개관과 함께 다시 무대에 오른 <고도를 기다리며>는(초연은 1969년에 있었다.) '오지 않을 고도를 기다려야만 하는 벗어날 수 없는 수동적 행위에서 오는 절망감보다는, 실체 모를 고도를 기다리는 일이 비현실적으로 보이겠지만, "아직 오지 않았기에 기다린다.", "끝끝내 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기다린다."와 같이 '소극적이지만 능동적인 반항'을 통해 인간의 숭고한 인내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수작으로 꼽힌다.
당시 한국 사회가 처해 있었던 시대적 난맥상을 고려하면, <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이 '인간 스스로가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임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연극'은 당시의 지식인들과 청춘들에게 알베르 카뮈의 '부조리와 반항'에 헤르만 헷세 '유리알 유희'를 더한 지적 울림을 주었을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1969년 12월 한국일보 소극장(당시 서울 중구 소재)에서 있었던 한국 초연은 한국 연극사에 기록될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16년이 지난 1985년에 창단한 극단 산울림의 대표 임영웅 연출가가 1969년 당시에도 연출을 맡았었고 불문학자이자 임영웅 연출가의 부인인 오증자 교수(서울여대 불어불문학과 교수)가 작품의 번역을 맡았다.
임영웅 연출가는 한국 부조리 연극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1969년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낯설고 난해한 '부조리극'을 연습하던 도중, 작품의 원작자인 사뮈엘 베케트의 노벨 문학상 수상소식이 전해졌다.
이 소식으로 인해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도대체 고도가 누구길래, 무엇이길래 그토록 기다려야 하나.", "<고도를 기다리며>가 어떤 내용이길래 노벨상을 수상하였나."와 같은 궁금증이 일었고, 그로 인해 공연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에 전좌석이 매진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임영웅 연출가는 훗날 인터뷰에서 "50년 넘게 연극을 해왔지만, 초연 때 그렇게 표가 일찍 동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라며 당시를 술회하였다.
연국 <고도를 기다리며>는 1969년의 한국일보 소극장을 당시 지식인들과 청년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사유의 해방구'이자 '지적 유희의 성전'으로 만들었다.